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법원에서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정책에 제동을 걸었지만 이는 오히려 반도체와 자동차 등에 품목별 관세를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법원이 트럼프 정부의 포괄적 관세 정책에 다시금 위법 판결을 내리면서 이와 관련한 경제 불확실성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철강과 알루미늄, 자동차 등에 적용되는 품목별 관세는 이번 판결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더 강경한 정책을 앞세워 만회하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4일 “트럼프 정부 관세가 다시금 예측하기 어려운 구간에 접어들었다”며 “품목별 관세 시행에 더 힘이 실리고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최근 트럼프 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부과하는 일괄 상호관세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1심과 2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모두 패소한 뒤 상고하며 연방대법원 판결만을 남겨두게 됐다.
배런스는 대법원 최종 판결이 2026년 중반에 들어서야 나올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두고 소셜네트워크(SNS)에 “좌파 법원이 관세를 무효화하면 미국은 15조 달러(약 2경912조 원)의 투자 유치를 놓치게 될 것”이라며 “제3세계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에 법원 판결 대상이 된 관세는 100여 개 국가에 적용되는 상호관세, 보복관세, 중국과 캐나다 등에 부과하는 ‘펜타닐 관세’ 등이 포함된다.
배런스는 법원의 판단과 관계없이 일정 수준의 관세는 유지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관측이 우세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과 다른 국가들 사이 관세 협상에는 이번 판결이 큰 변수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컨설팅 업체 아브로스그룹은 배런스에 “불확실성이 지속되며 모든 관세 협상의 속도가 늦춰질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 때까지 시간을 끄는 사례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미국의 관세 압박을 받는 국가들이 이번 항소심 판결로 마음을 놓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제시됐다.
철강과 알루미늄, 목재 등에 적용되고 반도체와 의약품 등에 검토되고 있는 품목별 관세는 이번에 나온 법원 판결과 직접적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 미국 뉴저지 뉴어크항에 정박하는 컨테이너선 사진. |
컨설팅 업체 베타파트너스는 미국 정부가 반도체와 의약품 품목별 관세 발표를 몇 주 안에 진행하고 품목별 관세 적용 분야를 더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정부가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를 예고한 뒤 아직까지 시행하지 않은 이유는 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 가능성에 대비해 ‘비장의 카드’를 남겨둔 것이라는 관측도 제시됐다.
미국 정부는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 여러 국가에 관세 책정을 무기로 앞세워 대규모 대미 투자 확대와 경제 협력 등을 약속했다.
만약 법원 판결로 이러한 관세를 매기기 어려워지면 미국에 실제로 투자를 집행해야 할 이유도 줄어든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가 반도체와 의약품, 자동차, 또는 새로운 분야에 품목별 관세 부과를 새로운 협상 수단으로 삼아 자국 내 투자 확대를 압박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배런스는 미국 정부가 이미 수 개월 전부터 관세 부과를 위한 대안을 모색해 왔다고 전했다.
자연히 한국도 법원의 이번 판결에 마음을 놓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반도체와 의약품, 자동차와 철강 등 트럼프 정부의 품목별 규제 영향권에 놓인 물품은 한국이 미국에 판매하는 주요 수출품에 포함된다.
따라서 품목별 관세 부과는 한국과 미국의 협상에서 책정된 15%의 관세율보다 더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에 한국을 최혜국으로 대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하면 이는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배런스는 “품목별 관세가 반도체와 전자제품, 금속과 의약품, 자동차 등 여러 산업에서 시장 변동성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만약 트럼프 정부 포괄적 관세가 최종적으로 무효화되면 이미 세금을 납부한 기업들은 이를 환급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매우 복잡한 절차를 거칠 뿐만 아니라 미국 재정에 부담을 키울 수 있는 요인이다.
따라서 배런스는 미국 정부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관세 정책 유지에 주력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