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쓰시타전기(지금의 파나소닉)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기업 경영에 ‘경청’을 잘 활용한 경영 현자였다. 그의 삶 이야기를 쓴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존 코터 교수는 “비행기 날개처럼 기다란 귀가 유독 돋보이는’(ears stick out like airplane wings)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파나소닉> |
[비즈니스포스트] 아브라함 잘레즈닉(Abraham Zaleznik: 1924~2011)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정신분석(사회심리학) 기법을 리더십 연구에 접목한 선구자로 명성이 높았다.
하버드대에 따르면 잘레즈닉 교수는 1981년 일본을 방문해 마쓰시타전기(현재의 파나소닉)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1894~1989)를 만났다고 한다.
마쓰시타는 잘레즈닉 교수를 통해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 100만 달러의 연구 기금을 쾌척했다. 하버드대는 그 보답으로 1983년 ‘마쓰시타 고노스케 리더십 교수(Konosuke Matsushita Professor of Leadership)’라는 직책을 신설해 그 자리에 잘레즈닉 교수를 임명했다.
잘레즈닉 교수가 1990년 은퇴하면서 바통을 이어받은 이가 하버드대 간판 스타인 존 코터(John Kotter·76) 교수였다. 1980년 33세의 나이에 하버드 역사상 최연소 교수로 발탁됐던 코터 교수는 현재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명예교수이자 리더십 및 변화관리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그런 코터 교수는 뜻하지 않게 ‘마쓰시타 고노스케 리더십 교수’라는 직책을 맡게 됐다고 한다. 잘레즈닉 교수가 은퇴하던 그해 어느 날 경영대학원의 존 맥아더 학장이 코터 교수를 호출해 석좌교수를 제안했다.
사실 코터 교수는 그 제안이 마뜩하지 않았다. 새로 맡을 석좌교수직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기업인 이름을 따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학장은 그러면서 코터 교수에게 마쓰시타 고노스케에 대한 일부 자료를 건넸다고 한다. 코터 교수의 당시 심정을 좀 들어보자.
“다음날 맥아더 학장이 넘겨준 자료들을 마지못해 훑어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선뜻 믿기지 않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내가 이름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그 자료의 주인공은 혁신적 경영과 마케팅 전략으로 거대한 기업을 일으키고 일본의 경제 기적을 일궈낸 주역이었다.(중략) 마쓰시타의 삶을 탐구하면서 위대한 리더십의 뿌리를 보았다.”
그후 코터 교수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라는 한 인간에 빠져 6년 동안 연구 작업에 매진했다. 그 결과물이 1997년 출간된 ‘마쓰시타 리더십(Matsushita Leadership)’이라는 책이다.
‘20세기 가장 주목할 만한 기업가의 교훈’(Lessons from the 20th Century's Most Remarkable Entrepreneur)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한국엔 ‘운명’(다산북스, 2015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세계적인 리더십 권위자인 코터 교수는 왜 그토록 마쓰시타 고노스케라는 인물에 집착했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20세기를 살았던 기업가나 경영진 가운데 마쓰시타만큼 수많은 업적을 이룬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는 만인에게 영감을 주는 모범이 된다는 점에서 그 누구에게도 비견될 수 없는 독보적 존재다.” (한국판 ‘운명’에서 인용)
마쓰시타 고노스케. 그를 기업인으로만 한정하기엔 그릇이 너무 컸다. 사상가(PHP연구소 설립), 교육자(정치학교 마쓰시타정경숙 설립), 철학자 등 그가 일군 영역과 영토는 한없이 넓었다.
