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왓챠가 최근 서울회생법원에 ‘인수·합병(M&A) 추진 및 매각 주관사 선정 기준에 대한 허가 신청’을 제출했다. 사진은 박태훈 왓챠 대표이사. <왓챠>
[비즈니스포스트] 박태훈 왓챠 대표이사가 1세대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왓챠'를 매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인수자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왓챠가 보유한 충성 이용자층과 콘텐츠 평가 플랫폼 '왓챠피디아'의 데이터 자산 가치를 부각하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OTT 생태계를 살펴보건대 사실상 왓챠의 설 자리가 없다는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린다.
30일 콘텐츠 업계에 따르면 왓챠는 서비스 매각을 결정하고 원매자를 찾는데 집중하고 있다.
회사는 최근 서울회생법원에 '인수·합병(M&A) 추진 및 매각 주관사 선정 기준에 대한 허가 신청'을 제출했다. 회생계획안 제출기한은 2월20일까지 연장됐지만 독자 생존 방안을 모색하기보다 매각을 전제로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태훈 왓챠 대표이사는 매각 가능성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매각이 실패한다면 폐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왓챠가 29일부터 나흘 동안 서울 중구에 위치한 서울영화센터에서 오프라인 상영회를 여는 점도 이런 노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행사는 서비스 10주년을 맞아 그간 축적해온 시청 데이터를 통해 이용자들의 취향을 큐레이팅해 선보인다는 목적으로 기획됐다.
행사의 모든 상영과 이벤트는 무료로 진행했으며 티켓 예약은 3분 만에 매진됐다.
박 대표가 왓챠의 충성 고객층을 인수자에게 시각적으로 입증하며 구매 유인을 제공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협상력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보유 자산의 활용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표의 전략에도 왓챠가 더 이상 OTT 경쟁 구도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 왓챠 로고. <왓챠>
2020년을 기점으로 OTT 시장은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는 2023년부터 2026년까지 한국 콘텐츠에 3조3천억 원 규모를 투자했고 앞으로도 비슷한 규모의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기조를 밝혔다.
토종 OTT인 티빙과 웨이브 역시 연합을 통해 체급을 키우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쿠팡에 힘입어 세력을 키운 쿠팡플레이도 스포츠 중계권을 사들이며 수요 끌어 모으기에 나섰다.
반면 왓챠는 제한된 투자 여력으로 콘텐츠 경쟁력을 잃으며 이용자들의 이탈을 막지 못했다. 왓챠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2022년 110만 명에서 2025년 50만 명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수백만 명대 이용자를 유지하고 있는 경쟁 플랫폼들과의 격차가 뚜렷하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25년 12월 넷플릭스 MAU는 1520만 명으로 가장 높았으며 쿠팡플레이 850만 명, 티빙 530만 명, 웨이브 240만 명 순서대로 기록됐다.
영화 평가 플랫폼 '왓챠피디아'를 거론하며 매각이 성사될 유인이 충분하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나온다. OTT 서비스 자체의 경쟁력은 약화됐지만 왓챠가 축적해온 데이터 자산은 여전히 활용 가치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왓챠피디아는 OTT 왓챠 출범 이전인 2012년부터 운영된 플랫폼으로 이용자들이 콘텐츠에 남긴 평점과 평가 데이터가 개인 맞춤형 콘텐츠 추천 모델의 출발점이 됐다.
왓챠피디아에는 콘텐츠 한 편당 수백만 명의 이용자가 참여해 남긴 정량적·정성적 평가 데이터가 축적돼있다. 현재까지 왓챠피디아의 누적 평가 콘텐츠 수는 총 7억5천여 건에 달한다. 왓챠피디아의 최근 3년 MAU는 2022년 287만 명, 2023년 306만 명, 2024년 380만 명으로 상승세를 그리며 2025년 433만 명을 기록했다.
왓챠가 2012년부터 14년가량 쌓아온 이용자 데이터가 콘텐츠 산업 전반에서 인공지능(AI)과 추천 알고리즘 학습에 활용 가능한 자산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왓챠의 데이터 가치와 관련해 "왓챠피디아가 보유한 데이터의 깊이와 범용성이 중요하다"며 "데이터를 보유했다는 것만으로 매력적이라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넷플릭스와 티빙같은 OTT에서는 콘텐츠 추천 기능을 이미 도입한 상태이므로 콘텐츠 업계가 아닌 다른 결의 업계가 왓챠를 흡수해 시너지를 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일각에서는 OTT 서비스 자체의 경쟁력은 약화됐지만 왓챠가 축적해온 데이터 자산은 여전히 활용 가치가 남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왓챠>
왓챠의 매각 시도를 놓고 비교 사례로 거론되는 회사가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 전문 플랫폼 '라프텔'이다. 왓챠와 라프텔 모두 특정 취향층을 기반으로 출발한 토종 OTT라는 점에서 초기 조건이 유사했지만 인수 전략에 따라 향방이 갈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라프텔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버티컬 콘텐츠에 집중해 2025년 상반기 기준 누적 가입자 600만 명을 돌파했다. 특히 단독 사용자 비율이 46%로 넷플릭스(48%)에 버금가는 핵심 고객층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한때 '시네필의 성지'로 불리며 마니아층을 모았던 초기 왓챠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얘기도 있다.
현재 이들이 처한 상황은 다소 다르다.
라프텔은 2019년 리디에 인수된 뒤 2022년 애니플러스로 최대 주주가 변경됐다. 이후 애니플러스를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 독점 판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제작 투자까지 확대하며 콘텐츠 전략의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왓챠는 2022년 LG유플러스와 전사 인수 협상을 진행했지만 누적 적자와 복잡한 전환사채 구조, 콘텐츠 투자 부담 등이 걸림돌로 작용해 협상이 무산됐다.
업계 관계자는 "라프텔은 수요층이 확실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성장했다고 본다"며 "인수주체였던 리디 역시 팬덤이 확실한 BL(남성 사이의 사랑과 로맨스를 다루는 장르) 콘텐츠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당시 전략적 시너지가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