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가족이 5월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전기차 충전소에 주차한 현대차 아이오닉9 차량에 탑승하는 홍보용 이미지. <현대차그룹> |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전기차 세액공제 보조금을 폐지하면서 포드와 GM 등 완성차 업체가 줄줄이 전동화 목표를 축소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전기차 세액공제 축소를 포드와 GM을 추월할 계기로 삼을지 아니면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 중심으로 전략을 새로 짜야 할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각) 경제전문지 포천 등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가 2008년에 처음 도입했던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이 10월 부터 없어진다.
미국 정부는 전기차를 구입하는 소비자에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50만 원)의 세액공제를 지원했는데 트럼프 정책으로 이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이에 비싸지는 전기차를 구매할 미국 소비자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책임자(CEO)는 9월30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세액공제 종료로 현재 10% 대인 전기차 점유율이 5%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는 내연기관차에 유리한 환경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온실가스 배출원이 공중 보건에 위협이 된다는 기존의 정부 판단을 철회할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정부가 전기차 대신 내연기관차 사업에 집중하도록 완성차 업체를 사실상 몰아가는 셈이다.
실제 포드는 일부 전기차 신차 개발을 취소하고 공장에 하이브리드 라인을 추가해 세액공제 종료에 대비하고 있다.
포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전동화 전환에 적극적이었던 GM마저 최근 내연기관차로 급선회했다.
GM은 당초 뉴욕주 토나완다 공장에서 전기차 모터를 생산하려던 계획을 버리고 8기통 내연기관 엔진에 대한 투자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9월29일자 기사를 통해 “가장 적극적으로 전기차를 옹호하던 GM이 배출가스 규제 반대 입장으로 돌변했다”고 지적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과 메리 바라 GM CEO(왼쪽)가 2027년 3월15일 미시간주 입실렌티 타운십에 위치한 자동차 전시장에서 전미자동차노조 관계자와 대담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미국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던 현대차그룹도 세액공제 폐지 영향권에 들 수밖에 없다.
현대차가 올해 3월 가동을 시작한 조지아 전기차 공장에서 만드는 아이오닉5 차량이 세액공제 대상 목록에 포함돼 왔기 때문이다.
현대차도 포드와 GM을 따라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차 중심으로 전환할지 선택의 기로에 선 셈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세액공제 폐지가 현대차에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포드와 GM이 판매를 줄이는 만큼 현대차가 빈자리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8월 지난해보다 38.5% 증가한 1만6102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성과를 냈다.
조사기관 콕스오토모티브는 8월 전기차 판매 집계 자료에서 “현대차와 테슬라 등이 시장을 선도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에서 현대차 전기차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다.
미국 자동차 평가 전문 웹사이트 카즈닷컴은 9월26일 현대차 아이오닉6와 아이오닉5, 기아 EV9을 ‘2026 최고의 전기차’ 각 부문에 선정했다.
현대차가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전기차 판매 여세를 몰아 포드와 GM 입지를 더욱 좁힐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포드 CEO가 전망한 대로 미국 전기차 시장 성장세 자체가 세액공제 종료로 둔화하면 전기차에 집중하면 실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은 8월27일 2025년부터 2028년까지 4년 동안 260억 달러(약 36조6천억 원)를 투자해 미국 완성차 생산능력을 확대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일단 현대차는 소비자 수요에 맞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내연기관차 등 다양한 차종을 선보이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전하면서 전기차에 집중할지 아닐지 여부는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요컨대 현대차가 세액공제 종료라는 리스크를 안고 전기차 투자를 늘릴지 아니면 GM과 포드처럼 내연기관이나 하이브리드 중심으로 방향을 틀지 ‘결정의 시간’이 다가온 셈이다.
자동차 유통 플랫폼업체 에드먼즈는 IT전문지 더버지에 “전기차 판매가 무조건 감소하겠지만 벼랑 끝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