▲ 하버드대의 존 코터 교수가 1997년 ‘마쓰시타 리더십(Matsushita Leadership)’이라는 책을 내놓으면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서구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코터 교수의 그 책은 당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하는 ‘올해의 글로벌 비즈니스 북 어워드(global business book of the year award)’를 수상했다. <하버드대> |
세상을 떠난 지 34년이 지났지만 그가 집필한 수많은 경영서들이 해마다 일본 서점가에서 7만~8만 권가량 팔려 나간다고 한다. ‘죽은 마쓰시타’가 책을 뚫고 나와 ‘미래의 마쓰시타’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경영의 신에 대한 식지 않는 ‘오마주(hommage: 존경)’이기도 하다. 존 코터 교수는 그런 현상을 바라보면서 마쓰시타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가 보여준 리더십은 권위있는 리더십 전문가인 워렌 베니스와 노엘 티치 등이 높게 평가하는 이상적인 리더십과 유사하다.” (같은 책에서 인용)
워렌 베니스(Warren Bennis: 1925~2014)는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학 교수를 지낸 현대 리더십 연구 분야의 선구적 사상가였으며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교수 노엘 티치(Noel Tichy)는 잭 웰치 전 GE 회장의 리더십 스승으로 잘 알려진 경영컨설턴트다.
이렇듯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존 코터 교수가 인정할 만큼 대단한 경영자였지만 그의 개인적 삶은 비극 그 자체였다. 3남5녀의 막내로 태어난 마쓰시타는 불운한 가족사를 갖고 있다. 서른이 되기 전에 부모를 비롯해 형들과 누이들이 결핵과 전염병 등 질병으로 모두 사망했다.
감당하기 힘든 그런 비극은 오히려 마쓰시타를 더 단단하게 키우는 토양이 되었고 자양분 구실을 했다. 이를테면 가난과 허약한 체질, 저학력이라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해 강점으로 만든 것이다.
마쓰시타는 성공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첫째 가난하게 태어난 것, 둘째 허약하게 태어난 것, 셋째 배우지 못한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답하기도 했다. 그 이유를 좀 들어보자.
“가난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많은 세상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허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건강의 소중함을 일찍 깨달아 늙어서도 건강할 수 있었고,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나의 스승으로 받들어 배우고 노력할 수 있었다.” (자서전 ‘청춘론’중에서 인용)
마쓰시타의 인생을 축약한 한 토막이 아닐 수 없다. “피오줌을 눈 적이 없다면 성공한 경영자가 될 수 없다”고 되뇌인 것도 이런 비극에 비극을 더한 개인사와 가족사 때문이다.
자전거 가게와 전등회사 견습공으로 일하던 마쓰시타가 아내, 처남(이우에 도시오)과 더불어 오사카에 ‘마쓰시타전기’라는 간판을 단 것이 1918년이었다. 마쓰시타전기는 개량형 전기 소켓과 라디오를 제조하면서 전국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1955년 마쓰시타전기는 미국 시장에 처음으로 스피커를 수출했는데 그 브랜드가 바로 ‘파나소닉’이었다. 파나소닉이라는 제품명은 창업 90년을 맞는 2008년 회사 이름으로 변모했다. 마쓰시타전기가 파나소닉이 된 것이다.
마쓰시타와 함께 회사를 창업한 처남 이우에 도시오(井植歳男: 1902~1969) 이야기도 일본 기업사에선 흥밋거리다. 이우에 도시오는 1947년 마쓰시타전기를 나와 별도의 회사를 차렸다. 훗날 일본 가전업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산요전기(三洋電機)다.
그런 이우에 도시오는 삼성 창업회장 이병철과 각별한 사이였다. 이병철 회장은 1960년대 산요전기 공장을 견학하게 되는데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다고 한다. 당시 그에게 전자산업 진출을 권한 것이 이우에 도시오였다. 귀국길에 이 회장은 산요전기보다 더 큰 공장을 짓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삼성의 승승장구와는 대조적으로 산요전기는 세월이 지나 리먼 쇼크 당시 무너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 몸’이었던 파나소닉에 인수되면서 자회사로 편입됐다.
마쓰시타 고노스케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는 기업 경영에서 ‘뭣이 중헌디?’를 늘 각인하고 있던 경영 현자였다. 그의 경영이념을 뜻하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이즘’(松下幸之助ism)의 핵심이 바로 ‘사람 중시’(人間大事)였다. 그는 수익을 앞세우는 대차대조표보다 사람이라는 진정성에 방점을 뒀다.
