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본의 아니게 라이벌 관계에 놓이는 경영자들도 많다. 그러다 보면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되는' 일도 적지 않게 일어난다.
서영필 에이블씨앤씨 대표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그런 경우다.
두 사람은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손꼽히며 국내 화장품 로드숍업계에서 양대산맥을 구축해왔지만 최근 운명이 완전히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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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의 서영필과 네이처리퍼블릭의 정운호, 엇갈린 운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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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필 에이블씨엔씨 대표. |
정 대표는 2일 다시 구속됐다. 정 대표는 현재 서울 구치소에 수감 중이며 5일 형기만료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정운호 게이트로’ 불리는 법조비리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검찰이 정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발부받았다. 정 대표는 만기 출소 즉시 재수감될 처지에 놓였다.
정 대표는 지난해 8월부터 100억 원대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수사를 받기 시작했는데 검사장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까지 구속수감되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이 ‘오너 리스크’ 장기화로 몸살을 앓는 동안 경쟁업체들은 의도치 않게 반사이익을 누리게 됐다.
특히 ‘미샤’ 브랜드로 화장품 로드숍 업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에이블씨엔씨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에이블씨엔씨 주가는 2일 전일보다 3.74%(1350원) 오른 3만745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1년 전 주가가 1만 원대 중후반을 오갔던 것에 비하면 1년 사이 2배 넘게 올랐다.
반면 네이처리퍼블릭은 기업공개 기대를 한몸에 받아 장외시장에서 주가가 17만 원대까지 치솟았다가 1년 사이 5만 원대로 주저앉았다.
에이블씨엔씨는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지하철점포 입찰 경쟁에서 네이처리퍼블릭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화장품 로드숍은 매장수가 매출과 직결된다. 특히 상시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에서 로드숍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에이블시엔씨는 네이처리퍼블릭에 52곳의 점포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이는 에이블씨엔씨에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알짜점포 위주로 매장을 운영해 수익성을 끌어올린 덕분에 1분기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다. 에이블시엔씨는 1분기에 연결기준으로 매출 1017억 원, 영업이익 51억 원을 거뒀다.
에이블씨엔씨는 화장품 로드숍브랜드의 순위경쟁에서도 크게 약진했다. 미샤는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이니스프리(아모레퍼시픽), 더페이스샵(LG생활건강)에 이어 3위로 올라섰다. 잇츠스킨, 에뛰드하우스, 네이처리퍼블릭, 토니모리 등 4위권 경쟁업체들과 격차를 크게 벌렸다.
에이블씨엔씨는 라인 등 캐릭터를 활용한 신제품 출시와 국내외 매장 확대에 따라 2분기 실적 전망도 밝을 것으로 증권가는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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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의 서영필과 네이처리퍼블릭의 정운호, 엇갈린 운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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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
서영필 대표와 정운호 대표는 화장품업계에서 맨주먹으로 창업해 성공한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그 과정에서 각별한 인연을 맺은 사이이기도 하다.
화장품업계에 발을 먼저 내디딘 이는 서영필 대표였다. 정운호 대표는 중졸 출신의 학력으로 남대문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다 28살에 불과했던 2003년 더페이스샵을 창업했는데 당시 서영필 대표의 도움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운호 대표는 출발은 다소 늦었지만 더페이샵을 LG생활건강 등에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어 한때 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서영필 대표도 미샤 브랜드로 계속 승승장구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미샤는 2004년 브랜드숍 가운데 처음으로 매출액 1천억 원을 돌파했지만 그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화장품 공룡들의 로드숍 진출, 네이처리퍼블릭 등 후발주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으며 2015년 무렵부터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기도 했다.
하지만 체질개선과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올해 들어 재도약의 기대를 받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