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조선사들이 최근 친환경 선박 기술에서도 빠르게 약진하며 국내 대형 조선3사를 위협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광저우조선의 초대형 암모니아운반선(VLAC) 모습. <로이드선급 홈페이지 갈무리> |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조선사들이 친환경 선박 기술에서도 빠르게 약진하며 국내 대형 조선3사를 위협하고 있다.
이미 중국 조선 업체들은 수주 물량에서 한국을 역전한지 오래인데, 기술력에서도 격차가 좁혀지면 국내 조선 업체들의 시장 지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조선 업계 안팎 취재를 종합하면, 선박 분야의 차세대 친환경 연료로 꼽히는 암모니아와 관련한 중국 조선업계 기술력이 글로벌 선사와 선급들로부터 인정받을 정도로 향상된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 로이드선급(LR)은 전날 중국 MARIC(Marine Design & Research Institute of China)의 36만 DWT 암모니아 연료 추진 초대형 광석운반선(VLOC)에 대한 설계 기본인증(AiP)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MARIC는 중국선박공업(CSSC) 그룹의 설계 연구소 가운데 하나다. MARIC가 설계해 기본 인증을 받은 초대형 광석운반선은 암모니아 이중연료 추진장치를 탑재했을 뿐 아니라, 연료비 절약을 위해 개방형 탈황장치도 갖추고 있다.
기상경로, 에너지 효율, 암모니아 추진체계 등을 점검할 수 있는 정보기술(IT)도 적용되며, 에너지 절약을 위한 장비도 설치됐다.
CSSC그룹 산하의 광저우조선은 최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조선·해양 박람회 ‘포시도니아 2024’에서 로이드선급과 세계 최대 초대형 암모니아운반선(VLAC) 설계를 위한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데 협력키로 했다.
닉 브라운 로이드선급 최고경영자(CEO)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암모니아 운반선의 역사적 설계에 광저우조선과 함께 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며 “주요국이 이산환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석탄 발전소에서 암모니아 혼소 발전을 추진하는 만큼 해운업은 암모니아와 같은 청정 수소 기반의 원료 확산에 기여하고, 국가들이 파리협정을 준수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천 광저우조선 회장은 “광저우조선은 다양한 종류의 선박에 대한 혁신, 강한 연구개발 역량으로 시장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며 “이번 10만 큐빅미터 규모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 설계는 우리의 장기 파트너와 암모니아 생산자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개발됐다”고 말했다.
▲ 광저우조선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조선·해양 박람회 ‘포시도니아 2024’에서 로이드선급과 세계 최대 초대형 암모니아운반선(VLAC) 설계를 위한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데 협력키로 했다. 닉 브라운 로이드선급 최고경영자(왼쪽)와 지천 광저우조선 회장이 협력 양해각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드선급> |
중국 조선사들은 암모니아 관련 선박에서 실제 수주 성과도 거두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건조 경력이 있기 때문에 LPG운반선과 구조가 비슷한 암모니아 운반선에서도 수주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더욱이 중국 조선소들은 암모니아 운반선보다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암모니아 추진선 건조 일감까지 확보하고 있다. 중국 다롄조선은 최근 유조선 운영 회사인 AET로부터 세계 최초 암모니아 이중연료 추진 아프라막스급 유조선 건조를 수주했다.
또 다른 친환경 연료인 메탄올 분야에서도 중국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베트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해운·선박관리 회사 ASP는 최근 광저우조선에 메탄올 이중연료 추진 MR탱커를 발주했다. MR탱커선은 재화중량톤(DWT) 4만~6만 톤 규모의 중형 유조선으로 석유제품을 운송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메탄올 추진선은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사들이 우세했던 분야지만, 최근 수주 실적만 놓고 보면 전세가 역전된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들어서는 메탄올 추진선 발주의 대부분을 중국 기업들이 가져가고 있다.
중국 조선사들의 메탄올 추진선 기술력이 향상된 것과 함께 중국이 선박을 발주할 자국 내 대규모 선사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강력한 메탄올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중국 조선사들이 메탄올 추진선 수주를 빠르게 늘리는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 조선사들은 이미 단순 시장 점유율에서는 중국에 크게 뒤지고 있다. 조선해운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5월 누적 수주량 가운데 중국 조선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61%로 한국 조선사(26%)를 크게 뛰어넘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양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운 만큼, 기술력 우위를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를 선점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실제 국내 기업들이 만든 선박은 같은 선종이라 하더라도 중국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선주들에게 팔리고 있다.
하지만 조선업계 미래 먹거리라 할 수 있는 친환경 선박 기술력에서도 중국 기업들이 대거 약진하는 것은 곧 한국 조선 기술력 우위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중국에 세계 조선 시장 전체를 잠식당하는 것도 시간 문제가 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조선사들은 중국 기업들과 기술 격차가 좁혀지지 않도록 차세대 친환경 기술력 확보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국내 조선 업체들은 특히 최근 친환경 선박 기술 선점을 위해 액화이산화탄소(LCO2) 운반선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 아래 HD현대중공업은 그리스 캐피털가스와 함께 4만 큐빅미터 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에 대한 기본승인을 받고, 관련 기술개발과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은 탄소 포집·저장(CCUS) 등 탄소중립 확대와 함께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선박이다. 이산화탄소를 포집한 뒤 저장시설로 옮기기 위해선 이를 운반할 선박이 필요하다.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가 활성화되고 탄소포집 시설의 증설이 확대될수록 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 시장도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화오션도 최근 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에 관한 기본인증을 미국선급협회(ABS)로부터 획득했다.
국내 기업들은 기존 내연기관 엔진이 아닌 연료전지 동력 기술을 적용한 암모니아 추진선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각각 미국 암모니아 연료전기 기업인 아모지와 협력해 연료전지 추진선을 개발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13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크기) 소규모 컨테이너선, 삼성중공업은 8만8천 큐빅미터 암모니아운반선에 대해 각각 암모니아 연료전지 추진체계를 적용해 로이드선급으로부터 기본인증을 받았다.
박종국 HD한국조선해양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우리는 선박의 다중 동력원으로서 아모지 기술과 에너지저장시스템(ESS)에 기초해 전기 추진 패키지의 기본설계를 담당했다"고 말했다.
장해기 삼성중공업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암모니아는 조선해운 업계의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솔루션”이라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