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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으로 읽는 경제] '생태계 지킴이' 꿀벌과 곤충 감소는 식량위기 전조

이강운 holoce@hecri.re.kr 2023-04-14 08:5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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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으로 읽는 경제] '생태계 지킴이' 꿀벌과 곤충 감소는 식량위기 전조
▲ 필자가 22년 사용한 트랙터.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비즈니스포스트] 27년 전 강원 횡성에서 곤충 연구소를 조성하면서 어떻게든 자연을 훼손하지 않을 방법을 찾았다.

환경을 위해서 시작하는 일이었기에 웬만하면 중장비가 아닌 몸만 써서 정리해 보려했다.

그러나 30여 년 이상 사람이 살지 않았던 오래 묵은 땅이어서 풀이 나무처럼 자라 길도 없는 산속 오지는 아내와 나의 서투른 삽과 낫만으로는 언감생심, 너무 벅찼다.

첫해는 자연을 그대로 살리면서 필요에 맞게 풀과 나무를 솎아 조성해 봤지만 판단 착오,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듬해에 트랙터를 샀다. 일단 통행할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식물을 식재할 구획으로 나누고 곤충들 먹을 식물을 심는, 가장 기본적인 곤충 서식지 틀을 짜는데 트랙터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잔 고장으로 잦은 수리를 해야 되고 무엇보다도 출장 수리를 제 때에 받지 못해 필요할 때 사용하지 못하는 불상사 때문에 22년 된 '애마'가 애물단지가 되었다. 트랙터를 바꾸기로 했다. 

아마 트랙터의 도움이 없었으면 족히 4~5배의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농기계의 위력이 어디 트랙터 뿐 일까? 최고 효율의 농기계가 논과 밭, 가파른 경사의 산 속까지 고령화 된 농업인을 대신해 구석구석 파헤치며 경작을 하고 있는 광경을 늘 목격한다.

게다가 사물인터넷, 드론, 인공지능 등 ICT 기술을 농업에 접목해 온도, 습도, 일조량, 이산화탄소를 측정하고 최적의 생육 환경을 제어하는 스마트팜으로 식량 생산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최근의 농업 방식은 극도로 현대화되어 실리콘밸리의 첨단 기술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농기계로 노동력을 이용하고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식물을 개발하며 살충제와 비료를 점점 더 많이 투입한 덕택에 가치가 높은 식량 생산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수확량과 수익을 극대화하는 집약적이며 매우 효율적인 농법이지만 이런 첨단화 된 작동 방식도 한순간에 붕괴될 수가 있다. 

산업적으로 성공하는 농업을 하려면 수분 매개자인 곤충이 반드시 필요한데 기후가 들쑥날쑥 요동치면서 곤충이 파격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곤충으로 생산해야할 질 높은 농산물이 사라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최근 30년 동안 육지에 서식하는 곤충의 개체 수가 4분의 1 넘게 감소했다는 2020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은 충격적이다. 난개발로 곤충의 서식지 감소가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히지만 온도와 습도가 불규칙적으로 자주 바뀌는 기후 변화로 변온성 동물인 곤충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들이 사라지면 딸기, 자두, 복숭아, 멜론, 브로콜리처럼 바로 먹을 수 있는 식품도 함께 없어진다. 또 다양한 빛깔의 식재료인 고추도 토마토도 양파도 없이 맛난 음식을 만들 수 없을 것이고. 
 
[곤충으로 읽는 경제] '생태계 지킴이' 꿀벌과 곤충 감소는 식량위기 전조
▲ 딸기를 좋아하는 손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아주 작은 동물이라 무시해버려도 괜찮을 것 같지만 곤충이 멸종하는 일이 인간의 식량과 이 정도로 깊은 관련이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바람만 불면 수정이 되는 밀, 쌀, 옥수수와 같은 기본 식품이 있어 인류가 굶어 죽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맛이나 영양은 사치다. 1년 내내 마트에서 온갖 과일과 채소를 살 수 없는 미래를 그려보면 끔찍한 일이다.

