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18-01-21 06:4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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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건설이 대우건설 매각 본입찰에 단독으로 참가하자 벌써부터 건설업계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먹는 격’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중견건설사가 시공능력평가 3위의 대형건설사를 품에 안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놀라움이지만 미래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
2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호반건설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더라도 건설업황의 미래 등을 놓고 봤을 때 인수 이후에도 걸어가야 할 길이 녹록치 않아 보인다.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인수를 최종 확정할 경우 단숨에 대형건설사로 도약하게 된다.
호반건설은 지난해 시공능력평가액 2조4521억 원으로 순위 13위에 오른 중견건설사다.
대우건설의 시공능력평가액인 8조3012억 원을 단순히 합산할 경우 평가액이 10조7천억 원 수준으로 늘어나 시공능력평가 2위인 현대건설(13조7106억 원)의 뒤를 이어 3위 사업자가 된다.
시공능력평가뿐 아니라 매출과 직원 수 등에서도 두 회사는 큰 차이를 보인다.
2016년 기준으로 호반건설의 매출은 대우건설의 9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호반건설 직원 수는 대우건설의 10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호반건설이 그동안 보수적 경영기조를 유지하며 주택사업을 이끌어온 데다 이른바 ‘무차입 경영’으로 재무구조도 안정적으로 관리해왔기 때문에 대우건설 인수에 베팅을 하며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형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호반건설은 건설사들 사이에서도 ‘현금부자’로 불릴 만큼 탄탄한 기업”이라며 “대형건설사 매물이 쉽게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대우건설을 인수할 경우 대형건설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여러 판단이 작용해 인수전에 참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건설시장 미래가 어둡다는 증권가의 전망이 이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대우건설을 품는다고 해도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기만은 힘들어 보인다.
대우건설은 주택사업뿐 아니라 플랜트와 인프라 등을 하는 종합건설사다.
플랜트사업 대부분은 중동을 중심으로 한 해외사업에 집중돼 있는데 2016년부터 시작된 해외시장의 부진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국제유가가 최근 60달러대 중반을 형성하면서 앞으로 일감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나아질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도 나오지만 유가 회복에 따른 발주 증가를 무조건적으로 기대하기 힘들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대우건설이 보유한 수주잔고만 보더라도 과거 해외사업의 비중이 30%를 차지했지만 2017년 3분기 말 기준으로 18%대까지 주저앉았다.
게다가 대우건설이 2017년 초에 2016년 4분기 결산을 하며 7천억 원이 넘는 잠재적 부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빅배스를 단행했지만 지난해 3분기에 또다시 해외사업에서 추가 손실을 냈던 점을 감안할 때 대우건설의 해외사업이 오히려 부담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호반건설은 설립 이후부터 현재까지 해외사업을 해본 적이 없어 사업 리스크를 관리하는데 시행착오를 겪을 공산이 크다고 건설업계는 바라본다.
정부의 부동산대책으로 앞으로 주택경기가 둔화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정부는 지난해 다양한 부동산대책을 쏟아낸 데 이어 앞으로 재건축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조건을 강화하거나 분양가 상한제 지역을 선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호반건설과 대우건설이 모두 하고 있는 주택사업에서 많은 일감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수익성이 기존보다 감소할 공산도 크다. 1조6천억 원을 투입하는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금호그룹도 대우건설에 큰 기대를 걸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인수했으나 건설경기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실적이 부진해지자 그룹 전체의 유동성에 악영향을 끼쳐 결과적으로 그룹 전체가 어려움에 빠졌다”며 “호반건설이 금호그룹처럼 ‘승자의 저주’에 빠질 가능성도 조심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적 측면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대우건설을 계열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주장이 대립해 갈등이 표출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벌써부터 대우건설 일부 직원들 사이에는 “그동안 대형건설사 직원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중견건설사에 인수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허탈한 생각이 든다”는 반응도 자리잡고 있다.
대우건설 노조는 벌써부터 호반건설의 종합건설업 경영능력을 문제삼으며 호반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할 경우 인수시도를 적극적으로 막아내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