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금지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사회경제적 사유 인정, 태아의 생명권 등 낙태와 관련된 여러 쟁점들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낙태 금지법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가’를 놓고 올해 안에 판단을 내놓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2012년 같은 사유로 헌법소원 심판에서 합헌이 결정된 뒤 두 번째로 진행되는 것이다.
▲ 2016년 10월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나의 자궁, 나의 것-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검은 시위' 참가자들이 보건복지부의 시행 개정안 및 낙태금지법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이는 최근 청와대 청원과 집회 등을 통해 낙태 금지법 폐지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모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낙태죄 폐지' 청원에는 모두 23만 명 이상이 참여했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폐지 여부는 헌법재판소 위헌 심판을 계기로 이뤄지는 사회적·법적 논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헌재는 2012년 낙태 금지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태아는 모체와 별개의 생명체이므로 생명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고 보고 합헌으로 판결했다.
◆ 낙태 금지법,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가?
낙태 금지법은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의 다른 이름이다. 이 법에 따르면 부녀가 약물이나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사람도 같은 형을 받도록 한다.
이 법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낙태 금지법 폐지를 원하는 사람들은 낙태 금지법이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의 법률에 따라 인생을 결정하게 해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자기결정권은 국가 권력의 간섭 없이 사적 사항에 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의적 권리를 말한다. 즉 낙태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헌법 제10조와 제37조는 자기결정권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니고 있다. 국민은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헌법 제37조에 따르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때만 법류로서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될 때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 사회경제적 사유로도 낙태가 허용되나?
일부 여성들은 현재 합법적으로 낙태 수술을 받을 수 있다. 모자보건법으로 정해진 범위에 한해서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따르면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을 때, 전염성 질환이 있을 때,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됐을 때, 혈족 또는 인척 사이에 임신됐을 때,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을 때 등 5가지 사유에서 임신 24주 안에 낙태가 가능하다.
이 법에 따르면 가난이나 원치 않은 임신 등 사회경제적 이유로 낙태하면 불법이다. 독일 등이 임신부의 생활을 고려할 때 낙태 외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비밀리에 진행되는 우리나라 낙태 대다수는 사회경제적 사유 때문에 이뤄진다. 낙태율을 낮추려면 낙태를 무조건 금지하기보다 임신부의 경제환경 개선 및 관련 교육 제공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태아는 언제부터 사람인가?
태아의 생명권도 낙태 금지법의 위헌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다. 태아의 생명권이 언제부터 인정이 될 수 있는지에 따라 낙태는 ‘살인죄’가 될 수 있다.
태아를 인간이라고 보는 시점은 여러 가지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수정 시점, 수정 후 14일 혹은 원시선 발생 시점, 태아의 기관 형성이 끝나는 임신 8주 시점, 처음으로 심장이 뛰는 시점, 처음으로 뇌파가 측정되는 시점, 태동이 느껴진 시점, 태아가 산모 밖에서 생존 가능한 시점, 탯줄이 분리되는 출산 시점, 출생 후 자기 인식이 가능한 시점 등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2012년 이 쟁점을 바라보는 시각차이 때문에 찬반이 엇갈렸다.
당시 김종대 민형기 박한철 이정미 재판관은 “자궁에 수정란이 착상한 이후의 태아는 모두 생명권의 주체로 인정돼야 한다”며 합헌 의견을 냈다.
반면 이강국 이동흡 목영중 송두환 재판관 등은 “태아는 임신 24주 이전까지 독자 생존능력이 없다. 임신 초기와 중기의 태아와 임신 24주 이후의 태아를 다르게 봐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