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F는 오 부회장과 김 사장의 각자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오 부회장이 비패션사업을 비롯한 경영 전반과 부동산, 식품 등 일부 자회사를 관리하고 김 사장이 패션사업을 총괄하는 방식이다.
두 대표는 여태껏 한쪽의 성적표가 부진하면 다른쪽에서 성과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시너지를 냈는데 지난해만 보면 오 부회장의 부진을 김 사장이 패션 브랜드 '헤지스'의 글로벌 성과로 완벽하게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29일 LF 실적을 종합하면 LF는 매출 성장 정체에도 영업이익률을 9%까지 끌어올리며 수익성 강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
LF는 2025년 연결기준 매출 1조8811억 원, 영업이익 1693억 원을 기록했다. 2024년과 비교하면 매출은 4%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34% 늘었다.
업계 안팎에서는 지난해 LF의 수익성이 개선될 수 있었던 일등공신으로 김상균 사장이 맡은 패션 브랜드 '헤지스'를 꼽는다. LF 역시 영업이익 개선 배경으로 헤지스의 호실적을 지목했다.
헤지스는 김 사장이 이끄는 토종 캐주얼 브랜드다. 2000년 론칭 이후 해마다 해외 시장에서 두 자릿수 매출 성장률을 이어오다 2025년 처음으로 연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국내 전통 브랜드가 '1조 클럽'에 입성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매출 가운데 절반 이상은 해외에서 거뒀다. 헤지스는 현재 중국과 대만, 베트남, 러시아 등 주요 국가에 진출해 있으며 글로벌 매장 수는 중국(라이선스) 580개, 대만 18개, 베트남 10개, 러시아 2개 수준이다.
김 사장이 '클래식' 콘셉트를 앞세우고 국가별 특성에 맞춘 섬세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한 덕분에 헤지스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에서는 백화점 입점을 통해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하는 한편 베트남에선 선호도가 높은 선명한 색상의 제품을 매장 전면에 배치하는 등 국가별 소비 성향에 맞게 제품과 유통 전략을 펼쳤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헤지스의 해외 시장 확장 기조를 올해에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상하이 신천지에 헤지스 플래그십 매장을 열고 인도에도 첫 오프라인 매장 출점을 준비하고 있다.
오규식 부회장 역시 패션사업에 기여하고 있다. 그가 관리하는 자회사에 소속된 브랜드 '던스트'가 온라인 채널에 기반해 해외 패션사업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밀레니얼 캐주얼 브랜드 던스트는 2019년 LF의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으로 출발한 브랜드로 2021년 자회사 '씨티닷츠'로 분사했다. 당시 MZ세대 직원들을 주축으로 기존 조직의 절차나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 혁신적 방식으로 운영되며 주목을 받았다.
던스트는 2024년 상하이 법인을 설립하고 티몰글로벌 등 중국 주요 온라인 플랫폼에 입점했다. 중국 법인 설립 1년 만에 던스트는 티몰글로벌 여성 의류 카테고리 상위 1%에 진입했고, 해외 브랜드 가운데서는 20위권에 올랐다. 지난해 11~12월 중국 매출은 2024년 같은 기간보다 60% 증가했다.
오프라인 접점 확대도 병행하고 있다. LF는 지난해 11월 상하이 화이하이중루에 던스트 팝업스토어를 열었으며 2주간 방문객 1만 명을 넘겼다.
▲ 서울 명동에 위치한 헤지스 플래그십 스토어 '스페이스H'의 헤이마켓 전경.
다만 오 부회장이 LF의 비패션사업을 주도해온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오 부회장의 지난해 성적에 합격점을 주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오 부회장은 지난 몇 년 동안 사업 다각화에 주력해왔다. 본업이었던 패션 업황 부진을 의식해 '종합 라이프스타일 기업' 도약을 위해 체질을 개선하라는 그룹 차원의 과제가 부여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는 그룹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식품과 뷰티, 부동산·금융, 방송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왔다. LF의 연결대상 종속회사 수는 그가 LF 대표이사로 부임한 2012년 말 14개에서 2024년 말 44개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오 부회장은 2024년 12월 LF푸드 회장에 오른 뒤 식품 사업에서 인수합병을 통해 제조 역량을 높이고 수익성을 강화하겠다는 전략도 펼치고 있다. 2025년 8월 소스 제조업체 '엠지푸드솔루션'을 인수했으며 10월에는 식자재 유통 자회사 '구르메F&B코리아'를 흡수합병하고 통합법인을 출범시켰다.
다만 식품 부문에서 여전히 뚜렷한 성장 흐름은 보이지 않는다. 연도별 상반기 매출만 놓고 보면 LF푸드 매출은 2022년 620억, 2023년 763억, 2024년 825억 상승세를 그리다가 2025년 상반기 777억으로 뒷걸음질했다.
영업이익으로 봐도 다르지 않다. LF푸드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2023년 33억, 2024년 18억으로 쪼그라들다가 2025년 영업손실 4억 원을 내며 적자로 돌아섰다.
부동산·금융 부문 역시 지난해 비교적 둔화된 성장세를 보였다. 회사의 2025년 상반기 매출은 894억 원으로 2024년 같은 기간보다 2.6% 증가했다.
LF는 공시를 통해 2025년 연결기준 매출 감소의 원인으로 LF의 부동산 자회사인 코람코자산신탁을 꼽기도 했다. 코람코가 2024년 시행한 대규모 매각 이익의 여파로 해당 부문에서 매출 성장세 둔화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오 부회장이 맡은 비패션사업의 성과가 다소 제한적인 가운데 김상균 사장이 패션이라는 LF의 본업 경쟁력을 입증하며 실적을 떠받쳤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비패션 중심의 사업다각화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 대표가 이끄는 ‘헤지스’가 오 부회장의 체면을 세웠다는 것이다.
물론 오 부회장을 향한 평가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 부회장이 공을 들인 비패션사업이 LF의 실적에 어느 정도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김 사장이 패션사업을 들고 해외 시장 공략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는 목소리도 LF 안팎에서 나온다.
오 회장은 올해 데이터센터와 코어오피스(안정적 임대수익이 가능한 업무용 부동산) 등 유망한 투자 영역을 개발해 다시 외연 확장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오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패션 부문은 외형 확대 중심 경쟁에서 벗어나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국내외 저성장과 산업 구조 변화 속에서도 성과를 가시화하겠다"고 밝혔다.
LF 관계자는 "사업별 실적은 3월 공개 예정이라 구체적 수치를 밝히기는 어려우나 연결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전반적 실적 흐름이 나쁘지는 않다"며 "푸드 사업은 향후 글로벌 사업도 준비하고 있으며 신년사에서 제시한 방향에 맞춰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