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수업 명목하에 3세 경영인들의 초고속 승진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검증 없는 초고속 승진은 위험이 뒤따른다.
모든 도로에는 제한 속도가 정해져 있고, 누구도 예외없이 이것을 지킬 때 모두가 사고 없이 안전한 운전을 할 수 있다. 남들보다 두세배 빠른 속도를 내는 운전자는 다른 사람의 안전을 크게 위협함은 물론 자신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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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은 2001년 현대백화점 기획실장 이사로 입사해 2002년 기획관리담당 부사장, 2003년 총괄 부회장이 되면서 경영권을 맡았다. 2007년 회장이 되기까지 고작 6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초고속승진이다.
이런 경우가 정지선 회장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3세 경영인들이 입사 후 초고속으로 승진하고 임원이 되어 경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한다. 정지이 현대유앤아이 전무의 경우 2004년 사원으로 현대상선에 입사해 이듬해인 2005년에 과장으로 승진한 뒤, 2006년 초 현대유앤아이로 자리를 옮기며 실장에 올랐고 같은 해 말에는 전무로 승진했다. 2년 만에 사원에서 임원이 된 셈이다. 양홍석 대신증권 부사장은 2006년 대신증권에 사원으로 들어와 이듬해 상무와 전무를 거쳐 입사 2년만인 2008년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자사에 입사한 3세경영인 28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입사해 임원으로 진급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3.8년으로 이는 일반 공채신입사원이 임원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21.2년)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들 중 13명은 처음부터 임원으로 입사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 평사원으로 취직해 어렵사리 한 단계씩 올라가는 일반 직장인들이 보기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의 경영수업으로 한 기업을 이끌어야 할 전문 경영인을 배출하는 것이 가능하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재계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상적으로 입사해 임원이 되기까지 걸리는 기간 동안 익혀야 할 직무를 단기간에 익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삼성 인사 관계자는 40대 초반에 최고위직까지 올라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삼성에버랜드 사장의 승진에 대해 성과주의가 반영된 인사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찾기 어렵다. 오히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2000년 주도했던 e삼성 프로젝트가 1년만에 200억 이상의 손실을 냈으나 계열사들이 그 손해를 떠맡았던 적이 있다. 이부진 사장은 맡았던 호텔신라의 매출이 신장되긴 했으나 역시 계열사의 지원에 의한 것으로 개인의 역량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이런 사례들은 초고속승진 과정에서 나타나는 후계자 밀어주기 의혹을 받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경영 능력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경영권을 이어받는 건 경영권 세습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충분한 경험과 검증 없이 경영에 뛰어드는 경영인은 마치 과속을 한 자동차처럼 큰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혹시나 이들이 실패하게 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본인과 주변, 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 위험성을 고려할 때 이들의 초고속 승진을 통한 경영수업은 과속을 하면서 요행수로 사고가 나지 않길 바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