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전의 판도가 복잡해지고 있다. 일본정부와 도시바, 인수전 참여자들 사이 이해관계가 서로 부딪히며 매각작업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거액을 투자해서라도 도시바와 협력기회를 찾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점점 불리한 입장에 놓이며 최선의 수를 찾는 데 고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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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
30일 외신을 종합하면 도시바가 반도체사업 매각에서 여러 걸림돌을 만나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의 반도체사업 매각이 합작법인 계약위반이라고 주장하며 법정공방을 펼치고 있는데 매각의 향방이 미국법원에 넘어간 점이 최대 악재로 꼽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법원은 웨스턴디지털의 주장을 검토하는 가운데 도시바가 매각대상을 결정하기 2주 전에 웨스턴디지털에 사전통보해야 한다는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에 새 인수제안을 내놓거나 추가 법적대응에 나설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 셈이다.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은 합작법인을 통해 낸드플래시 핵심기술을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다. 분쟁이 길어져 사업에 차질을 빚을 경우 서로 피해를 보는 상황이지만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
도시바는 반도체사업 매각을 통해 자금확보가 시급한데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를 궁지로 몰아넣을수록 인수전에서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웨스턴디지털은 SK하이닉스가 인수전에 참여할 경우 도시바의 반도체사업 매각을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인수경쟁자를 견제하는 데도 적극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인수전 참여를 반대하는 여론은 일본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반도체기술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만큼 기술유출 가능성이 있는 해외기업에 매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펀드가 주도한 컨소시엄이 도시바 반도체 인수 우선인수협상자로 선정됐다가 사실상 무산된 이유도 SK하이닉스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SK하이닉스가 향후 도시바 반도체사업의 지분을 확보해 의결권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졌다.
SK하이닉스는 일본 정부펀드가 주도한 컨소시엄에 약 3조 원을 들여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 반도체를 인수할 경우 기술과 생산시설 등을 공유하는 협력방안을 찾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수전 결과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본정부 측과 웨스턴디지털 등이 모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으며 도시바 반도체사업 지분을 확보할 확률이 낮아지고 있다.
일본 정부펀드는 웨스턴디지털의 매각 반대를 막기 위해 컨소시엄에서 SK하이닉스를 제외하고 웨스턴디지털을 새로 끌어들여 도시바에 새 인수제안을 내놓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이에 맞서 투자규모를 5조 원으로 늘리는 방안과 지분확보를 포기하는 대안 등을 제시하며 희망의 끈을 놓치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가 인수전에 발을 빼는 대신 수조 원의 자금을 자체적으로 낸드플래시시설 투자에 사용할 경우 삼성전자 등 경쟁사의 대규모 투자공세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갖출 수 있다.
그런데도 인수전에 적극적인 이유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반도체와 협력을 통해 낸드플래시 기술공유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협력을 꾀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도시바는 글로벌 하드디스크업계 3위업체로 서버고객사를 대거 확보하고 있다. 서버업체들이 하드디스크를 SSD로 교체하는 수요가 늘어나며 서버분야는 낸드플래시의 최대 수요처로 떠오르고 있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와 협력을 통해 이런 서버고객사와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낸드플래시와 서버용D램의 공급을 대폭 확대할 기회를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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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바의 일본 낸드플래시 생산공장. |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에 비해 서버용 SSD시장에서 점유율이 미미하다. 최근 글로벌 1위 하드디스크업체 씨게이트와 추진하던 협력논의도 무산되며 도시바와 손을 잡는 것이 더욱 절실해졌다.
하지만 지분확보를 포기하는 등 자세를 낮춰 도시바 인수전에 참여할 경우 대규모 투자에 비해 협력효과는 거의 보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반대로 계속 지분확보를 추진할 경우 경쟁업체에 인수기회를 빼앗길 수도 있다. SK하이닉스로서는 진퇴양난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인수전에 참여하는 대신 도시바 에 직접 자금을 지원해 협력방안을 찾는 방법 등을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전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여있지만 적극적으로 협력의 기회를 찾고 있는 셈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인수전 판도가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도시바와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형태의 협력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된다.
인수과정을 주도하는 박정호 SK텔레콤 사장도 최근 니혼게이자이와 인터뷰에서 “도시바와 SK하이닉스는 서로의 장점으로 시너지를 내기 위해 꼭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바가 협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적극적인 구애에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