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종가 기준으로 두 회사의 주가는 HD현대건설기계는 9만4200원, HD현대인프라코어는 1만5280원이다. 주가가 급락하지 않는다면 시장가격이 주식매수 예정가격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는 2달여 전 합병법인 출범을 결정한 뒤 관련 절차를 순조롭게 밟아가고 있다.
앞서 7월1일 HD현대건설기계가 HD현대인프라코어를 흡수합병해 HD건설기계를 출범하겠다고 알린 뒤 두 회사는 합병과 관련해 7월 중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기업결합심사 승인을 받았다.
이달 들어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합병 안건을 놓고 찬성 권고 의견을 내놓은 가운데 전날 열린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 임시 주주총회에서도 각각 99.91%, 99.24%의 찬성률도 합병계약 체결 승인 안건이 통과됐다.
7월 말 실적발표 이후 8월 한 달 동안 숨을 고르던 HD현대 건설기계 그룹사들은 주주총회를 앞두고 합병 이후 미래를 위한 움직임도 재개한 모습이다.
그룹 건설기계 중간지주사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이달 4일 KB금융지주와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 신흥시장 고객들의 초기 구매 부담을 완화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금융협약을 맺었다.
이어 현지시각 8~11일 HD현대인프라코어는 프랑스에서 현지 건설사를 대상으로 신형 굴착기 현장 실증 및 스마트 안전기술 시연 행사를 진행했다. 안전 기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유럽에서 브랜드 신뢰도를 높이고 신규 고객 발굴을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시장에서는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 합병 이후 공유하게 될 엔진사업을 향한 기대가 크다.
현재 HD현대인프라코어가 영위하고 있는 엔진사업부문은 지난해 매출 1조1419억 원, 영업이익 1566억 원으로 영업이익률 13.7%를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 영향을 받아 외형성장은 멈췄지만 영업이익률은 전년보다 0.6%포인트 높인 것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발전용 및 방산용 등 수익성이 높은 엔진이 판매 호조를 보이며 영업이익률을 18.8%까지 끌어올렸다.
발전용 엔진과 방산용 엔진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지난해 말 군산 엔진공장 증설에 1400억 원을 선제적으로 투자하기로 한 점도 긍정적 움직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두 회사도 합병 이후 ‘현대(HYUNDAI)’, ‘디벨론(DEVELON)’ 두 브랜드 모두에 자가 엔진 적용 비율을 확대하고 발전용 및 방산용 엔진 육성에 힘을 싣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다만 그간 ‘본진’인 두 회사의 건설기계사업부문은 부진한 실적을 거뒀는데 업황 회복기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두 회사의 합병 이후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고 있다.
특히 주요 매출처인 유럽과 미국, 선진국 시장의 건설기계 수요가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 것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 모두 지난해 기준으로 건설기계사업부문 매출에서 35% 이상을 선진국 시장에서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원가 상승과 인력 부족 등으로 건설경기가 침체된 유럽은 2023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건설기계 수요가 감소한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유럽중앙은행(ECB)은 2023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지속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그 효과가 건설기계 수요 회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기간 ECB는 기준금리를 4%에서 2.15%까지 낮췄고 지난 11일(현지시각) 통화정책이사회에서도 금리 수준을 동결했다.
금리인하에 따른 경제 회복으로 유럽에서는 전반적으로 주택 시장이 활성화되는 데다 대규모 인프라 사업 투자가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모두 건설기계 수요 상승을 동반할 수 있는 기반이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유럽 주요국에서 현재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15억 유로(약 2조4540억 원) 이상의 인프라 프로젝트만 13건에 이른다.
▲ 16일 진행된 HD현대인프라코어, HD현대건설기계 임시 주주총회에서 오승현 HD현대인프라코어 대표이사 사장 겸 이사회 의장(왼쪽) 및 최철곤 HD현대건설기계 대표이사 사장 겸 이사회 의장이 각각 주총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 HD현대사이트솔루션 >
미국 건설기계 시장도 내년을 기대해볼 만한 상황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올해까지는 관세 협상 및 금리인하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여전해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가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관세 협상이 마무리되는 대로 내년부터는 비용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금리인하도 현실화하면서 건설기계 수요가 반등 곡선에 올라탈 것으로 전망된다.
또 트럼프 정부 2년차에 접어들면서 대선 당시 내세웠던 인프라 투자, 주택 시장 활성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인프라 정책 추진을 위한 재검토, 에너지 사업 투자 관련 환경영향 평가 간소화 등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 연방 정부의 토지를 활용해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타진하는 등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한 정책적 고민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한결 키움증권 연구원은 “유럽은 금리인하 덕에 경제회복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데 인프라·주택 등 건설 활동 증가 영향으로 건설기계 수요가 본격적 성장세에 진입할 것”이라며 “올해 북미 건설기계 수요를 억누르던 관세와 금리 관련 불확실성이 내년부터 해소되고 집권 2년차에 대선 공약이 본격적으로 시행돼 시장이 살아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 관계자는 “북미 시장은 금리와 관세 등의 불확실성이 있지만 빠르면 올해 말부터 점진적 개선 가능성이 있고 유럽 역시 회복세에 진입하는 중으로 판단한다”며 “현지 요구를 반영한 고객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강화하고 제품군 확대 및 딜러 개발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