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여름휴가를 산속 연구소에서 함께 보내겠다는 아들과 딸의 전화를 받고 기대가 충만했다. 집 안팎을 살뜰히 청소하고 장난감과 놀이방을 정리하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다섯의 손주들과 일주일 내내 온 가족이 북적거릴 광경을 생각하니 얼마나 좋던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집 걱정에 과다한 교육비까지 극심한 스트레스로 저출산이 대세가 되었는데 내 아들과 딸은 그래도 불안해하지 않고 손녀 셋과 손자 둘, 다섯 아이를 낳았다.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며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나를 생각했다.
멸종위기종의 절멸을 막고 그나마 살아있는 환경을 지켜 우리의 미래인 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남겨주기 위해 애를 쓰는 내 일이 요즘처럼 자랑스러울 때가 없다. 자주 만나서 자연을 느끼고 멸종위기종을 같이 키워보고, 생물을 보여주고 만져보게 하려고 열심히 준비하지만 쉽지는 않다.
▲ 멸종위기종 소똥구리의 밥을 주는 필자의 손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
365일을 감기, 독감, 코로나, 폐렴, 알레르기, 아토피성 피부염에 수족구까지 온갖 병치레를 하니 병원에 오가느라 연구소에 자주 올 수가 없다. 2살경부터 다니는 어린이집의 집단생활에서 병을 옮겨오고 병을 옮겨주고 집안에서는 다시 형과 언니, 동생에게 옮기고 옮겨오는 악순환이 거의 일 년 내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아이들 몸속으로 투여되는 항생제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건 아닌지, 잘못 사용되지는 않을까? 부작용을 걱정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OECD 평균보다 50% 이상 많은 항생제가 처방되고 있고 내성세균 발생률도 최근 7년간 최대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항생제 사용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내성 발생률도 높은 나라라는 뜻이니 근심은 더하다. 이 시대의 가장 어려운 보건 문제인 ‘항생제 내성’이 남의 일이 아니다.
항생제는 저항이라는 뜻의 anti와 생명체를 뜻하는 bio를 결합한 항생제(antibiotics)와 광범위한 의미의 항균제(antimicrobials)라는 용어가 같이 쓰이고 있다.
모든 생물을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시키는 물질로 만든 항생제는 처음에는 곰팡이 또는 토양 미생물이 만들어 낸 자연 물질을 이용했으나 현재는 실험실에서 구조를 약간 바꾼 반 합성, 또는 완전히 새로운 합성 항생제가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
1944년 푸른곰팡이로부터 추출되는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으로 항생제 시대가 열리자 1940~1950년대의 대부분 사람들은 인류가 세균 감염증으로부터 완전 해방될 것처럼 낙관하였다.
그러나 항생제내성 병원균이 점점 늘어나면서 항생제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최근에는 어떤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하게 되었다.
코로나19로 경험했듯 항생제가 통하지 않는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은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인류 건강과 보건을 위협하는 공포다.
영국의 경제 전문가 짐 오닐(Jim O’neill)의 ‘항생제 내성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에는 슈퍼박테리아 감염 사망자가 세계적으로 연간 1천만 명씩 발생할 수 있으며 신세대 항생제가 개발되지 않는다면 항생제 내성 병원균이 확산되면서 세계 각국의 대응 비용이 연간 63조 파운드(약 11경 원)로 치솟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했다.
▲ 슈퍼박테리아 현미경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
인류가 질병 치료를 위한 항생제 사용을 계속하는 한 세균은 이에 대항하는 새로운 저항성을 계속 만들어나갈 것이다. 자연돌연변이와 유전자 전달이라는 강력한 방어 시스템을 갖춘 세균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아픈데 항생제의 사용을 줄이거나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비 항생제 약들과 병용하여 치료 방안의 개선을 도모하면서 궁극적으로 항생제 내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약제를 개발해야 한다.
3억5천만 년 전부터 몇 차례의 대량 멸종 사태에서 살아남아 생존의 DNA를 지니고 있는, 저력 있는 생물인 곤충은 밝혀진 종류만 약 300만 종이고 추정 가능한 종은 대략 2천만 종이 넘는다.
그 오랜 세월동안 그렇게 많은 종류가 토착 세균성 질환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생존에 최적화된 특성을 갖추며 진화한 곤충이 왜 이제껏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았는지 의문이 간다.
박테리아(세균)를 먹이로 삼는 바이러스나 인간이 겪는 세균성 질환을 곤충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숙주로 삼거나 극복하면서 바이오항생제를 장착한 곤충이 만들어내는 생체방어물질은 화학 물질의 조합이나 유전자 조작 없이 언제나 건질 수 있는 명료하면서도 간단한 치료제가 될 수 있다.
▲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
20여 년 동안 1년에 1천 종 이상의 애벌레를 키우면서 각종 세균에 오염되어 죽는 놈들을 많이 관찰한다. 하지만 전멸은 없다. 잘 버티어 나비나 나방이 되는 놈들은 돌연변이와 세대 유전의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어 1세대 후 똑 같은 서식 환경임에도 생존율이 확 올라간다.
짧은 기간의 생활사를 겪으며 감염된 상태에서 변이를 일으켜 병원체인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죽이면서 자가 치유가 된 것처럼 보인다. 계속 진화하는 곤충이야말로 확실한 항생제의 물질로 활성화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픈 눈이나 상처에 바르면 효과가 있는 꿀을 언급했고 히포크라테스는 뇌졸중, 황달을 곤충을 이용해 치료했다.
중국에서는 이미 약 1천 년 동안 곤충을 활용한 치료법이 민간에서 널리 쓰였고 동의보감에서도 ‘전통 약’으로 여겨졌던 곤충이 30여 종이 넘는다. 수천 년 동안 의학적인 목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용했던 곤충과 그 파생물은 지구상에서 아직 이용하지 못한 최대의 자원이다.
정교한 분자 생물학과 화학 분석 방법을 결합해 몇 백만 종의 곤충 병원균 게놈을 분석할 수 있으며 분석한 시료를 모아 곤충항생제 소재은행을 만들 수 있다.
그때 그때 새로운 약제를 개발하지 못할 때는 소재은행을 통해 질병에 맞게 공급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치료제로 활성화 시킬 수 있지 않나 싶다. 까다롭고 복잡한 신약 개발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독성과 부작용을 제거한 곤충유래생체방어물질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생물학자로서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일 년 내내 온갖 병치레를 하며 병원에 오가는 손주들의 만성 질환인 감기나 아토피성 피부염만이라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 필자가 2021년, 2023년 바이오 회사와 협업으로 발표한 논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
독성이 낮고 부작용 적은 전통적인 치료법과 치료약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애벌레를 돌아보게 되었고 2021년, 2023년 극단적인 추위에서 생육하는 붉은점모시나비의 애벌레로부터 치주염과 아토피 피부염을 치료할 수 있는 저분자량의 항균펩타이드를 찾아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물론 유전체 연구와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3Bigs라는 바이오 회사와의 협업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곤충을 분류하고 그들의 생태를 연구하는 곤충생태학자가 신약에 정통할 수는 없지만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에 맞설 수 있는 차세대 치료제로 약용곤충을 추천하는 일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소박하게 내 손주들만 생각하다가 세상에 필요한 연구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전문 연구자들이 그 내용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고 더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붉은점모시나비, 등 멸종위기종 증식과 복원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12년부터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