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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
대우조선해양이 생존하느냐에 따라 정부가 주도해 온 조선업 구조조정의 성공도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한진해운 사태,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 등을 고려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3사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조선업황이 살아날 때까지 일단 버티자는 것인데 자칫 대형 조선3사 모두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의 결정을 놓고 다음 정권에 폭탄을 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대우조선해양, 내년 고비 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확충으로 일단 큰 고비는 넘겼지만 여전히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처해 있다.
산업은행은 최근 이사회를 통해 대우조선해양에 1조8천억 원 규모의 출자전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수출입은행이 1조 원 규모의 영구채 매입을 마치면 대우조선해양의 자기자본은 1조6천억 원으로 늘어난다. 부채비율도 900%대로 개선된다.
그러나 자본확충이 이뤄져도 실제 자금이 유입되지는 않는 만큼 유동성 확보는 과제로 여전히 남아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7천억∼8천억 원에 그친다. 대우조선해양의 한달 운영비만 8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은 내년 4월부터 11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만 9400억 원에 이른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런 상황에서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는 등 생존을 위해 힘쓰고 있다. 노조가 희망퇴직 반대 등의 입장을 접고 구조조정에 동의한다는 동의서를 제출했고 당초 계획에 없었던 부동산도 추가로 매각하기로 했다.
정부도 올해 안에 군함 3척을 신규 발주하기로 하는 등 대우조선해양 지원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10월 말 조선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하며 공공선박 발주를 통해 국내 조선사들에게 유동성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힌 뒤 후속조치를 본격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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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
하지만 이런 조치가 대우조선해양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정부의 방안과 관련해 “대우조선해양이나 현대중공업 등 대형 조선사보다는 중소형 조선사에 활력을 불어넣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주한 물량도 인도시기가 명확하지 않아 언제 잔금을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대우조선해양은 앙골라의 국영석유회사 소난골로부터 드릴십 선수금을 제외한 9억9천만 달러를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발주처인 미국의 앳우드 오셔닉(Atwood Oceanic)도 최근 대우조선해양에게 드릴십 2척의 인도 연기를 요청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이 회사로부터 드릴십 2척의 잔금 4억 달러가량을 아직 받지 못했다.
◆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발목도 잡히나
조선업황이 극적으로 회복되지 않을 경우 대우조선해양의 독자생존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바라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정부의 간접지원이나 대우조선해양의 비용절감을 통해 당장 돌아오는 채권을 막고 버틴다 해도 조선업황이 나아지지 않는 한 생명을 연장하는 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대우조선해양 정리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다음 정부로 짐을 떠넘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성립 사장 역시 대형 양사체제가 맞다는 개인적 의견을 밝혔다. 정 사장은 장기적으로 양사체제로 가는 게 맞다면서도 지금 양사체제로 가면 안 되는 이유로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을 꼽았다.
정 사장도 정부와 마찬가지로 대우조선해양이 ‘살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양사체제로 가야 한다고 본 셈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정규직 인원만 1만 명이 훌쩍 넘는다. 협력업체 직원들을 포함하면 5만여 명에 이른다. 조선소가 위치한 거제의 경제를 좌우할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런 시선을 인식한 듯 25일 열린 제7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구조조정의 부담을 미루거나 적당히 마무리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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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정부의 경쟁력 강화방안은 2018년부터 수주가 늘어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이를 바꿔 말하면 2018년 이후에도 수주가 늘지 않으면 정부의 처방이 도루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국내 증권가는 내년부터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회복에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보면서도 이 혜택이 현대중공업 등 재무구조가 탄탄한 일부 조선사에게 집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채비율은 자본확충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900%대이지만 현대중공업의 부채비율은 분사가 마무리되면 100% 아래로 떨어진다.
수주가 회복될 경우 저가 수주경쟁이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역시 대우조선해양에게 부담이다.
다시 저가경쟁에 뛰어들 경우 재무구조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지만 당장 한건의 수주가 시급한 상황에서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지금의 위기가 온 근본적 이유는 대형 3사체제에서 출혈경쟁, 불필요한 저가경쟁이 이어졌기 때문”이라며 “지금과 같은 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시장상황이 조금만 바뀌면 과당경쟁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형 조선3사체제가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경영정상화 발판을 마련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발목을 잡게 될 수 있다는 말도 조선업 내부에서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결국 다른 회사들이 고용이나 설비를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진해운 사태로 정부가 크게 데인 뒤 정치적 부담과 경제적 손실을 일단 피하는 쪽으로 구조조정 방향을 튼 것 같다"며 "대우조선해양이 회생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국내 산업의 구조조정 방향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