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公共機關). 공적인 목적을 위해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투자해 소유권을 갖거나 통제권을 행사하는 기관. 이들의 목적은 이윤추구가 아니라 공공에 대한 생산과 서비스다. 기본적으로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면면이 드러날 때마다 ‘해도 너무하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수천억원에서 수조원대의 부채가 있음에도 내부적으로는 성과급 잔치, 임직원 승진 파티가 벌어진다. 만성 적자에 책임감이 둔감해진 것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왜 공기업의 만성적자는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낙하산 근절 없이는 공공기관 개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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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 |
낙하산 인사의 현재
그 핵심에 ‘낙하산 인사’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 인사 역시 대폭적으로 이뤄졌다. 대외적으로 정부가 내세우는 인사 원칙은 ‘전문성’과 ‘책임감’ 등 경영자질이다. 그러나 그 원칙이 적용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정권이 바뀌는데 일조한 ‘개국공신’들을 위해 보은인사가 이뤄진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들어 임명된 공공기관장 78명 가운데 34명(45%)이 낙하산 인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 때는 180명의 공공기관장 인사 중 58명(32%)이 낙하산 인사였다. 공공기관은 보은인사의 통로만이 아니다. 정부 부처 관료들의 재취업 창구 노릇도 한다.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이 최근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올해 4월까지 퇴직한 4급 이상 국토부 관료 중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에 취업한 사람은 35명이었다. 전체 118명의 29.7%에 이르는 수치다.
전문성? “없어요”
문제는 이들의 ‘능력’이다. 아무리 공공기관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는 곳이라고 해도 결국 사업의 원천은 국민 혈세다. 공공기관장이라면 적어도 해당 사업의 정당성이나 효율성, 비용 부담 최소화 등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도리이자 의무다. 이런 판단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전문성과 경영능력이다. 낙하산 인사라고 해도 해당 기관에 대한 경력이 많고 이해가 깊다든지 다른 부분에서 우수한 경영성과를 보인 전례가 있다면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사에서 해당 부분은 고려되지 않는 모양새다. 경찰청장 출신들은 의례히 아무런 관계도 없는 ‘철도·도로’ 공사장직을 맡고, 대통령 후보 시절 캠프에서 활동한 전력 등이 인사의 기준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인사의 결과는 초라하다. 지난 6월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발표한 ‘2012년 공공기관장 평가 결과’에서 해임건의 대상인 E와 경고인 D 평가를 받은 18명의 기관장 중 15명은 정치권이나 외부에서 꽂힌 ‘낙하산’ 인사였다. 낙제점을 받은 기관장 5명 중 4명은 낙하산 인사인 셈이다.
책임감? “몰라요”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알면서도 사실상 이를 제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늘상 논란이 돼 왔던 성과급 잔치 문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허준영 전 코레일 사장 시절, ‘부채가 수조원대인 상황에서 수천억원대의 성과급 지급은 과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대해 코레일의 관계자는 “성과급은 공사에서 임의로 지급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고 매년 정부의 공공기관 평가 결과에 따라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지급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허 전 사장이 2556억원의 성과급 잔치를 벌였던 2011년 코레일의 부채는 1조 이상 늘었다. 정부의 평가 기준에 대해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정부와 공공기관, 그 은밀한 관계
공공기관, 정부의 마리오네트
정부가 공공기관 평가에 냉정해 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둘 사이의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일단 공공기관 수장부터가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로 채워진다. 이 시점부터 이미 공공기관은 정부의 일부분이 된다. 공공기관장이 정부가 내놓는 국책사업에 반대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공공기관이 정부의 실패한 사업들을 떠안거나 실패가 빤히 보이는 사업의 자금줄 역할을 자처하는 것도 이런 연유다. 대표적인 예가 4대강사업의 빚폭탄을 맞게 된 한국수자원공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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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호 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
수자원공사의 예고된 빚폭탄
지난 10월 민주당 문병호 의원이 수자원공사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부채 현황’에 따르면 수자원공사는 올해 6월말 현재 4대강사업에서 7조2649억원의 금융부채를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대강 사업의 전초전격인 경인운하사업에 대한 금융부채는 2조1535억원으로 둘의 합계는 9조4184억원에 달한다. 이는 수자원공사 금융부채(11조7831억원)의 80%에 육박하는 수치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전혀 뜻밖은 아니다. 지난 2009년 정부가 4대강 사업 예산 가운데 8조원을 수자원공사 자체 사업비로 처리키로 한 사실이 알려졌을 당시 이미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정부가 대규모 국책 사업의 재정 부담을 공기업에 떠넘겨 공기업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수자원공사 내부에서도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당시 수자원공사의 ‘부채비율 및 이자보상배율 추정’ 자료에 따르면 수자원공사의 2008년 말 부채 비율은 19.6%에 불과하지만 경인운하 사업과 4대강 사업 수행을 위한 외부 차입 등으로 부채비율이 2009년 25.4%(부채액 2조5888억원), 2011년 73.0%(부채액 7조7493억원), 2013년 94.0%(부채액 10조4569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됐다. 수자원공사의 예상대로 MB의 야심작들은 4년 뒤 수자원공사에 9조원의 빚더미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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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전 대통령 |
정부는 나몰라라
수자원공사가 부실 공기업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이 정부가 한 일은 부채에 대한 이자 일부 지원과 배당금 챙기기였다. 수자원공사의 ‘최근 5년간 부채 현황’에 따르면 4대강사업과 경인운하사업 수행을 위해 수자원공사는 2009년부터 올해까지 총 10조129억원을 신규차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동안 수자원공사는 해당 차입금에 대해 총 1조679억원의 금융 이자를 지급했다.
그러나 정부는 4대강 금융비용에 대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6056억원을 지원했으며 올해엔 3178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이자 갚기에도 빠듯한 금액이다. 그나마 경인운하사업 관련 금융비용(2855억원)에 대해서는 지원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수자원공사에 대해 지원은 고사하고 수자원공사의 주머니까지 털어갔다. 거대한 빚더미를 진 수자원공사에 빙산의 일각식 지원을 하면서 수자원공사의 이익금에 대한 배당금을 매년 챙겨간 것이다. 수자원공사가 제출한 ‘최근 5년간 수자원공사 이익금 처분 현황’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모두 1482억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민주당 문병호 의원은 “이명박 정부는 수자원공사로 하여금 4대강사업에 8조원을 투자하도록 결정하면서 금융이자만 지원하고 원금은 벌어서 충당하라고 했다”며 “이는 공기업에 거액의 국책사업비를 떠넘기고 부채문제는 외면하는 매우 부도덕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이명박 정부의 행태는 타당성 없는 토목사업을 위해 공기업에 빚폭탄을 안긴 매우 나쁜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