| ▲ 미국 인텔이 차세대 D램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 D램 시장에 새로운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제미나이 나노 바나나 프로>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인텔이 40년 만에 D램 사업에 복귀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과점 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D램이 인공지능(AI) 반도체 병목 현상을 해결할 '핵심 열쇠'이자 '전략 자산'으로 부상하면서, 인텔은 차세대 D램을 자체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AI 수요 폭증으로 메모리 산업의 수익성이 높아지고, 과거와 같은 '실리콘 사이클'(반도체 시황 변동 주기)이 사라질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는 만큼, 인텔이 기존 메모리 시장의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8일 반도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인텔이 중앙처리장치(CPU) 등 시스템반도체를 넘어 차세대 D램 개발에 속도를 내며 메모리반도체로 사업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텔은 현재 미국 샌디아국립연구소와 손잡고 '첨단 메모리 기술(AMT)'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 속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메모리 속도는 그에 못 미쳐 전체 시스템 성능이 제한되는 '메모리 허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인텔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차세대 D램 본딩(NGDB)'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NGDB는 기존 납땜용 돌기(범프)를 없애고 구리 배선을 직접 붙이는 하이브리드 본딩 방식을 통해, 고대역폭메모리(HBM) 속도와 일반 D램의 대용량 장점을 하나로 합친 차세대 메모리 구조 기술이다. 인텔과 샌디아국립연구소는 최근 기능 검증까지 완료, 이 기술의 양산 가능성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슈아 프라이먼 인텔 정부기술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표준 메모리로는 AI의 요구 사항을 충족할 수 없다"며 "NGDB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시해 향후 10년 메모리반도체 발전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은 소프트뱅크와 합작사 '사이메모리'를 세워 HBM을 대체할 '저전력 적층형 D램'도 개발하고 있다.
사이메모리는 일본 도쿄대의 고속 데이터 전송 특허와 인텔의 적층 기술을 결합, 전력 소모를 기존 HBM보다 50% 낮추고 제조비용을 40% 절감한다는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회사는 2027년 시제품을 출시하고, 2030년 양산을 시작해 일본 내 AI 학습용 데이터센터에 우선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사이메모리는 D램 설계, 지식재산(IP) 관리와 개발을 총괄하고, 생산은 외부 위탁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일본 정부도 개발비 일부를 보조할 것"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 ▲ 인텔은 1970년대 세계 D램 시장의 90%를 장악했지만, 이후 일본 기업들에 밀려 1984년 D램 사업을 철수했다. 사진은 인텔의 팬서레이크 중앙처리장치(CPU) 웨이퍼. <인텔> |
인텔은 1970년대까지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 90% 확보하며 메모리반도체 황제로 불렸다.
하지만 1984년 일본의 저가 공세에 밀려 D램 사업을 철수했고, 2020년 낸드플래시 사업부(현재 솔리다임)까지 SK하이닉스에 90억 달러(약 10조3천억 원)에 매각하며 메모리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인텔은 현재 낸드플래시 메모리 사업을 SK하이닉스에 매각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I 메모리 슈퍼 사이클이 도래하며 D램에 이어 낸드플래시 산업도 재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텔 낸드사업부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던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시장은 최근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D램을 비롯한 메모리는 최근 수익성이 급격히 개선되는 동시에 AI 시대의 '전략 자산'으로 부각되면서, 인텔은 메모리 산업에 재진입할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인텔이 독자적 D램 표준을 만든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HBM 주도권이 일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텔이 직접 D램을 양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새로운 D램 표준을 구축함으로써, 향후 메모리 산업의 주도권이 생산자에서 설계자 중심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산업의 체질 변화와 함께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3강 체제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는 인텔 외에도 중국 기업에서도 적극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 흑자 전환한 중국 CXMT(창신메모리)도 올해 상반기 상하이증권거래소 상장을 통해 42억 달러(약 6조 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하는 등 D램 설비투자를 대폭 늘리고, DDR5 D램 양산량도 대폭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CXMT는 지난해 세계 D램 시장에서 약 4%의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향후 2~3년 내 점유율이 10%를 넘으며 새로운 메모리 강자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경제매체 월스트리트씨엔닷컴은 "AI 시대에는 메모리 경쟁이 단순히 용량과 가격 싸움이 아니라 성능, 전력 소비, 아키텍처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경쟁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D램 산업의 높은 성장 기대치, HBM 독점 문제 등은 인텔 등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