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 개정에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개정의 실질적 수혜자로 지목되는 SK그룹이 곤혹스런 처지에 몰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대가성 사면이 특검의 수사대상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악재가 겹친 셈이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촉법 개정안을 16일 대표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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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
개정안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외국인과 함께 공동출자법인의 주식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외촉법의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외촉법의 2014년 개정규정을 원래대로 되돌린다는 취지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는 자회사를 설립하려면 지분 100%를 모두 보유해야 한다. 손자회사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의 경영을 지배하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한 규정이다.
외촉법은 2014년 1월 개정을 통해 이 최소 지분율을 외국회사와 합작으로 증손회사를 설립할 경우에 한해 100%에서 50%로 완화했다. 공정거래법상 세울 수 없는 회사를 외촉법에 따라 설립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개정과정에 의혹이 제기됐다. 정호정 전 비서관의 녹취록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최씨가 2013년 11월17일 정 전 비서관에게 외촉법 개정의 경제적 효과를 뽑아오라고 지시했는데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약 2조3천억 원 규모의 투자와 1만4천여 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며 외촉법 처리를 촉구했다.
최씨는 2013년 11월22일 다시 정 전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12월에 꼭 외촉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외촉법 특혜 논란이 불거져 가장 곤란해진 것은 SK그룹이다.
외촉법은 2014년 개정 당시 국회 통과에 적지않은 진통을 겪었다. SK그룹과 GS그룹에 특혜를 주는 “재벌 민원해결법”이라는 논란을 빚은 탓이다.
SK종합화학과 GS칼텍스는 외촉법이 개정되기 전부터 법 개정을 전제로 사업을 준비했다.
SK의 손자회사,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은 2012년 11월부터 일본회사와 합작해 9600억 원을 절반씩 투자하기로 하고 증손회사 형태로 파라자일렌(PX) 공장인 울산아로마틱스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지분 100%를 채워야 할뿐더러 일본회사의 투자금 4800억 원도 증발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개정안이 결국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공장은 2014년 10월 준공됐다. 그 결과 SK종합화학의 3분기 누적기준 영업이익이 2014년 2803억 원에서 2016년 7455억 원으로 2배 이상 뛰었다.
울산아로마틱스가 2014년부터 연간 50만 톤의 파라자일렌을 생산하면서 SK이노베이션의 파라자일렌 생산능력도 연간 260만 톤으로 국내 1위, 세계 6위 수준으로 올라섰다. 파라자일렌은 폴리에스터 섬유와 페트병의 원료가 되는 석유화학제품으로 수익성이 매우 높다.
GS의 손자회사인 GS칼텍스는 당시 일본회사와 1조 원 규모의 합작투자를 추진했지만 수익성을 이유로 투자를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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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 |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외촉법 개정으로 혜택을 본 기업이 사실상 SK그룹이 유일하다는 점을 눈여겨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영선 의원은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2014년 개정된 외촉법은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의 핵심축인 지주회사법의 근간을 흔드는 법이자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특정 재벌회사의 로비에 굴복한 '맞춤형 민원해결법'”이라며 “특검은 최순실이 외촉법 개정에 집착한 이유를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K그룹에 난감한 일은 또 있다. 박 의원의 개정안은 이 규정을 다시 없애 손자회사가 외국회사와 합작회사를 만들 수 없도록 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SK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는 최근 시게이트와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박 의원의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 계획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는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시게이트와 공급을 전문으로 하는 합작법인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내에 합작법인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SK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SK하이닉스가 자회사 지위로 오르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SK하이닉스는 해외에 합작법인을 설립해 시게이트를 최대주주로 올려야 한다. 합작법인을 SK하이닉스의 계열사에서 제외시켜 공정거래법 규제를 피해야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