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상임이사가 24일 서울 강남구 논현로 KoSIF 사무실에서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
[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정부가 현재 가장 급하게 해야 될 일은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걸 늦춘다 해도 우리 정부와 기업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며 밸류업에도 악영향을 줄 뿐이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상임이사는 24일 서울 강남구 논현로 KoSIF 사무실에서 진행된 비즈니스포스트 인터뷰에서 이재명 정부가 급선무로 처리해야 할 일로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를 꼽았다.
지속가능성 공시는 원래 문재인 정부 때 도입이 논의된 사항으로 윤석열 정부 때 확정될 것으로 계획됐으나 현재까지도 확정되지 않고 있다.
양 이사는 "지속가능성 공시가 실현되지 않으면 코스피가 5천까지 가는 것은 어렵다"며 "한국 기업들의 정보가 투명하게 드러나야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에 부담없이 진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속가능성과 관련해 아무런 정보가 공개되고 있지 않으면 투자 의사 결정이 너무 어려워진다"며 "이 때문에 공시부터 의무화하는 게 시작점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앞서 한국회계기준원은 지난해 5월 한국형 지속가능성 공시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KSSB)' 초안을 발표했다.
당시 국내 기업들은 공시를 지나치게 빨리 의무화하는 것이 기업들에 너무 큰 부담을 줄 것이라며 불만을 제기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6월 국내 자산 2조 원 이상 125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들 대다수는 공시 의무화 시점을 2028년 이후가 적정하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 이사는 "어차피 세계적 흐름을 고려하면 공시 의무화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며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주려면 공시를 차일피일 미룰 것이 아니라 확실한 기준과 정확한 시점을 잡고 기업들에 알려줘 준비를 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KSSB가 기준으로 잡게 될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IFRS(국제재무보고기준) S1(일반 요구 사항), S2(기후정보)는 지난해 1월에 최종안 확정이 끝났다. 국내 공시는 해당 정보를 기준으로 수립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 이사는 다음 과제로 ESG 기본법 제정을 꼽았다.
그는 "그 다음으로는 이제 국회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본법이 확정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SG 기본법은 현재 여러 법과 제도에 산재돼 있는 ESG 관련 요소들을 한 군데 묶어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양 이사는 "우리나라 정책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책이 뒤바뀐다는 것"이라며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ESG 기본법이 존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비즈니스포스트> |
국회에서는 ESG 기본법 제정을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국회 ESG 포럼을 발족하고 기업, 금융기관,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전문가를 모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양 이사는 "또한 이재명 정부는 본격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녹색금융투자공사를 수립해야 할 것"이라며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단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외부 투자금을 유치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인허가를 받기 전에는 프로젝트 주체가 가진 자금으로만 진행해야 한다.
양 이사는 "통상적으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인허가 전에 준비 단계만 해도 들어가는 돈이 1~2천억 원에 달한다"며 "누가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녹색금융공사가 있으면 인허가 전에 프로젝트 주체가 필요한 돈을 대출해주고 인허가가 끝나면 그 돈을 다시 상환받는 방식을 활용해 더 많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활성화할 수 있다"며 "또 공사로부터 자금 대출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프로젝트 신뢰성을 더해져 PF단계에서 민간자금을 유치하는 것도 더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춘승 상임이사는 2007년 국내 최초 ESG 전문 싱크탱크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을 설립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2004년 유엔 글로벌콤팩트(UNGC) 보고서에서 ESG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뒤부터 설립이 추진돼 2년의 준비 과정을 거쳤다.
양 이사는 "설립 과정에서도 정확한 방향성을 놓고 많은 논의가 오갔다"며 "설립된 이후에도 2008년 세계 금융위기처럼 우리도 운영에 큰 타격을 받는 일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사실상 양 이사와 이종오 사무총장 둘이서 운영하는 어려움도 겼었다. 같은 해 국내 최초로 국제 온실가스 감축 이니셔티브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를 국내에 도입하고 CDP한국위원회를 맡으면서 위기를 극복하기 시작했다.
이후 클라이밋그룹, 과학목표 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 등 국제 연구단체들의 한국 파트너를 맡으며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양 이사는 "우리는 지금도 발전하는 조직이고 앞으로도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조금 아쉬운 점으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기업들에 지속가능한 운영을 요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