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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최고위직 통상국무장관으로 임명된 플뢰르 펠르랭 (Fleur Pellerin) | ||
‘꽃’이 만개했다. 한국이 버리고 프랑스가 키운 플뢰르 펠르랭이 이번에 프랑스 통상관광 국무장관으로 임명됐다. 플뢰르(Fleur)란 이름은 프랑스어로 꽃이라는 뜻이다. 40년 전 서울의 길거리에 버려진 김정숙(한국이름)이 두 번이나 프랑스 장관이 됐다.
펠르랭 장관은 9일 개각에서 외국과 통상 관련 업무와 관광, 재외 프랑스인 업무 등을 담당하는 부서의 장관에 임명됐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3월 30일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 개각을 단행했다. 이번에 펠르랭이 맡은 통상관광 부문은 이번에 정부조직 개편으로 경제부에서 외교부 산하로 옮긴 부처다.
펠르랭은 2012년 올랑드 대통령의 초대 내각에서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장관에 임명돼 2년 동안 일했다. 당시 유럽에서 최초의 아시아계 장관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펠르랭은 이번 프랑스 장관급 인사에서도 언론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녀가 2년 동안 올랑드 정부에서 중소기업•디지털 경제장관으로 일하면서 보여준 능력을 비롯해 입양아라는 배경과 그가 살아온 이력 때문이었다.
그는 이전 장관 때 프랑스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 ‘프렌치 테크(French Tech)’를 이끌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심지어 개각 직전 그의 장관 잔류 운동이 벌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 ‘작은 정부’가 추진되면서 부처가 통폐합돼 그의 자리가 사라졌다. 이번에 다시 장관을 맡자 트위터 등에서 “펠르랭이 계속 디지털 업무를 맡게 해 달라”는 글들이 여전히 올라오고 있지만, “그래도 계속 장관으로 일하게 됐으니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의견들이 많다.
그는 정통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다른 학생보다 2년 빠른 16세 바칼로레아(한국의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했고 17세 상경계 그랑제콜인 에섹(ESSEC)에 진학했다. 그는 정치 분야 최고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행정분야 그랑제꼴 국립행정학교(ENA)를 거쳤다. 프랑스 언론들은 이런 그의 경력을 두고 “공화국(프랑스 지칭)의 산물”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는 프랑스 최고 교육과정을 밟았지만 그의 집안은 노동계급과 부르주아 사이에 속해 있다. 그는 자신의 집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친할아버지는 시골 초등학교 교사, 할머니는 파출부, 외할아버지는 노동자였다. 어머니는 일을 하기 위해 14세에 학업을 그만두었다. 아버지가 사업이 잘 되어 사회적 계층이동에 성공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못한 공부를 원없이 할 수 있게 했다. 어머니에게 글을 배워 월반을 했고, 내 딸도 할머니한테 글을 배워 월반을 했다.” 지금의 그를 키운 것은 팔할이 어머니의 열성이라는 얘기다.
그는 한국계 입양아다. 1973년에 출생한지 3일 만에 서울의 한 거리에 버려졌다. 여섯 달 만에 프랑스에 입양되었다. 펠르랭을 입양한 양부모는 출생지를 잊지 않도록 '완성된 여자'라는 뜻의 한국이름 '정숙'을 호적에 남겨뒀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2002년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 대선 캠프에서 연설문안 작성에 참여하면서부터다. 펠르랭은 2010년부터 여성 엘리트 정치인 모임인 21세기 클럽 회장을 맡으면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2011년 당시 올랑드 사회당 대선 후보캠프에 합류했다.
펠르랭은 지난해 3월 입양된 뒤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박 대통령 등을 만났다. 이때 그는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어릴 때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불어를 말하는 프랑스 사람으로 자라났다. (생후 6개월 만에 입양됐다고 해서) 한국을 거리끼는 마음은 전혀 없다. 한국에 각별한 애정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에 대한 한국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 "(한국에는) 1970년대 많은 아이를 외국에 입양아로 보낸 일종의 집단적인 죄의식이 있는 것 같다"며 "이제 한국인들이 그 끈을 다시 이어 그 아이들이 어떻게 됐는지 보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펠르랭은 그가 프랑스인임을 당당하게 말한다. 한국 언론의 관심에 대해 그는 “한국인과 똑 같이 생긴 사람이 다른 나라에서 장관이 된 것을 신기해하는 것은 이해는 하지만 많은 관심에 놀랐다”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 봐도 나는 프랑스인”이라고 말했다.
그가 2012년 유럽 최초로 아시아계 장관으로 임명되던 날 그는 용기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다.
“그 어떤 순간에 처해 있어도 용기를 내서 원하는 바를 실천하는 것만이 너를 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부모님이 가르쳐 주셨다. 나도 딸에게 들려주는 가장 중요한 가치다.”
통상장관은 프랑스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펠르랭이 직무를 잘 수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프랑스 언론은 프랑스의 4월 무역 적자가 전달과 비교해 줄어든 22억 유로(약 3조1600억 원)인데, 이는 펠르랭에게 좋은 징조라고 전했다.
프랑스 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펠르랭에 대해 “부드러워 보이지만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장미”라고 표현했다. 펠르랭은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여자이기 때문도, 작은 눈을 갖고 있기 때문도 아니라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이 주간지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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