대공항 시절, 불황기에 직원들을 ‘길바닥’으로 내몰지 않았던 스토리는 유명하다. 1929년 무렵, 마쓰시타전기는 창업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었다. 판매가 절반 이하로 급감했고 재고가 창고 안팎에 쌓이고 쌓였다.
구조조정을 해야 할 상황. 일선 간부들이 마쓰시타에게 “종업원을 반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마쓰시타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생산은 반으로 줄이돼 종업원은 한 사람도 해고해서는 안된다. 공장은 반나절만 돌리지만 종업원의 임금은 전액 지불한다.”
▲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0년 아사히신문이 밀레니엄을 맞아 일본 국민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 조사(‘지난 1000년 동안 기업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누구인가?’)에서 혼다자동차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를 크게 앞지르며 1위에 선정된 바 있다. <파나소닉> |
해고는커녕 일을 덜 하더라도 임금은 그대로 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언제 해고될지 전전긍긍하던 종업원들은 마쓰시타의 그런 배려에 크게 고무되었다. 그들이 전력을 다해 판매에 나선 끝에 불과 2개월 만에 재고를 모두 소진하며 회사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마쓰시타의 ‘사람 중시’ 철학은 주5일제 근무 도입으로 이어졌다. 그는 1960년 1월, “일본 대기업 최초로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며 5개년 계획을 세웠다. 임금과 복리후생이 후퇴하지 않는 파격적 조건이 붙었다.
직원들은 다들 꿈같은 계획이라며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마쓰시타는 5년 뒤 이를 관철시켰다. 그는 1965년 4월, 주5일 근무제라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다. 이렇게 ‘사업은 사람이 전부다’(事業は人なり)라는 강한 철학을 밀고 나갔던 마쓰시타가 강조했던 게 하나 있다. 바로 ‘경청’이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마쓰시타는 최종 결정의 순간에 항상 간부들, 심지어 신입사원에게까지 묻고 또 물었다. 초등학교 중퇴인 자신보다 모두가 똑똑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경청의 중요성을 전하기 위해 다른 사례 하나를 소개하다.
training,
TRAINING,
and M-O-R-E
T-R-A-I-N-I-N-G.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사령관이었던 체스터 니미츠(Chester Nimitz) 제독이 했던 말이다. 니미츠는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는 병사들의 훈련이라며 이렇게 지시했다고 한다.
핵심은 소문자(training), 대문자(TRAINING), 하이픈(T-R-A-I-N-I-N-G)까지 동원했다는 데 있다. 훈련의 중요성을 유독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영 구루(guru) 톰 피터스(Tom Peters)는 ‘엑설런스 나우: 익스트림 휴머니즘’(Excellence Now: Extreme Humanism, 한국판 ‘탁월한 기업의 조건’, 한경, 2022)이라는 책에서 니미츠 제독의 이 말을 인용해 “직원의 성장을 가장 촉진해주는 것은 ‘훈련, 훈련, 그리고 더 많은 훈련’”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니미츠 제독과 톰 피터스의 사례(소문자, 대문자, 하이픈)를 마쓰시타 고노스케에게 한번 적용해 보자. 경청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마쓰시타라면 이렇게 웅변하지 않았을까?
listening,
LISTENING,
and M-O-R-E
L-I-S-T-E-N-I-N-G.
‘경청, 경청, 그리고 더 많은 경청’이라는 얘기다. 사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사진을 본 사람들이라면 그의 귀 모양에 놀라곤 한다. 하버드대 존 코터 교수는 ‘비행기 날개처럼 기다란 귀가 유독 돋보인다’(ears stick out like airplane wings)고 표현하기도 했다. 필자가 보기엔 ‘경청에 최적화된 귀’였다.
존 코터 교수는 그렇게 경청의 중요성을 설파한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삶을 이 한마디로 정의했다.
“성장을 멈추지 않는 한 사람의 신화를 보았다.” 이재우 재팬올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