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동통신 3사 가운데 '꼴찌' LG유플러스가 3분기에 연결 기준으로 4조108억원의 매출과 161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은 5.5% 늘었고, 영업이익은 34.3% 줄었다.
그런데도 여명희 LG유플러스 최고재무책임자 겸 최고리스크책임자는 "모바일 부문의 성장세에 힘입어 견조한 실적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영업이익이 무려 34.3%나 줄었는데 '견조한 실적을 기록했다'고.
▲ "메추리알도 못낳을 것 같다"는 소리를 듣던 LG유플러스가 황금을 낳고 있다. <연합뉴스>
3분기 실적 발표 보도자료에도 '뽕'이 잔뜩 들어가 있다. 성적이 쑥 오른 아이가 부모님한테 성적표를 내보이며 자랑을 늘어놓을 때와 같은 모습이 역력하다.
"희망퇴직에 따른 일회성 인건비 1500억원을 반영한 것을 제외하면, 3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26.7% 늘어난 3117억원에 달한다."
숨겨둔 카드를 내보이듯 따로 강조한 내용이다. 사실은 영업이익이 준 게 아니라 26% 늘었다는 것이다.
올해 연간 기준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을 수 있다고 뻐기기까지 한다.
다른 자랑꺼리도 내보인다.
3분기 기준 이동통신 회선 수(LG유플러스 이동통신망을 쓰는 알뜰폰 가입자 포함)가 3025만9천여 개로 처음으로 3천만 개를 넘었단다. 이 가운데 LG유플러스 가입자는 2120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5.4% 늘었고, LG유플러스 이동통신망을 쓰는 알뜰폰 가입자는 905만 명으로 16.8% 증가했다.
가입자당매출(ARPU)이 상대적으로 높은 5세대(5G) 가입자 증가 폭은 19.1% 달했다. LG유플러스 이동통신 가입자 중 5세대(5G) 가입자 비중은 81.6%로, 지난해 동기 대비 11.4%포인트 증가했다.
요약하면, 가입자 수를 크게 늘렸고, 특히 가입자당매출이 상대적으로 높은 5G 가입자를 큰 폭으로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매출과 수익성을 동시에 크게 향상시켰다는 뜻이다.
이런 성적표을 쥘 수 있었던 데는 1위 사업자 SK텔레콤이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진흙탕으로 나자빠진 덕이 컸다. SK텔레콤 가입자가 100만 명 이상 이탈했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LG유플러스로 이동했다.
이어 2위 사업자 KT에서도 통신망이 뚫려 유령(불법) 기지국이 침투하고, 그 여파로 가입자들이 무단 소액결제 피해까지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입자 이탈이 있고, LG유플러스는 '줍줍'한다.
SK텔레콤은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뒷수습에 매달리느라 아직 반격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KT에선 통신망 관리를 엉망으로 해 해킹 및 무단 소액결제 사태를 부른 데다 통신망 서버(컴퓨터)의 악성코드 감염 사실 등을 법 절차대로 신고하지 않고 숨겨온 사실이 속속 드러나며 가입자들의 이탈 움직임에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LG유플러스 쪽에서 보면, 경쟁업체에서 이탈하는 '우량 가입자'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실적 개선을 이루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LG유플러스 역시 해킹 의혹을 받아 신고까지 했으나 SK텔레콤의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과 KT의 해킹 및 무단 소액결제 사태에 가려 부각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SK텔레콤은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사태 뒷수습을 마무리해야 하고, KT는 '발 등의 불' 해킹과 무단 소액결제 사태부터 해결해야 한다.
더욱이 SK텔레콤과 KT는 통신망 관리를 엉망으로 하다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부른 혐의로 영업정지 같은 행정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SK텔레콤에 대한 행정처분 여부와 시기를 묻는 질문에 "정부 지시를 어기고 로그기록 등을 삭제한 행위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면, 그것까지 반영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사이 지난 1월 19.20%이던 LG유플러스 이동통신 가입자 점유율은 7월에는 19.52%로 높아졌다. 과기정통부 통계가 공표되지 않는 사이 LG유플러스 가입자 점유율은 20% 돌파 목표에 더 다가갔을 수 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만나 "누구보다 돌아가신 구본무 선대 회장님이 기뻐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메추리알도 못 낳을 것 같더니 '드디어 황금알을 낳기 시작했구나'라며 좋아하실 것 같다"고 했다.
