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운데)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1일 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에 참석해 담소를 나누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도 함께 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중국과 인도가 경제 협력을 강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 주도의 글로벌 외교 구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다수 국가에 전방위적으로 관세율 인상 압박을 가했는데 미국을 제외한 연합이 공고해지는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2일(현지시각) MSNBC는 트럼프 정부의 외교 정책을 두고 “우리는 한 세대를 걸친 실패를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MSNBC가 지목한 '외교 실패'는 중국과 인도가 서로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는 장면을 지칭한다.
트럼프 정부가 인도와 중국을 상대로 고율 관세로 압박해 두 국가는 외교와 안보, 경제 등에서 협업을 강화하려 하는데 미국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지적으로 보인다.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은 8월18일부터 20일까지 델리를 공식 방문했다.
이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중국 톈진에서 8월31일에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중국과 인도 관계는 군인 수백 명의 교전으로 번졌던 2020년 6월 국경 분쟁 이후 긴장이 맴돌았는데 이번에 모디 총리의 중국 방문으로 개선의 실마리를 찾은 셈이다.
차이나데일리와 글로벌타임스 등 중국 관영매체도 “양국 관계가 해빙 조짐을 보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중국과 인도가 경제 부문에서 손을 잡으면 세계 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두 나라가 각각 14억 명의 인구 대국으로 소비 잠재력이 상당하고 반도체와 전기차, 의약품 등 제조 공급망에서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중국은 인도의 제조업과 전기차 산업 투자, 인프라 구축 등에서 기회를 확보할 수 있고 인도는 첨단 소재와 기계, 희토류 등에서 중국 공급망을 활용할 수 있다.
중국이 미국에서 인도로 수출길을 돌린다면 대체 시장으로서 인도의 전략적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추진한 관세 정책으로 세계 수출이 위축되는 마당에 중국과 인도가 서로에게 이른바 ‘비빌 언덕’을 만들어 준 형국이다.
해운 분석업체인 제네타(Xeneta)의 피터 샌드 수석 분석가는 “중국과 인도가 형성하는 축(axis)은 미국이 통제하지 않는 새 경제 질서에 매우 중요하다”며 “무역을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씽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또한 “중국과 인도가 경제적 통합을 이룰 경우 영향력을 크게 확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앞줄 오른쪽)이 2월13일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
MSNBC가 지적한 대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부과가 중국과 인도를 급속히 가까워지게 된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트럼프 정부가 50% 고율 관세를 예고 없이 부과하는 바람에 인도는 중국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가디언은 “트럼프 정부의 외교 정책이 지정학 관계를 재조정했다”며 “한때 인도의 든든한 동맹국이었던 미국은 이제 뉴델리에서 적대시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2000년 3월20일 빌 클린턴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서 22년 만에 인도를 방문한 이래 인도와 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다.
냉전이 끝난 이후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을 견제할 카드로 미국이 같은 민주주의 국가이자 경제 성장 잠재력이 큰 인도를 낙점했기 때문이다.
인도는 이후 수십억 달러를 들여 미국산 전투기와 곡사포 등 무기를 구입하고 안보와 경제 협업을 지속했는데 트럼프 정부 관세로 중국과 오히려 밀착할 수 있는 셈이다.
중국과 인도가 앞으로 구조적으로 협업을 이어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2001년에 설립된 상하이협력기구(SCO)라는 국제 기구를 통해 공동의 이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씽크탱크 월드폴리틱스리뷰는 “상하이협력기구에서 중국과 인도, 러시아 정상이 친밀하게 지내는 건 중요한 의미”라고 평가했다.
요컨대 트럼프 정부가 촉발한 ‘관세 전쟁’이 경제 대국인 중국과 인도를 자극해 오히려 미국의 영향력만 위축시킬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다만 한편에서는 중국과 인도의 관계 개선이 ‘카메라용 화해 제스처’에 불과하며 구조적 전환으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함께 나온다.
더구나 중국과 인도가 경제 협력이나 국경 문제 관련 발언에서 온도차를 보이는 만큼 트럼프 정부에 보여주기 위한 일시적 연합에 불과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은 “중국이 진정성 있게 인도를 동등한 입장으로 보는지가 관건”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최근 회담은 단순한 정치 행보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