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5-07-31 15: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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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 초기 최대 현안이었던 대미 관세협상을 타결하며 정국 운영의 '큰 고비'를 넘겼다.
다만 정부와 기업이 3500억 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미국에 투자하기로 하면서 국내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따라 붙는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관세협상에서 다루지 않은 안보 관련 비용을 추가로 요구할 가능성도 남아 있어 적절한 대응이 과제로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이재명 정부가 25% 관세 적용 유예기간을 하루 앞둔 31일 한미 관세협상을 타결하면서 한 고비를 넘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 특강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31일 페이스북에서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전략 다듬기를 반복한 끝에 오늘 드디어 (한미) 관세협상을 타결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협상 결과를 두고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정부는 대미 투자 규모를 3500억 달러로 합의를 봤다. 이 가운데 1500억 달러는 조선 협력 전용 펀드 방식으로 투자하기로 했다. 조선업 협력 강화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미국이 요구하던 4000억 달러 대미 투자액을 2000억 달러 정도로 낮춘 셈이다.
이에 더해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를 1천억 달러어치 구매하기로 한 것도 큰 손해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LNG 수입은 우리 입장에서 이미 중동이나 러시아에서 수입하던 가스를 미국산 가스로 쓰면 되는, 별 거 아닌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관세협상에 따라 국내 주요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늘리는 반면 우리나라에 생산 시설이나 설비 투자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은 우려로 남는다.
조선업 투자를 비롯해 우리나라 1년 국내총생산(GDP)의 21%에 달하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에 나선다면 그만큼 기업들이 다른 투자 여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투자 감소가 발생한다면 지방균형 발전을 국정목표로 삼고 있는 이재명 정부에게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지방균형 발전은 결국 기업이 투자해 비수도권 일자리가 많이 생겨야 해결의 가닥을 잡을 수 있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이날 YTN뉴스업에서 “경기 침체로 국내 투자가 많이 이루어져야 되는 상황인데 해외 투자에 너무 집중을 했을 경우 국내 투자가 여러 가지로 소외받을 수 있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은 있다”고 짚었다.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기업과 정부에서 보증하는 (투자) 자금이 (미국에) 들어가는 거 아니겠나”며 “그러면 그동안 돈이 미국에 투입되는 만큼 우리나라의 국내 투자 여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전 차관은 이어 “지방 소멸, 청년 일자리 문제가 가장 큰데 이제 결국 우리 국내 경제는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좀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이번 한미 관세협상에서 ‘안보 비용’ 부분이 빠졌다는 점도 이 대통령에게는 큰 과제로 다가올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2주 안에’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이라 밝혔는데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에게 ‘안보 비용 증액 청구서’를 내밀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방위비분담금 인상, 미국산 무기 구입 관련 협상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번 협상에선 별개 이슈라서 같이 다뤄지지 않았다”며 “안보 문제들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가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인의 의료 기록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제안을 홍보하기 위한 행사에서 참가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에 국방비를 GDP 대비 5% 수준으로 증액할 것을 요구해 왔다.
우리나라 국방예산은 올해 기준 61조2469억 원으로 GDP 대비 2.32%에 이른다. 국방비 지출을 GDP 대비 5%로 늘리려면 국방예산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많은 132조 원까지 증액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방위비 분담금하고 주한 미군 재배치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미국은) 분담금은 따로 내고 국방비도 지금의 두 배로 늘리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활용해 지금 중국이나 러시아를 견제하는 지역구도로 바꾸겠다는 소위 동맹의 현대화라는 이름을 붙여서 관세보다 더 큰 압박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전반적인 협상 결과를 고려할 때 향후에 제기될 수 있는 몇 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 관세협상 타결은 이 대통령과 정부의 '실력'을 입증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15% 관세 합의를 두고 “미국에 투자를 약속하는 대가로 막판에 더 낮은 관세율로 무역 협상을 타결할 수 있었던 일본, 유럽연합(EU)과 같은 수준”이라며 “이번 합의는 이번 주 자신의 팀을 워싱턴에 보내 협상을 마무리한 이재명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승리를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배종찬 인사이트 케이 연구소장도 31일 YTN라디오 뉴스파이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예상되는 그림은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나란히 앉고 이재용, 정의선, 김동관 회장이 배석하는 것”이라며 “그럼 트럼프 대통령이 뭐라고 얘기하겠나, 이 세 사람이 미국에 너무 훌륭한 투자를 했다는 이야기를 할 것인데 이 그림은 이 대통령에게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바라봤다.
이번 관세 협상을 앞두고 강하게 반발했던 농민단체와 시민단체도 쌀과 소고기에 대한 추가 개방을 막았다는 대통령실의 설명에 일단은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농민의길-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역대 어느 정권도 앞장서 막아내지 않았던, 농업 개방 위협을 상당 부분 막아낸 것으로 보여 먼저 크게 다행"이라며 "트럼프의 매드맨 전략에 끌려다니지 않고 국민을 믿고 당당히 맞선 결과일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