1997년 LG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구본무 회장 주관으로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서 오찬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 전 LG그룹 홍보담당자가 "오늘은 창립 5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니 분위기 어색하게 만드는 질문은 자제하고 덕담을 나눠달라"고 기자들을 단속했다.
홍보실 요청 때문이었는지, 예정된 간담회 시간이 끝나가는데도 어느 누구도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당시는 제2 시내전화 사업자 선정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LG그룹이 제2 시내전화 사업자 지분을 얼마나 가지려고 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기자는 간담회 종료 직전 테이블 앞에 놓인 마이크를 켜 '회장님께 질문을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당시 한겨레 기자, 그것도 출입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되는 기자가 질문을 하겠다고 하니 장내 분위기가 싸해졌다.
LG가 제2 시내전화 사업자의 주요 주주로 참여하는지, 참여한다면 지분율은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구 회장이 헛기침을 하며 머뭇거렸다. 옆에 앉은 이문호 사장이 마이크를 당기더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회장님께 보고드리지 못했다"고 일축했다.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데 구 회장이 마이크를 당겼다.
"그게 말입니다, 제가 말입니다, PCS(개인휴대전화, 후일 '주파수만 다른 이동전화'로 재분류)가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라고 하길래 각서(당시 LG그룹은 구 회장 취임 뒤 신사업으로 꼽힌 통신서비스 사업을 키우기 위해 데이콤 지분을 몰래 확보해 차명으로 갖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는데, PCS 사업 허가 신청 때 데이콤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는 구 회장의 친필 각서를 첨부했다)까지 쓰고 사업권을 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 보니 황금알은 커녕 메추리알도 못낳을 것 같아요."
그 자리에 참석했던 기자들 대다수가 구 회장의 이 멘트로 기사를 출고했고, 다음 날 아침 신문에도 주요하게 실렸다. 구 회장이, LG그룹이 통신서비스 사업에 자신감을 잃었다는 업계 관계자 멘트를 곁들이기도 했다.
이후 구 회장이 이동전화 사업에 자신감을 잃었다는 게 '사실'로 굳어졌다.
더욱이 이동전화 사업이 LG전자 휴대전화 사업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SK텔레콤·신세기통신(후일 SK텔레콤에 흡수합병)·KTF(KT에 합병)·한솔PCS(KTF에 합병) 등이 경쟁 사업자(LG텔레콤)를 돕는 것이라며 LG전자 휴대전화를 냉대했다.
거꾸로 PCS 사업권 경쟁에서 밀려난 삼성전자와 현대전자(후일 팬택에 인수)가 어부지리를 챙기는 상황이 됐다.
구 회장은 KT 사장 출신의 이상철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LG유플러스(당시는 LG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전격 영입해 통신서비스 사업의 전권을 맡기는 결단을 내렸다. 이후 LG유플러스가 LTE에 올인하는 전략으로 이동통신 시장 판도를 바꾸면서 구 회장도 자신감을 일부 회복했다.
LG전자 휴대전화 사업은 맥을 못추다 스마트폰 흐름을 타지 못했고, 구광모 회장 취임 뒤 전격 정리됐다.
LG유플러스는 '울보 꼴찌'에서도 벗어나 지금은 SK텔레콤·KT와 당당하게 경쟁하는 사업자로 성장했다. '울보 꼴찌'란 경영진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당시는 정보통신부)와 국회 등을 찾아다니며 "비대칭 규제 정책을 강화해달라"고 읍소하고, 홍보실 관계자들은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우는 소리를 해댄다고 해서 LG유플러스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가입자가 1천만 명 돌파를 앞뒀을 때쯤 이 업체 경영진과 홍보실 관계자들도 우는 소리 전략을 멈췄다. 정부의 사업자별 비대칭 규제도 상당부분 없어졌다.
올해는 3분기도 되기 전에 경영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이후에는 힘 조절을 고민하기까지 했다.
"구본무 회장이 살아계셨다면 엄청 기뻐하시며 풍성한 승진·성과급 잔치를 벌여주셨을텐데." "계열사간 형평성과 위화감을 따지는 LG그룹 문화 때문에 풍성한 잔치는 열리기 어려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