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으로 국내 30대 기업에 입사해 임원으로 승진하는 비율이 약 0.5%라고 한다.
200명 가운데 한 명만 임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공학 분야나 연구기술직이 아닌 일반 경영 관리 직군이라면 그 비율이 더 떨어진다. 단순히 통계만 따져봐도 입사 시점부터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몰릴 수 밖에 없다.
임원으로 승진한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임원은 임시 직원의 줄임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듯이 기대 이하의 성과를 내면 언제든 자리에서 물러날 각오를 해야 한다.
내부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호시탐탐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은 데다 임원의 연령대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어 임원은 ‘임시’도 아니고 ‘잠시’ 머물다 가는 자리가 되고 있다.
당장 서치펌에 구직 문의를 하는 임원 퇴직자들만 헤아려 봐도 현재 시장이 얼마나 호락호락하지 않은지 짐작이 되고 남는다. 단순히 굴지의 대기업에서 임원을 지낸 것 만으로 여기저기서 환영받던 시기는 지났다. 지금은 깐깐한 임원 평가 절차를 통과해야 면접 기회라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임원이 되는 걸까? 최근 임원 인사 흐름은 어떨까?
보통 임원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리더십, 팀을 아우르는 기술, 의사소통 기술, 조직의 성과를 견인하는 능력 등을 거론한다. 이는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너무나 당연한 요소들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와 중요성만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그러나 직무 전문성만큼은 다르다.
예전에는 모든 분야에 강한 제너럴리스트를 임원으로 선호했지만 지금 기업에서는 특정분야의 직무 전문성이 없으면 임원으로 발탁하기를 주저한다. 여러 분야를 두루뭉술하게 이해해서는 사업의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거나 구성원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한 분야만 알거나 확실한 강점이 있는 대신 약점이 두드러지는 사람이 임원에 오를 확률은 높아졌다. 예전보다 기업에서 실무형 임원의 비중이 늘어나고 임원의 연령대가 낮아진 것도 이런 현상을 일정 부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독불장군 유형의 임원도 갈수록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카리스마형의 강한 리더십을 지닌 임원이 각광받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장 변화와 기술 개발 속도가 너무 빨라 전략과 방향을 끊임없이 조정해야 기업들이 살아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어떤 방향을 정해 놓고 그 방향으로 직원을 강하게 몰아붙이는 방식은 위험부담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 기업들이 현장 담당자나 유관 부서 책임자와 계속 논의를 해가며 소통할 수 있는 임원을 찾는 이유다.
기업의 임원 집단이란 마치 각 분야 전문가들의 연합체 같은 모양새라 임원들의 유연한 소통능력은 더욱 중요하다.
단, 유연한 소통능력과 단호한 의사결정능력은 서로 별개다.
복잡한 상황에서 여러 의견을 종합해 빠르게 판단하는 능력은 카리스마형의 독선적 리더가 잘하는 것도,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유연한 리더가 못하는 것도 아닌 각기 다른 영역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요즘에는 임원 후보의 도덕성과 윤리성도 철저하게 검증되고 있다.
임원 후보는 성과나 역량이 검증된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크게 문제 되는 일은 없다. 과거의 성과나 역량은 대개 드러난 자료로 만족하는 편이다.
그러나 후보자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었느냐 하는 물음을 두고서는 기업들이 전문업체에 평판조회를 맡기면서까지 깊이 파고든다.
문제가 있으면 단순히 ‘조직관리 혼란’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치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보고 철저히 검증한다. 외부에서 새로 임원을 영입할 때도 도덕적 문제가 걸린다면 면접의 최종 단계까지 진행했더라도 후보에서 탈락시킬 정도다.
'학습 민첩성(Learning Agility)'도 기업들이 주목하는 임원의 역량이다.
리더십 전문 교육기관인 CCL(Center for Creative Leadership)은 학습 민첩성을 ‘리더들이 지속적으로 자기개발과 성장을 하면서 조직이 직면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이를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정의내렸다.
끊임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환경에서 학습 민첩성이 없는 리더들은 쉽게 도태됨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누구보다 빨리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쌓고 올바른 교훈을 얻는 자만이 대기업 임원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음 편에서는 서치펌에서 임원을 추천할 때, 다시 말해 외부에서 임원을 영입할 때 어떠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평가하는지 각 기업 유형별로 서술해 보기로 한다. [정민호 커리어케어 경영기획실 부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