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이 28일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멍거 부회장이 2013년 3월4일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의 버크셔해서웨이 본사에서 열린 연례 주주총회에 참석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세계적인 투자가이자 워런 버핏의 ‘오른팔’로 알려진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99세다.
28일(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멍거 부회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병원에서 이날 세상을 떠났다. 버크셔해서웨이는 구체적인 사망 원인이나 장소를 밝히지 않았다.
멍거 부회장은 1924년 1월1일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미시간 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19살이던 1943년 미 육군 항공단에 입대한다. 항공단 소속으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서 9개월 동안 기상학을 공부한 뒤 제2차 세계대전에 복무하다 1946년 제대했다.
제대 이후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까지 진학해 1948년에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로스쿨을 졸업한 뒤 직접 세운 로펌인 멍거 톨스 앤 올슨(Munger Tolles & Olson)에서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일했다.
그러다 1959년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한 저녁 파티에서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을 만나 투자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당시 버핏 회장은 멍거 부회장에게 “투자를 더 잘할 것 같으니 법은 그냥 취미로 삼는 게 어떨지”라고 설득하며 그를 투자업계로 불러들였다.
두 사람은 이후 수십 년 동안 함께 투자를 했다.
1964년 시가총액이 1천만 달러(약 128억9200만 원)이던 직물회사 버크셔해서웨이를 인수해 2023년 11월 기준 7850억 달러(약 1011조5900억 원)로 키웠다. 60년 동안의 투자로 기업을 7만8500배 성장시켜 세계 최고의 투자회사로까지 일궈낸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버핏 회장과 멍거 부회장의 서로 다른 투자 스타일이 서로를 보완해 큰 성과를 거뒀다고 짚었다.
두 사람의 투자 스타일이 얼마나 다른지는 별명 하나로도 드러난다. 버핏 회장은 그를 ‘끔찍한 노(No)맨’이라고 불렀다.
뭐든 다 찬성한다는 뜻의 예스(Yes)맨이 아니라 반대 의견을 적극적으로 낸다는 이야기다.
가치투자라는 기본 철학은 공유하면서도 서로의 투자에 격의없이 조언하는 관계라는 점을 시사하는 별명으로 해석된다.
▲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오른쪽)이 2019년 3월3일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 위치한 회사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 참석해 워런 버핏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특히 멍거 부회장은 미래 기술에 과감하게 투자한다는 점이 버핏 회장과 비교됐다.
아직 전기차 산업이 개화하기 한참 전인 2008년 9월, 버크셔해서웨이가 멍거 부회장의 주도로 중국 비야디(BYD)에 2억3200만 달러(약 2990억5148만 원)를 투자한 일화가 있다.
BYD는 이후 테슬라와 세계 1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성장해 버크셔해서웨이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줬다.
반대로 버핏 회장은 패스트푸드나 보험과 같은 산업에서 주로 투자 수익을 낸다.
투자 스타일이 다르지만 버핏 회장은 멍거 부회장의 투자 실력을 강하게 신뢰한 것으로 보인다. 멍거 회장의 개인 자산도 27억 달러(약 3조4733억 원)일 것이라는 포브스의 추산치도 그의 투자 실력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버핏 회장은 1996년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찰리 멍거는 내게 벤자민 그레이엄이 가르쳐 준 대로만 하지 말라고 방향을 제시했다”며 “그레이엄의 제한적 견해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이 멍거가 내게 끼친 진짜 영향”이라고 말했다.
미국 경제학자 벤자민 그레이엄은 버핏 회장의 가치투자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찰리 멍거 부회장은 주식투자와 관련한 지식 외에도 인생과 성공에 관한 통찰력 있는 조언들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멍거 부회장을 기리는 보도에서 고인을 솔직하고 현명한 조언을 하던 사람으로 평가했다.
그는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독(毒)이 되는 해로운 사람들을 당신의 인생에서 빨리 쫓아내는 게 좋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또한 “행복을 너무 나중으로만 미루지 말고 지금 행하라, 그러면서도 평생 배우려고 노력하다 보면 성공이 따를 것”이라고도 했다.
아무리 부자여도 삶은 한 번이니 만큼 현재에 충실하면서 배움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으로 들린다.
투자 실력과 통찰력을 갖춘 그이니 만큼 평생을 워런 버핏 회장의 ‘오른팔’로만 살았던 것에 아쉬움이 남지는 않았을까.
뉴욕타임스는 멍거 부회장의 생전에 부고 기사용 인터뷰를 미리 나눈 뒤 그렇지 않았다는 답을 전했다.
멍거 부회장은 “워런 버핏의 2인자 역할이라는 말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라며 “평소에는 자기주도적이지만 버핏 회장과 같이 나보다 뛰어난 사람과 함께라면 ‘제2번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즐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