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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래리 페이지 구글 최고경영자(CEO) |
삼성전자와 구글의 오랜 동맹관계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독자 운영체제(OS) ‘타이젠’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인도에 초저가로 내놓으면서 저가폰 프로젝트인 ‘안드로이드원’을 내세운 구글과 정면대결을 벌이게 됐다.
삼성전자는 인도시장에서 스마트폰사업 반등을 노린다. 구글도 안드로이드 제국의 확장을 위한 다음 목표로 인도를 겨냥하고 있다.
◆ 삼성전자, 인도서 초저가 ‘타이젠폰’ 출시
삼성전자는 올해 초부터 인도시장에 다섯 종류의 새로운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새로운 중저가 스마트폰 ‘갤럭시A’와 ‘갤럭시E’ 각각 두 종류, 그리고 ‘삼성Z1’이다.
가장 주목받는 스마트폰은 삼성Z1이다. 삼성Z1은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모바일 운영체제 ‘타이젠’을 탑재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숱한 출시설만 나돌았던 타이젠 스마트폰의 첫 출시국가로 인도를 선택했다.
삼성전자가 타이젠 스마트폰을 인도에 처음 출시한 것은 시장 잠재력이 중국보다 크기 때문이다. 인도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11%밖에 안 되는 데다 피처폰 사용자가 스마트폰 사용자보다 훨씬 많다.
삼성전자는 삼성Z1의 가격을 9만9천 원으로 책정했다. 지난해 출시한 저가 스마트폰 ‘갤럭시 코어 프라임’보다 싸다. 갤럭시 코어 프라임은 16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삼성Z1은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출시한 스마트폰 가운데 가장 저렴한 제품”이라며 “저사양 스마트폰인 만큼 주 타깃은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하는 사용자나 신흥국시장 소비자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가 인도의 풍부한 소프트웨어 개발인력들을 활용하기 위해 타이젠 스마트폰을 인도에 내놨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도 IT산업의 메카인 벵갈루루의 경우 1500개가 넘는 IT기업들이 몰려있어 ‘인도판 실리콘벨리’로 불린다. 비즈니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링크드인에 따르면 세계 IT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 상위 5곳 가운데 4곳이 인도에 있다.
삼성전자의 타이젠은 애플이나 구글의 OS와 비교할 때 ‘미완의 OS’라는 평가를 받는다. 스마트폰의 핵심인 애플리케이션(앱)과 콘텐츠가 아직 부족하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출시행사에서 인도 개발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향후 1년 동안 앱 판매 수익금 전액을 개발자에게 지불하겠다고 밝혔다. 타이젠 전용 앱을 내려받을 수 있는 앱스토어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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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의 첫번째 타이젠 스마트폰 '삼성 Z1' |
◆ 구글, 저가 플랫폼 ‘안드로이드원’으로 인도 공략 나서
구글도 인도를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보고 지난해부터 안드로이드 생태계 확대에 나섰다.
구글의 무기는 저가형 플랫폼 ‘안드로이드원’이다. 적당한 성능과 저렴한 가격을 원하는 신흥국 소비자들에게 맞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제조할 수 있도록 구글이 제공하는 운영체제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수석부사장은 지난해 6월 열린 구글 개발자대회 기조연설에서 “안드로이드원은 스마트폰이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은 신흥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며 “신흥국 제조사들이 저가 스마트폰에 맞게 운영체제를 바꾸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구글은 지난해 9월 인도에서 처음으로 안드로이드원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구글은 현지 제조사인 마이크로맥스와 카본, 스파이스에 제조를 맡겼다. 안드로이드원 스마트폰의 가격은 6399루피, 우리나라 돈으로 11만 원에 불과하다.
구글은 인도를 시작으로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 네팔 등 인접국가로 점차 출시국을 확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HTC나 레노버, 에이수스 등 대형 제조사들도 안드로이드원 프로젝트에 포함해 저변을 확대하려고 한다.
구글은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하드웨어 제조까지 넘보고 있다. 지난 14일 열린 개발자 회의에서 공개한 조립식 스마트폰 ‘아라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아라 스마트폰은 최소한의 기능을 지닌 본체에 원하는 부품 모듈을 끼워 맞춤형으로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신개념 제품이다. 본체 가격이 50달러로 저렴하고 실속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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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의 저가 스마트폰용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원'을 탑재한 마이크로맥스의 '캔버스 A1' |
◆ 인도에서 펼쳐질 삼성전자-구글 대결의 승자는?
삼성전자와 구글은 ‘프레너미(Frienemy)’의 대표적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프레너미는 친구를 뜻하는 프렌드(friend)와 적을 의미하는 ‘에너미(enemy)’를 결합해 만든 신조어다.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고 있지만 다른 한 쪽에서 경쟁하는 관계를 말한다.
삼성전자와 구글은 애플에 대항하기 위해 스마트폰 영역에서 혈맹관계를 맺고 있다. 반면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는 사물인터넷(IoT) 영역의 경우 서로 시장선점을 위해 경쟁한다.
하지만 인도 스마트폰 시장을 놓고 삼성전자와 구글이 각각 독자노선을 선언하면서 스마트폰 협력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중저가시장에서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삼성전자와 안드로이드 생태계 확대를 노리는 구글이 인도에서 충돌하게 됐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구글은 기본적으로 소프트웨어 판매와 온라인 광고를 수익원으로 하는 기업”이라며 “더 많은 사용자들이 안드로이드 생태계로 들어오는 데 관심을 가질 뿐 하드웨어 제조사들의 수익에 큰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IT전문매체 더버지는 “삼성전자가 구글이라는 타이타닉에 맞서 타이젠이라는 빙산을 세웠다”며 “안드로이드와 경쟁하기 어렵겠지만 구글의 야심찬 확장 계획에 맞서겠다는 신호를 분명히 전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와 구글의 경쟁에서 불리한 쪽은 삼성전자다. 100달러 미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출시로 삼성Z1의 유일한 장점인 가격 경쟁력이 없어진.데다 안드로이드 플랫폼과 규모 면에서 이미 좁힐 수 없는 격차가 있다는 것이다.
유의형 동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세계 1위 스마트폰업체로서 독자 OS와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당연한 행보”라며 “하지만 구글이 만들어놓은 앱 생태계와 안드로이드의 지배력 때문에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