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면에 얼음이 얼어있는 핀란드 바사만 해수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페트병을 촬영한 사진. 2022년 12월 우루과이에서 열린 국제플라스틱협약 제1차 정부간 협상위원회에서 각국의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활용됐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국제플라스틱협약 성안을 위한 최종 협상 시작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회의를 앞두고 있는 세계 각국이 여전히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만큼 협상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세계 시민단체들과 환경 및 의료 분야 전문가들은 각국 정부가 자국 시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라도 플라스틱 생산 규제를 조약문에 포함시키는 합의에 도달해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4일 세계 각국 대표단이 5일부터 열리는 국제플라스틱협약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 속개회의(INC-5.2)를 앞두고 협상장이 마련된 스위스 제네바로 모이고 있다.
국제플라스틱협약은 앞서 2022년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에서 플라스틱이 유발하는 환경오염을 종식시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인정돼 협상이 시작됐다.
원래는 지난해 11월 한국 부산에서 열린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INC-5)가 마지막 협상장이 될 것으로 계획됐으나 각국이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올해로 연기됐다.
이번 회의에서 주요 쟁점은 국제플라스틱협약에 플라스틱 생산 상한을 정하는 규제가 도입될지 여부다.
앞서 INC-5에서는 유럽연합(EU), 일본, 미국, 한국 등 대다수 국가들은 생산 규제를 도입하는 것에 찬성했었다. 이에 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산유국들이 반대하면서 협상 타결이 무산됐다.
이들 국가는 올해 회의를 앞두고 비슷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지난해 회의에서는 생산 규제를 지지했던 미국과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이 지지를 철회해 협상이 더욱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개최국 자격으로 플라스틱 생산 규제를 지지했던 한국 정부도 올해는 입장을 확실히 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국제 시민사회와 환경 전문가들은 협상 참여국들이 입장을 바꿔 생산 규제에 찬성해줄 것을 촉구했다.
플라스틱이 미치는 유해성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3일(현지시각) 미국 보스턴칼리지,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대학 등이 합작해 국제 의학 학술지 '란셋'에 공개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플라스틱이 매년 사람들의 건강에 미치는 피해를 경제적 피해 규모로 환산하면 연간 1조5천억 달러(약 207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폐기물이 미세 플라스틱으로 분해돼 물, 음식, 호흡 등을 통해 인체에 유입되고 혈액, 뇌, 태반, 골수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확인됐다.
정확한 영향은 모두 파악되진 않았으나 인체에 유입된 플라스틱은 뇌졸증, 심장마비 등 심각한 질병이 발병할 확률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필립 랜드리건 보스턴칼리지 소아의학과 교수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우리는 플라스틱 오염이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의 범위와 심각성을 확인했다"며 "국제플라스틱협약은 사람들과 지구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 자원봉사자가 7월26일 인도네시아 자바섬 수라바야에 위치한 맹그로브 늪지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집하고 있다. <연합뉴스> |
플라스틱은 환경과 건강에 악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전주기에 걸쳐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위기도 가속화한다. 구성물질의 98%가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로 구성돼 있어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나오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플라스틱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연간 약 19억 톤으로 추산됐다.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4%에 달하는 수준이다. 주요 온실가스 배출 산업으로 꼽히는 해운업계의 배출량과 비슷하거나 더 많다.
국제플라스틱협약 협상에 옵저버 자격으로 참여하는 그린피스는 4일(현지시각) INC-5.2를 앞두고 성명문을 발표했다.
그린피스는 "이번 협상은 전 세계 플라스틱 오염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며 "이미 전 세계 시민들의 약 70% 이상이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찬성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린피스는 지난번 협상이 제때 타결되지 않은 주요 요인으로 화석연료 업계의 훼방을 꼽았다. 국제환경법센터(CIEL)가 진행한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INC-5 때 협상에 화석연료 산업 관련 로비스트 220명이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안나 디스키 그린피스 영국 수석 플라스틱 캠페인 담당자는 유로뉴스를 통해 "우리 연구에 따르면 의미있는 규제로 인해 가장 큰 손실을 볼 사람들(화석연료 업계)이 규제를 방해하기 위해 가장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플라스틱 오염으로 이익을 얻는 기업들이 규칙 제정 과정에 참여하게 둬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실효성 없는 무력한 조약만 얻게 될 것"이라며 "이제는 화석연료 업계 로비스트들이 회담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유엔 회원국들이 확고한 입장을 정해 강력한 조약을 지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