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17-10-29 04: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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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인수합병을 놓고는 흔히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있는지 끝까지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무리하게 인수합병을 추진했다가 업황의 악화, 자금난 등으로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인수합병을 추진했다가 발을 빼거나 실패해 당시에는 성장동력을 놓쳤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뒷날 오히려 잘됐다고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전경.
29일 재계에 따르면 인수가격이 최소 수조 원대에 이르는 대형기업 인수전에 쓴잔을 마셨다가 시간이 흐른 뒤 실패가 전화위복이 된 경우가 꽤 있다.
대표적 사례가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이다.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는 2008년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각각 31.26%, 19.11% 보유하고 있었는데 정부가 산업은행의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면서 대우조선해양이 매물로 나왔다.
대우조선해양은 당시 조선업 호황에 힘입어 2007년 말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12조 원을 웃돌았던 초대형 기업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으로 100억 달러 이상의 일감을 수주하기도 했다.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관심을 보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조선업 호황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포스코그룹과 GS그룹, 한화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포스코그룹은 선박건조에 쓰이는 철강부문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고 GS그룹은 GS칼텍스의 영업활동으로 글로벌 대형 석유기업들과 쌓아온 파트너십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웠다. 한화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은 각각 방산사업 확대와 조선업으로 사세확장 등의 이유를 들었다.
산업은행은 최종 인수후보로 한화그룹을 낙점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한화그룹의 자금조달방안을 문제삼으면서 본계약이 최종 결렬됐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한화그룹을 비롯해 인수전에 참여했던 기업들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사세확장의 기회를 날리게 된 점을 아깝게 보는 평가가 우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이 해양플랜트사업에서 수천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기 시작한 2014년이 되자 이런 평가는 쑥 들어갔다.
대우조선해양은 해양플랜트부문의 대규모 적자뿐 아니라 수주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자 2015년 말에 최대주주인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2조9천억 원의 자금을 수혈받기도 했다.
▲ 대우건설 본사.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참여했던 한 대기업 관계자는 “10년 가까이 흐른 현재 인수전 당시를 되돌아보면 그 때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라며 “자칫했으면 그룹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도 있어 아찔하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앞서 2006년 진행된 대우건설 인수전에서도 운 좋게 ‘승자의 저주’를 피했다.
한화그룹은 당시 시공능력평가 선두권을 달리던 대우건설이 매물로 나오자 한화건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대우건설이 보유한 플랜트 시공능력과 한화석유화학의 시너지도 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 본입찰에 시장의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6조4천억 원이라는 금액을 써내면서 한화그룹은 대우건설 인수를 포기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 인수한 지 3년만에 그룹 전체가 허덕이는 상황에 처하면서 한화건설은 대우건설 인수에 실패했던 점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게 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8년 말에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대우건설 주가가 폭락하자 인수를 위해 재무적투자자들로부터 대출받은 3조 원에 대한 이자부담에 허덕이게 됐고 결국 대우건설을 다시 매물로 내놓았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