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노동계가 정면충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박 대통령이 공공노조에 강경 대응 방침을 거듭 밝히고 노동계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공동대응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올해 국정과제로 내세운 공공기관 개혁과 통상임금 개편 등을 놓고 상당한 파열음이 예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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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공부문 개혁 문제 등 현안에 대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
◆ 황제복지 때문 vs 낙하산 인사 때문
박 대통령은 14일 법무부 등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공공기관에 대한 강도높은 개혁을 거듭 주문했다. 그는 "공공기관 부채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상위 대표적인 기관부터 가시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과도한 복리후생이나 친인척 특혜채용, 불법적 노사협약 등 비정상적 관행을 개선하고 경영평가와 연계한 기관장 평가와 인사조치 등 건전경영 장치를 정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에 앞서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는 공공기관 노조를 향해 “공공기관 노조가 연대해 정상화 개혁에 저항하려는 움직임을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저항과 연대, 시위 등으로 개혁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산하 공공부문 노조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반발한 것에 대한 일종의 경고이자,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공기업 총부채 규모와 공공기관 복지실태 등을 상세히 지적하며 이른바 ‘황제복지’가 공공기관 방만경영의 주요인임을 강조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다수의 공공기관이 별도 협약에서 이면합의를 통해 과다한 복리후생비를 지원하고 있다”며 “이면합의를 놔두고서는 진정한 정상화가 불가능한 만큼 이면합의를 통해 과도한 복지해택을 제공하는 관행은 철저히 뿌리 뽑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공대위는 이날 성명을 내 “이면합의가 아니라 정부보고에 올리지 않은 합의일 뿐”이라며 박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 반박했다. 공대위는 또 “복리후생비 감축으로 공공기관 부채 520조를 해소하려면 3250년이 걸린다”며 “과도한 복리후생이 부채의 본질이 아닌데 정부가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대위는 또 정부의 일방적 공공개혁이 추진될 경우 ▲일체의 단체교섭 거부 ▲공공기관 경영평가 거부 ▲지방선거 공동대응 ▲총파업 등 총력 투쟁을 펼치기로 했다.
◆ 노정 갈등, 전면전으로 가나
박근혜 정부와 노동계의 대립이 첨예해진 것은 공대위가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거부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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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3일 38개 공공부문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38개 중점관리 공공기관 노조 공동선언대회'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공대위는 지난 달 23일 “정부가 공공기관의 부채 문제 원인을 과잉복지와 방만경영이라고 하지만 진짜 원인은 정부 재정으로 할 사업을 공공기관에 전가하고 공공요금을 원가 이하로 책정한 정책의 실패 때문”이라며 반발했다.
공대위는 ▲부채 관련 정부 책임자 처벌 및 현오석 부총리 사퇴 ▲부적격 낙하산 인사 근절 ▲합리적 제도 개혁과 복리후생 조정안 마련 등을 핵심 요구사항으로 제시했다. 공대위는 또 “정부가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며 “다만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진행 상황을 봐가며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대위는 헌법소원 및 가처분 신청, 국제노동기구(ILO) 제소 등 단계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공대위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정부가 중점관리대상으로 선정한 38개 공기업·공공기관 노조가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공대위의 요구에 대해 거부입장을 밝혔다.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은 같은 날 제2차 공공기관 정상화협의회 자리에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의추진을 지연시키거나 저지하려는 시도는 국민에게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수용불가를 밝혔다. 그는 “경영평가 등을 물리적으로 방해하면 업무방해가 될 수 있다”며 “노사협상 노력, 이행상황 등을 모두 경영평가에 고스란히 반영해 성과급 등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정부와 노동계의 날선 대립은 양쪽 모두 국민적 공감과 지지가 필요한 만큼 섣불리 전면전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 노동계 전체를 적으로 삼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노동계도 지방선거가 여당의 승리로 끝날 경우, 향후 입지가 더욱 좁아질 위험이 있어 저항 수위를 어느 정도 선에서 유지하면서 선거 결과를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 개별 공공기관의 ‘충돌’ 가시화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공공기관장들이다. 이들은 정부에 제출한 방만경영 개선책을 추진하는 동시에 노조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이중의 부담을 떠안게 됐다.
특히 복리후생비 축소 문제를 두고 노조와 강한 충돌이 예상된다. 복리후생비 지급 내용이 대부분 단체협약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노사합의로 단협을 바꾸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절차에 따른 복리후생비 감축은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한국거래소다.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달 1000만원 가량의 복지후생비를 삭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거래소 노조는 복리후생비 축소에 관한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유흥렬 거래소 노조위원장은 “사측이 예산 감축안에 따라 의료비 등 일부 복지비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단협 위반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거래소 노조는 지난 주 사측에 경고 공문을 보냈으며 답변이 없을 경우 이번 주 내로 노동청에 신고장을 제출하기로 했다.
중점 관리대상으로 선정된 다른 공기업 및 공공기관 노조 역시 정부의 단협 개입 움직임을 거부하고 있어 개별 공공기관마다 노사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