정말 살기 위해 먹는, 먹는 것 때문에 인간의 삶이 불안정해질 것이고 이런 사태가 심각해지면 결국에는 우울증으로 정신이 피폐해지는 잔인한 상황을 겪어야 할 것이다. 

식물의 수분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화분매개곤충의 감소 중에도 특히 양봉 꿀벌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은 큰 걱정거리다.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60% 정도가 꿀벌의 수분활동에 의존하니 만일 이들이 사라지게 된다면 곤충 멸종의 시나리오대로 인간의 식량과 생존에 큰 재앙을 미칠 것이다.

1만 년 전 스페인의 동굴에서 꿀을 채집하는 여자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로 추정해볼 때 양봉은 인간의 삶과 맞닿아 있는 산업으로 벌레인 꿀벌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맛인 꿀을 만드는 농업이다.

본질적으로 꿀은 벌이 토해 낸 먹이일 뿐인데 왜 그렇게 꿀 얻기에 혈안이었을까?

열량과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해 건강식품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매력은 단연 단맛이다. 꿀은 꿀맛, 꿀단지, 꿀잠까지 영역을 넘나들며 극단의 맛이나 즐거움을 표현할 때 같이 붙어 다니는 단어로 마법사처럼 보이는 꿀벌에 대한 격한 존경심의 표현이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생태계 지킴이' 꿀벌과 곤충 감소는 식량위기 전조
▲ 꿀벌.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최근 들어 양봉산업의 경제성은 꿀과 밀랍을 비롯하여 꽃가루 및 로열 젤리 같은 양봉산물을 생산하는 이익보다는 각종 작물의 화분매개 곤충의 역할로 얻게 되는 이익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양봉산물의 경제적 이득을 넘어 식물, 즉 식량을 화분매개 하는 꿀벌들이 자연에서 행하는 생태계 서비스에 더욱 높은 값을 매기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꿀벌이 기후변화로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이른 봄 식물에 잎이 나는 날짜에 맞춰 그 식물을 먹는 애벌레가 출현하고, 애벌레를 먹고 사는 새가 새끼 키우기를 시작한다. 이렇듯 정교한 생태계의 톱니바퀴가 조금이라도 삐걱거려 엇박자가 난다면 엉망진창이 된다.

벌은 주로 온도의 높고 낮음에 따라 발생 시기가 결정되고, 식물은 대체로 하루의 길이를 보고 꽃을 피운다. 그런데 봄과 겨울의 온도가 불규칙해지면서 벌과 식물의 손발이 맞지 않고 있다. 

겨울철 이상고온으로 월동해야 할 꿀벌들이 깨어나 꽃을 찾아 나서지만 해의 길이로 봄을 판단하는 식물은 아직 겨울이므로 서로 만날 수 없다. 발생 시기가 달라 엇박자가 줄초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에 수분 매개자와 식물 사이에 부조화가 나타나고 있고 기온이 올라가면서 꿀벌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으며 세심하고 정교하게 짜인 먹이그물,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다. 그 다음 차례는 바로 인간.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곤충, 벌레면 무조건 적대시하던 생각들이 꿀벌로 인해 조금은 호의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든 꿀벌을 살려야 한다는 구호와 ‘벌의 날’이 제정되어 곤충은 이제 인간의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다. 호박벌도 산호랑나비도 화분매개를 통해 다양한 식량을 생산하는 곤충이므로 덩달아 같이 보호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곤충학자의 소박한 소망이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생태계 지킴이' 꿀벌과 곤충 감소는 식량위기 전조
▲ 호박벌(왼쪽)과 산호랑나비.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인간의 기술로 곤충이 담당하고 있는 수분 매개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고, 이상 고온과 저온을 오가며 꿀벌에 기생하는 응애도 언제까지 약으로 막을 수 없다.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기후 변화를 해결하여 곤충을 지키는 수밖에. 기후위기는 식량 위기와 동의어이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붉은점모시나비, 등 멸종위기종 증식과 복원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12년부터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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