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5일 미국으로 떠나는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철강 관세 부과 소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가운데 미국으로 날아가 상하원과 행정부 관계자 등을 두루 만날 예정이었다.
김 본부장은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며 “어느 정도 결과를 낼 수 있을지 말하기 어렵다”는 말을 남기고 비행기에 올랐다.
당초 일주일 일정이었다. 하지만 체류 기간은 한달 가까이 늘어났다. 그 사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우리나라도 관세 대상국에 포함됐다.
상황이 긴박하게 전개되면서 중간에 대외경제장관회의 등에 참석하기 위해 잠깐씩 한국을 다녀갔을 뿐 미국 현지에서 계속 관계자들을 접촉했다.
관세 부과 시한을 열흘 앞둔 12일에는 강성천 통상차관보, 이용환 통상협력심의관 등과 함께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다시 올라탔다. 14일 유명희 통상교섭실장도 한미FTA 개정협상차 미국에 합류했다.
말 그대로 통상교섭본부의 가용전력을 총동원했다. 돌아올 날짜도 정하지 않고 배수진을 친 채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을 거듭했다.
미국 상무부가 2월 무역확장법 232조 보고서에서 철강 관세 방안을 내놓았을 때만 해도 김 본부장이 이끄는 통상교섭본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우려가 많이 섞여 있었다. 같은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인 일본이 초고율 관세 부과대상이 된 12개국에 포함되지 않은 것과도 비교됐다.
트럼프가 서명한 행정명령에서 캐나다, 멕시코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와 일본 등이 모두 포함되기는 했지만 관세 부과 문제는 외교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사안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차관급인 김 본부장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이런 와중에 김 본부장이 계속 미국에 머물면서 아웃리치 활동에 열을 올리자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김 본부장이 언론과 소통에도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고집불통’, ‘원맨쇼’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김 본부장은 결과로 말했다. 일본은 관세 부과 대상국가에 남았지만 우리나라는 제외됐다. 말을 아끼고 발로 뛴 김 본부장의 설득이 효과를 본 셈이다.
김 본부장은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학·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미국 대형 로펌에서도 일한 적이 있는 미국 전문가다.
이 때문에 과거 참여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한미FTA 협상을 지휘했을 때 국익이 아닌 미국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미FTA는 미국이 먼저 개정을 요구할 정도로 우리쪽에 좋은 성과를 냈다. 한미FTA를 맺는데 김 본부장의 미국을 향한 높은 이해도가 기여한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다. 철강 관세 면제는 4월말까지 잠정 유예된 것으로 영구 면제가 확정되지는 않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관세 면제와 관련한 조건을 놓고 치열한 협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3일 “김 본부장이 일주일을 예상하고 미국을 방문했다가 4주째 머물 정도로 치열하게 협상하고 있다”며 “막판까지 최선을 다하리라 본다”고 신뢰를 나타냈다.
한국과 미국의 통상당국 수장을 맡고 있는 김 본부장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은 철강 관세 문제를 놓고 이미 여러 차례 접촉했다. 앞으로 4월 말까지 계속 협상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의 인연도 재조명된다. 두 사람은 과거 같은 로펌에 몸을 담았던 적이 있다. 김 본부장은 경력 초기인 1986년 미국의 대형 로펌인 스카덴에 입사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이보다 먼저인 1985년 파트너변호사로 스카덴에 합류했다.
김 본부장은 3년 후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스카덴을 떠났으나 라이트하이저는 30년 동안 스카덴에서 일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 비서실장 등 이른바 라이트하이저 사단에도 스카덴 출신이 많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