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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1천만 달러 손실을 '스토리'로 만든 IBM 창업자

이재우 sinemakid222@gmail.com 2022-08-12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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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1천만 달러 손실을 '스토리'로 만든 IBM 창업자
▲ IBM 창업자 토머스 왓슨 시니어는 혁신가를 넘어 ‘스토리텔러’의 공감 능력까지 갖춘 위대한 기업인이었다. < 왓슨재단>
[비즈니스포스트] 얼마 전 모 협회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젊은 창업가들을 대상으로 동기부여 강연을 해야 하는데 좋은 글로벌 사례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면서 "참석자들이 들으면 귀가 솔깃한 케이스면 좋겠다"고 했다. 

강연의 취지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본 후 사례를 찾아서 곧 연락하겠다고 휴대전화를 끊었다. 필자가 며칠 생각한 끝에 찾은 사례는 IBM 창업자 이야기(어록)였다.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필자: 오래 전 이야기인데 IBM 창업자 사례가 어떨까 합니다.
지인: 어떤 내용이죠?
필자: 미국 유수의 비즈니스 스쿨에서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로 배우는 내용이라고도 합니다. 간략하게 정리해 메일로 보냈습니다.
지인: (메일 확인 후) 흥미로운 사례군요.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지인이 부탁했던 그 이야기(어록)를 해보려고 한다. 

이야기는 토머스 왓슨 시니어(Thomas J. Watson Sr.·1874~1956)가 CEO를 맡고 있던 미국 기술기업 IBM의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도유망하던 한 젊은 직원이 위험 부담이 큰 사업을 감행했다. 그런데 판단 실수로 회사에 1천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히고 말았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당연히 해고될 것이라 생각했다. 

창업자 왓슨의 사무실로 불려간 그는 책상 위에 사직서를 담은 봉투를 올려 놓았다. 그리고 잔뜩 겁에 질린 채 이렇게 말했다. "짐작컨대, 제가 사직하게 되겠죠?(I guess you want my resignation?)"

잠시 침묵이 흘렀다. 표정 없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던 왓슨이 마침내 입을 뗐다. 그런데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무슨 소리야. 우리는 자네를 교육하는 데 방금 1천만 달러나 사용했네. 해고라니 말도 안돼.(You can't be serious. We've just spent $10 million educating you!, 영어 원문 발췌: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100만 달러도 아닌 무려 1천만 달러의 손실을 초래한 직원을 해고하지 않겠다니? 일반적인 CEO라면 도저히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다. 왓슨인들 엄청난 손실이 아깝지 않았겠는가. '뚜껑'이 열리거나 부글부글 끓지 않았겠는가. 또 당사자의 멱살을 잡거나 주먹을 날리고 싶지 않았겠는가. 

만약 욱하는 마음에 직원을 해고해 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회사를 말아먹을 뻔한 직원을 해고한 그저 그런 CEO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왓슨은 달랐다. 직원의 대형사고를 오히려 훌륭한 '스토리'로 탈바꿈시켰다. 생각의 전환이 만들어낸 그 스토리는 입소문을 타고 업계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1천만 달러 손실을 '스토리'로 만든 IBM 창업자
▲ 토머스 왓슨 시니어는 1천만 달러 손실을 입힌 직원을 해고하지 않았다. 그 직원이 가져다 줄 미래의 가치를 보았던 것이다. <픽사베이> 
필자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등 여러 검색 자료를 찾아본 결과 왓슨은 뛰어난 감성 능력을 가진 스토리텔러(storyteller)였던 것 같다. 실패라는 '비싼 수업료'가 가져 올 미래의 가치를 보았던 것이다.    

때론 감성은 이성보다 힘이 세다. 왓슨의 경우 CEO의 이성으로는 직원을 해고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러로서의 감성이 그걸 말렸다. 이를테면 감성이 이성에게 '로비'를 벌여 승리했다고 봐야 한다. 왓슨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을 향해 시원하게 '피니시 블로(Finish Blow)'를 한 방 먹이고 있는 셈이다.  

분명한 건 CEO 왓슨의 결정이 해고 문턱에서 살아난 직원에게 새로운 동기부여를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에게도 두 가지 믿음을 심어주었다. '사람'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asset)이라는 것과 실패하더라도 IBM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중요한 믿음 말이다. 

재미 있는 비교를 한번 해보고 넘어가자. 앨 던랩(Al Dunlap)이라는 악당이 있었다. 미국 기업사에서 가장 악랄한 경영자로 평가받았던 던랩은 '셔츠 입은 람보(Rambo in Pinstripes)', '전기톱(Chainsaw)', '파쇄기(Shredder)'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별명만 들어도 섬뜩하지 않은가. 

