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기자 ywkim@businesspost.co.kr2025-02-20 14: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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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 플랫폼 사업 전반이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비즈니스포스트] 경기 불황과 수익성 악화로 명품 플랫폼 업계가 지속적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일부 업체가 문을 닫았고 국내 대표 플랫폼 ‘머·트·발·젠(머스트잇·트렌비·발란·젠테)’도 거센 생존 경쟁에 내몰렸다.
각 플랫폼은 저마다 차별화된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경기 침체로 명품 소비가 위축된 데다 낮은 마진율까지 겹치면서 흑자전환은 녹록치 않는 상황이다.
1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명품 플랫폼 업계의 경영 환경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 영국 명품 플랫폼 매치스패션은 지난해 3월 영업을 종료했다고 선언했다. 명품기업 ‘파페치’는 지난해 초 쿠팡에 인수됐다. 파페치는 2018년 뉴욕증시에 상장한 이후 2021년 기업가치가 230억 달러까지 상승했지만 명품 소비 둔화와 수익성 악화로 쿠팡에 사실상 ‘헐값’에 매각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내 대표 명품 플랫폼 ‘머·트·발·젠’(머스트잇·트렌비·발란·젠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23년 기준 영업손실은 머스트잇 79억 원, 트렌비 32억 원, 발란 100억 원, 젠테는 54억 원에 이른다. 아직 지난해 실적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흑자전환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각 플랫폼은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저마다 차별화된 전략을 펼치고 있다. 머스트잇은 ‘판매자 확대’에 방점을 찍었다. 판매자를 대상으로 위탁물류(3PL) 사업을 도입해 입점 브랜드의 상품 보관부터 출고, 배송, 재고 관리까지 명품 특화 물류 서비스를 제공한다. 오픈마켓의 특성상 판매자가 많을수록 제품 다양성과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만큼 가능한 많은 판매자를 끌어들여 플랫폼 규모를 키우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트렌비는 ‘중고 명품’ 카테고리를 확대하며 중고 명품 시장에서의 입지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실용적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중고 명품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리셀 문화가 자리 잡으며 이러한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반면 발란은 한층 더 고급화된 ‘하이엔드’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기존 명품 패션·잡화에 더해 하이엔드 가구로 카테고리를 확장하며 초고가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하이엔드 가구는 ‘럭셔리 시장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분야다. 가격대 역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한다. 최상위 고객층을 유입하고 플랫폼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더욱 강화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 발란이 수익성 개선을 위해 해외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를 입점시키며 고급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발란>
젠테는 전통적인 명품을 넘어 ‘신명품’ 카테고리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신명품은 명품 브랜드보다는 비교적 저렴하지만 독창적인 디자인과 희소성을 갖춘 브랜드를 의미한다.
신명품을 통해 단가가 낮은 대신 고객 수와 구매 빈도를 늘리는 전략으로 보다 폭넓은 소비층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실제 MZ세대를 중심으로 개성과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신명품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각 플랫폼이 이렇듯 저마다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지만 업계의 반응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명품 플랫폼은 구조적으로 수익성이 높지 않다. 과거에는 소비 열기가 뜨거워 낮은 마진율을 높은 판매량으로 보완할 수 있었지만 경기 불황이 길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구매가 줄어들자 플랫폼의 낮은 수익성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발란에 따르면 명품 플랫폼의 평균 수익률은 10% 안팎이다. 여기에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체 쿠폰을 발행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수익률이 한 자릿수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팔아도 남는 게 없다’ ‘밑지고 판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현재 대부분의 명품 플랫폼은 직매입보다 입점 판매자 비중이 훨씬 높다. 문제는 플랫폼뿐만 아니라 판매자들끼리도 인공지능(AI) 알고리즘에 따라 가격 경쟁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검색 상단에 노출되려면 가격을 낮춰야 하고 이를 위해 판매자들은 마진을 줄일 수밖에 없다. 끝없는 할인 경쟁이 이어지면서 플랫폼이 가져가는 수수료까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직매입 비중을 늘리기도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재고 리스크’다. 명품을 보관하려면 적절한 창고 시설이 필요하지만 가죽 제품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보관비용이 상당하다. 여기에 직매입 과정에서 해외 부티크가 ‘갑’의 위치에 있는 경우 원하는 상품을 확보하려면 원치 않는 상품까지 함께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해외 부티크에서 들여온 제품은 반품이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 국내 고객이 반품을 요청하면 플랫폼이 이를 떠안아야 하며 제품 한 개당 최소 수백만 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명품 플랫폼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더 많은 판매자를 끌어 모아 수수료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뿐이다. 마진율이 낮은 만큼 규모의 경제로 이를 보완해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경기 침체로 사치재 소비가 위축된 데다 지속적으로 오르는 명품 가격까지 겹치면서 수요가 크게 줄어든 상태다. ‘많이 팔아도 남는 게 없는’ 구조 속에서 이제는 ‘팔리는 상품’조차 부족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발란 관계자는 “최근 영업을 종료하는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명품 플랫폼 업계 전반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며 “명품 브랜드들이 지속적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데다 물가 상승으로 중산층의 소비가 줄어들면서 플랫폼 업계의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