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최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남미에도 K뷰티 수요가 있지만 아직 한국 기업들이 효과적으로 진출하지 못했다"며 "멕시코법인을 시작으로 중남미 공략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실리콘투는 화장품 브랜드와 해외 거래처를 단순히 연결하는 중개업체와 다른 사업구조를 지니고 있다.
실리콘투는 국내 화장품 브랜드로부터 상품을 직접 매입해 해외 물류센터에 보관한 뒤 현지 도매상과 유통업체, 온라인 플랫폼 등에 판매한다. 상품이 팔리기 전에 매입대금과 운송비를 부담해야 하지만 현지 거래처는 여러 한국 화장품 브랜드의 상품을 한꺼번에 조달할 수 있다.
이러한 사업방식에는 중소 화장품 브랜드가 개별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해외 유통의 빈틈을 대신 메우겠다는 김 대표의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파악된다.
김 대표는 2024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유통업자의 역할은 결핍을 메워주는 것"이라며 "브랜드사가 해외 고객사의 주문 물량을 제때 공급하기 어렵다면 실리콘투가 상품을 직접 매입해 현지 창고에 배치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방식은 K뷰티 시장의 인기 브랜드가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서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실리콘투는 600여 개 브랜드의 1만7천 개 상품을 취급해 약 7천 개 해외 거래처에 공급하고 있다. 특정 브랜드의 판매량이 감소해도 새롭게 성장하는 브랜드와 상품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해 특정 브랜드에 따른 실적 변동을 줄일 수 있는 구조다.
한유정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K뷰티 시장의 성과가 여러 브랜드와 상품으로 분산될수록 특정 브랜드의 흥행보다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갖춘 유통사의 역할이 중요해진다”며 “실리콘투는 600여 개 브랜드의 상품을 공급하는 만큼 브랜드 교체를 포트폴리오 안에서 흡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업방식이 성과로 이어진 대표적 지역으로는 유럽이 꼽힌다.
실리콘투는 2023년 네덜란드에 유럽 총괄법인을 세우고 폴란드에 물류센터를 마련했다. 유럽은 국가마다 소비자 선호와 주요 유통업체가 달라 개별 화장품 브랜드가 국가별 물류망과 거래처를 직접 확보하기 어렵다. 실리콘투는 여러 브랜드의 상품을 현지에서 통합 유통해 개별 브랜드의 물류 및 거래처 확보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실리콘투의 유럽 매출은 2026년 1분기 1618억 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25년 1분기 465억 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3배 이상으로 늘었다.
폴란드 물류센터도 올해 5월 1만3223㎡(약 4천 평)에서 1만9835㎡(약 6천 평)로 확대됐다. 이승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확장된 물류센터에 이론상 약 2500억 원어치의 재고를 보관할 수 있어 현재 성장 속도를 감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남미에서도 실리콘투가 다브랜드 유통체제를 확대할 수 있는 수요 기반이 커지고 있다.
2025년 한국 화장품의 멕시코 수출액은 약 6천만 달러(약 857억 원)로 2024년보다 149.9% 증가했다. 브라질 수출도 6천만 달러로 115.1% 늘었다. 아직 미국이나 유럽 주요 국가보다 수출 규모는 작지만 증가 속도는 빠르다.
브라질 화장품·생활용품·향수산업협회(ABIHPEC)는 브라질을 세계 3위 화장품·생활용품·향수 소비시장으로 분류하고 있다. 브라질은 연간 관련 신제품 출시 건수에서도 미국과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4위권에 놓여 있다.
브라질은 국토가 넓고 수입 및 유통 절차도 복잡하다. 현지에서 화장품을 수입·보관·유통하려는 사업자는 브라질 국가위생감시국(ANVISA)의 사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품 위험도에 따라 등록이나 신고 절차도 거쳐야 한다.
한국의 중소 화장품 브랜드가 제품마다 현지 규제에 대응하고 여러 거래처에 직접 상품을 공급하기는 쉽지 않다. 실리콘투가 여러 브랜드의 상품을 묶어 수입하고 현지 재고를 공급한다면 현지 거래처의 조달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실리콘투 관계자는 “권역별로 인기 브랜드와 세부 상품(SKU)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며 “중남미 시장 역시 일부 브랜드를 제외하면 글로벌 인지도를 따라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유럽에서 판매량이 확인된 브랜드와 상품을 중남미에 그대로 옮기는 것만으로 같은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브랜드·다품종 유통체제의 틀은 활용할 수 있지만 실제 재고로 확보할 상품은 현지 기후와 소비자 선호, 판매채널에 맞춰 다시 선별하는 것이 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실리콘투가 올해 안에 브라질법인을 설립하며 중남미 진출을 본격화한다. 사진은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실리콘투 광주 물류센터 전경. <실리콘투>
취급 상품이 많아질수록 규제 대응과 재고 부담도 함께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브라질에서는 개별 제품이 위험도에 따라 등록이나 신고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판매 가능성이 높은 상품을 먼저 추려 재고 투입을 집중하는 일이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수입 화장품에 붙는 세금과 물류비도 상품 선별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높은 관세와 세금으로 브라질에서 수입 화장품 가격이 생산지 가격의 3배 이상으로 올라가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리콘투로서는 관련 비용을 반영한 뒤에도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브랜드와 상품을 골라야 한다.
실리콘투는 중남미에 상품을 추가로 배치할 수 있는 재고 운용능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실리콘투의 재고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판매 속도와 건전성은 여전히 회사의 관리기준 안에 있다. 이에 현지 수요에 맞는 상품을 선별해 재고를 확보하면서도 현재의 재고회전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으로 여겨진다.
실리콘투의 재고자산은 2024년 말 1459억 원에서 2025년 말 약 3천억 원으로 2배가량 늘었다. 2026년 1분기 말에는 3393억 원까지 증가했다.
그럼에도 2026년 1분기 재고자산회전일수는 약 118일로 회사 관리기준인 120일을 밑돌았다. 재고자산평가충당금도 약 17억 원으로 전체 재고자산의 1%에 미치지 않았다.
실리콘투 관계자는 “중남미에서는 현지법인 설립 전부터 제품을 판매해 수요 자료를 이미 확보하고 있다”며 “기존 판매자료를 바탕으로 현지 수요에 맞춰 상품을 조달하고 재고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