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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포니 정' 퇴진, 정몽구 장악

박은영 기자 dreamworker@businesspost.co.kr 2014-03-04 12:5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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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2일 ‘한국 자동차산업의 대부’ 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이 전격적으로 물러났다. 2월28일 현대차 주총에서 이사들을 자기 사람으로 채워 이른바 ‘정세영 쿠데타’를 일으킨지 불과 4일만의 퇴진이었다.

  현대차 '포니 정' 퇴진, 정몽구 장악  
▲ 왼쪽 정세영 명예회장, 오른쪽 정주영 회장
정주영 명예회장이 정세영 회장을 불러 “자동차 경영에서 손떼고 정몽구 회장에게 물려주라”고 지시한 데 따른 조처였다.

이에 따라 정세영 회장은 주주이사로 남고 정몽구 회장이 이사회 의장도 겸직했다. 대표이사는 정몽구 회장과 정세영 회장의 아들 정몽규 부회장이 맡도록 했지만 단지 모양새를 갖추는 것에 불과했다.

정몽구 회장은 곧바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김판곤 부사장 등 ‘정세영 사람’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당시 정주영 명예회장의 비서 출신인 이전갑 부사장, 정몽구 회장의 핵심측근인 이계안 기획조정실장 등이 현대차를 장악했다.

정세영 회장은 한국 자동차산업의 대부로 불린다.

1967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권유로 현대차 초대 사장을 맡은 뒤 1973년 국산 고유모델 포니를 개발했다. 1983년 당시 생산규모가 10만대에 불과했던 생산시설을 2년 만에 30만대 규모로 늘리고 1986년 미국 시장 진출을 이뤄냈다. 그래서 ‘포니 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991년 한국 최초로 독자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개발했다. 1997년 세계 최대 상용차공장인 전주공장을 건립하고 터키와 인도에 공장을 준공해 현대차가 세계적 자동차 회사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정세영 회장은 현대차에서 물러난 뒤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으로 활동하다 2005년 5월 숨졌다. 아들 정몽규 회장은 아버지의 뜻을 기려 2005년 11월 ‘포니정 재단’을 세워 장학사업과 연구후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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