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앞 왼쪽)이 '2024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2일 새벽 중국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 라마포사 대통령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모여 만든 '아프리카 연합(A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들과 정상회담에서 자국산 전기차와 태양광 제품 판로를 키우기 위한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서 중국산 전기차와 태양광 제품에 관세장벽을 높이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프리카는 세계적 경기침체에도 고도성장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시장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2일 환구시보와 신화통신 등 중국매체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들은 4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2024년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 모이고 있다.
천샤오동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FOCAC 브리핑 기자회견에서 “이번에 이뤄질 중국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상회담에서는 양측 국민의 상호이해, 존중, 우호를 심화하는 일련의 새로운 협력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며 “중국과 아프리카의 우정이 새롭게 빛나며 향후 세대들에도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FOCAC 행사에 참여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모두 53개국으로 잠비아, 남수단, 에리트레아, 나이지리아, 코모로, 말리 등 일부 국가 정상들은 지난 1일 일찌감치 베이징에 도착했다.
로이터는 중국이 이번 포럼을 계기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목적이 태양광, 전기차 등 자국산 제품 판로를 확대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권 국가들이 관세 장벽을 통해 중국산 친환경 제품을 향한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해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7월 유럽집행위원회는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추가 관세 부과 방안을 발표했다. 제조사에 따라 차량에 관세 17.4~37.6%가 추가로 붙는다.
유럽연합은 이미 중국산 전기차들에 일괄적으로 관세 10%를 부과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1일(현지시각) 기준 유럽집행위원회와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의 관세 조정을 위한 협의는 아직 진행되고 있다.
이에 앞서 미국은 지난 5월 중국산 철강,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을 대상으로 한 관세를 인상하는 안을 발표했다. 전기차는 기존 25%에서 100%로, 태양광 제품은 25%에서 50%로, 철강과 알루미늄 등 금속재는 7.5%에서 25%로 상향한다.
이 관세 개정안은 애초 지난 8월31일 승인됐어야 했는데 미국 백악관은 내부 사정으로 일정을 이번 달 안으로 연기했다.
사실상 중국은 자국산 제품의 주요 시장인 서방권 국가들이 모두 관세장벽을 높이고 있어 다른 판로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고도 경제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아프리카는 중국산 제품을 일부 소화해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됐다.
▲ 1일 중국 베이징 공항에서 열린 포르 냐싱베 토고 대통령 국빈 환영 행사에서 열병식을 진행하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 인민군 의장대. <연합뉴스> |
올해 3월 아프리카개발은행이 발표한 ‘거시경제 성과와 전망(MEO)’에 따르면 2024년 아프리카 대륙 경제 성장 전망치는 3.8~4.2%로 글로벌 평균 2.9~3.2%보다 높았다.
고도 경제 성장의 기준이 되는 성장률 5%를 넘는 국가도 15개국이나 됐다. 니제르는 올해 11.2%나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전통적으로 아프리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재정 적자 문제도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22년 기준 6.9%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평균 재정 적자 비율은 2023년 기준 4.9%까지 낮아졌다.
여기에 중국은 차관 제공을 통해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를 부양하는 한편 친환경 산업을 향한 투자를 확대해 자국산 제품 수요를 키우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1년 열렸던 아프리카 국가들과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상호무역 규모를 2024년 기준 연간 3천억 달러(약 401조 원)까지 키우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국·아프리카 상호무역 규모는 약 2830억 달러(약 379조 원)을 넘어서 약속한 규모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물품 가운데 약 20%가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어 모든 국가 가운데 비중이 가장 높았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중국 수입 비중도 평균 약 16%에 달해 양측은 2023년 기준 상호 최대 교역 상대국이 됐다.
IMF 집계에 따르면 중국이 주로 수입한 것들은 석유, 코발트, 니켈 등 광물류였고 아프리카가 수입한 제품은 전자기기, 정밀기계 등 공산품으로 파악됐다.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에 제공하는 차관 규모도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스턴대 글로벌정책연구소가 올해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 8개국과 지역은행 두 곳에 제공한 차관은 42억 달러(약 5조6246억 원)가 넘었다. 이 가운데 약 5억 달러(약 6696억 원)는 태양광과 수력 등 친환경 발전 프로젝트에 지원됐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로 보면 제공된 중국의 차관 규모는 46억 달러(약 6조1603억 원)를 넘어 2019년 이래 최대 수준에 달했다.
차관 제공 요건도 이에 따라 조정됐는데 기존에는 다리, 항만, 철로 등 건설 프로젝트에 주로 제공됐으나 이제는 태양광 발전소, 전기차 공장 건설 등에 지원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보스턴대가 2000년~2023년까지 집계한 결과를 보면 중국이 아프리카 49개국에 제공한 차관은 누적 1820억 달러(약 243조 원)를 넘어섰다. 차관이 가장 많이 투입된 곳은 약 627억 달러(약 83조 원)가 들어간 에너지 분야와 약 526억 달러(약 70조 원)를 받은 교통 분야였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국이 차관을 통해 인위적으로 아프리카 경제를 키워주는 것에 한계가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리나 베나브달라 하버드대 아프리카 연구센터 연구원은 로이터를 통해 “중국이 아프리카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자금을 제공해주는 것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모습을 앞으로 지속해서 보게 될 것”이라며 “향후 중국 정부는 차관 제공보다는 기술 이전 쪽으로 선회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