회생 전문가였던 던랩은 12개 기업을 거치면서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위해 수천 명의 직원을 사정없이 해고했다. 결국 그는 선빔(Sun beam)이라는 회사에서 쫓겨났다.

만약 던랩이 IBM 수장 자리에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때마침 회사가 1천만 달러의 큰 손실을 입었다. 그는 손실을 입힌 당사자에게 얄짤없이 '전기톱(해고)'을 동원했을 것이다. 

과연 거기서 멈췄을까?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다른 직원들마저 끔찍하게 '파쇄기' 속으로 밀어넣었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던랩에게 사람(직원)에 대한 가치는 없었다. 

왓슨은 혁신가이기도 했다. IBM을 창업하면서 'THINK'라는 모토를 처음 만들어 슬로건으로 삼았다. 이유가 뭘까?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1천만 달러 손실을 '스토리'로 만든 IBM 창업자
▲ 아이비에머(IBMers: IBM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THINK'는 아이디어의 우물이자 혁신의 출발이다.

뉴욕타임스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해 THINK 표시를 만들어 회의실에 걸어 놓았다(To stimulate himself and others, Mr. Watson had a 'THINK' sign made and hung it in the conference room)"고 전하고 있다. 영어 원문까지 인용해 봤다. THINK 모토가 걸린 IBM 직원 사무실을 한번 상상해 보시라. 

THINK엔 왓슨의 경영방식과 철학이 집약돼 있다. '한 단어의 힘(Your One Word)' 저자이며 미국 창업자들의 멘토로 유명한 에번 카마이클(Evan Carmichael)의 말을 빌리면 '단순할수록 많이 담기는' 법이다. 

왓슨의 THINK는 훗날 다른 이에게 큰 공감을 줬다. 거함 IBM에 도전하던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의 사례다. 잡스가 그 THINK를 살짝 비틀어 'Think Different'라는 전혀 새로운 광고 카피를 내놓았다는 말도 있다.  

IBM 창업자 왓슨의 사망 1년 전인 1955년은 주목해 봐야 할 해이다.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이 처음으로 '500대 글로벌 기업' 리스트를 발표한 해이기 때문이다. 

IBM은 1955년 62위에, 왓슨이 사망한 1956년엔 59위를 기록했다. 포춘에 따르면 최초 리스트에 올랐던 기업 중에 지금까지 순위에 올라있는 기업은 13%에 불과하다. 

포춘이 리스트를 발표한 지 67년이 지났다. 현재 IBM은 어느 위치에 있을까. 2021년은 48위, 2022년은 49위에 랭크돼 있다. 순위로만 보면 IBM은 초창기의 위상을 유지하면서 상승세를 이어가는 몇 안 되는 기업이다. 

1956년 왓슨이 사망하자 세상은 그를 '세계 최고의 세일즈맨(The world’s greatest salesman)'으로 칭송했다. 왓슨의 IBM은 그의 아들 왓슨 주니어 시대에 '넘사벽(넘지 못할 벽)'으로 올라섰다. 그런 IBM은 2011년 창업 100주년을 맞았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위대한 기업의 한 요소로 '지속성(Longevity)'을 꼽는다. 그는 "지속적인 위대함이란 그 위대함이 100년 이상 유지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짐 콜린스의 경영전략: Beyond Entrepreneurship) 콜린스의 말대로 IBM은 이미 위대한 기업 대열에 합류했다. 

스위트 스폿(sweet spot)이라는 용어로 왓슨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 스위트 스폿은 원래 스포츠 용어로 야구를 예로 들면 공이 배트에 가장 정확하게 맞는 지점을 말한다. 이럴 경우 장타나 홈런으로 이어진다. 스위트 스폿은 기업 경영에도 널리 적용되고 있다. 비즈니스 코치들은 회사 성장을 위해 리더가 스위트 스폿을 잘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창업자 왓슨이 사고 친 직원을 해고해 버렸다면 그건 타자와 선행주자를 모두 죽이는 병살타나 다름 없다고. 하지만 왓슨은 회사의 큰 손실을 새로운 도약의 포인트(스위트 스폿)로 삼았다. 그의 눈엔 평소보다 스위트 스폿이 더 크게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 야구에서 경기 흐름을 바꾸는 적시타는 준비된 자에게만 터진다. 

여러분은 자신만의 스위트 스폿을 찾았는가. 찾았다면 방망이를 힘껏 그리고 과감히 휘둘러 보시라. 이재우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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