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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본무 LG그룹 회장(좌),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중), 구광모 LG전자 HE사업본부 부장(우) |
구본무(69) LG그룹 회장의 고민이 깊다. 그룹 간판인 LG전자의 위기가 쉽게 극복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영 승계구도도 불투명하다.
이런 고민의 중심에 동생 구본준(63) LG전자 부회장이 존재한다.
LG그룹에서 경영 승계와 관련해 구 부회장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구 회장의 아들이 어린 만큼 구 부회장이 한동안 징검다리 역할을 하거나, 혹은 아들에게 승계가 되더라도 방풍림 역할을 해야 한다. 문제는 구 부회장이 진두지휘하는 LG전자의 위기다. LG전자의 회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구 부회장에게 그런 역할을 맡기기가 어렵다.
구 회장의 아들 구광모(36)씨는 LG전자 HE사업본부 부장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LG전자는 LG그룹의 주력기업이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만 70세가 되던 1995년 구본무 회장(당시 50세)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구광모 부장은 이제 36살이다.
문제는 구광모 부장이 경영권을 넘겨받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점이다. LG그룹은 전통적으로 ‘인화’를 강조해 왔다. ‘인화’는 서열을 중시한다. 이런 전통 탓에 어린 구광모 부장이 승계를 할 경우 그룹에 불화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구 회장이 경영권을 넘겨 줄 경우 그 대상은 일단 구 부회장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런 전망은 향후 구광모 부장이 충분히 성장하게 되면 다시 경영권을 이어받아 승계 구도를 완성할 것이라는 시나리오에 입각해 있다.
구 부장의 승계를 위한 틀은 거의 갖춰 놓았다. 구 부장은 지주회사 LG의 지분을 4.84%나 보유해 4세 중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구 부장은 보유 주식 가치 순위에서 ‘친아버지인’ 구본능(65) 희성그룹 회장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구 부장은 지난 2004년 구 회장의 양자로 입적됐다.
후계수업도 차근히 밟고 있다. 2006년 9월 LG전자 금융 팀 대리로 입사한 뒤 미국 스탠퍼드 대에서 MBA과정을 밟았고, 2009년에 과장으로, 2011년에 차장으로 승진하며 실무를 익혔다. 2013년엔 HE사업본부로 자리를 옮겨 부장으로 승진했다. 실무를 통해 철저한 능력 검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 말 정기인사에서 임원 승진도 점쳐졌지만, ‘시기상조’라는 가족 내부 의견에 따라 미뤄졌다. LG관계자는 “LG가문은 후계자를 혹독하게 훈련시키기 때문에 구 부장이 바로 경영에 참여하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 부회장이 최근 ‘독기경영’을 강조한 것도 LG전자 위기 탓도 있지만, 구 부회장 역할에 대한 구 회장의 바람에 부응하기 위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구 부회장은 2010년에 LG전자의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LG전자는 남용 부회장 체제에서 스마트폰에 대한 판단 실수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2011년에도 4,000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 회장은 동생을 다시 불렀다. 당시 ‘형제경영으로 LG전자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겠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LG그룹의 ‘인화경영’ 전통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분위기도 적지않았다.
구 부회장에게는 ‘실패와 성공’이 따라다닌다. 구 부회장은 LG필립스LCD 사장 시절 파주 LCD 단지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그러나 구 부회장은 LCD시장 상황 악화로 8,000억 원에 가까운 손실을 입었고 경영에서 물러나야 했다. 절치부심한 구 부회장은 2009년 LG상사에서 3년 만에 성공을 거뒀다. LG상사는 영업이익 1,615억 원, 당기순이익 1,04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구 부회장의 취임 첫 해인 2007년에 비해 각각 3배와 2배 가까이 증가한 규모다.
구 부회장은 LG전자를 맡은 뒤 반짝 성공하는 듯 했다. 구 부회장은 ‘스마트폰 올인 전략’과 공격적 마케팅을 앞세웠다. 이른바 ‘회장님 폰’으로 알려진 ‘G 시리즈’를 선보이며 2012년 MC사업부문에서 영업이익 1조 원대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잠시였다. 지난 해 LG전자의 실적은 곤두박질쳤고 무디스의 신용평가 강등이라는 불명예도 안았다. 스마트폰 분야에서 애플이나 삼성전자 등 선두권과 격차는 크게 벌어졌는데, 마케팅에 의존해 무리하게 이를 쫓아가다 빚어진 결과라는 지적을 받았다. 업계에서는 이른바 ‘구본준 식 경영’이 한계에 봉착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팽배하다.
구 회장은 구 부회장에게 좀 더 시간과 기회를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길 것 같지는 않다. 올해 구 부회장이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면 구 회장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 많은 시간을 주기에는 LG전자의 위기가 너무 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