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수합병(M&A)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가 한 말이다. 세계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 2위의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 세계 대부분의 PC에 깔려있는 OS(운영체제) 윈도우즈의 주인인 마이크로소프트가 메타버스 플랫폼의 주연으로 ‘게임’을 꼽은 셈이다.
▲ 사티아 나델라(Satya Narayana Nadella) 마이크로소프트 CEO(왼쪽)과 필 스펜서(Phil Spencer)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
마이크로소프트는 왜 게임을 메타버스의 가장 중심축으로 꼽은 것일까? 메타버스와 게임은 어떤 관계이며 두 산업의 관계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또 엔씨소프트, 컴투스, 위메이드 등 게임회사들은 메타버스 시대를 맞아 어떤 전략을 펼치게 될까?
◆ 2000년대 초반부터 존재했던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으로 비로소 생명력 얻다
메타버스는 가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스의 소설 ‘스노우크래시’에 등장하는 가상세계의 이름에서 유래한 단어다.
UC샌디애고를 졸업한 필립 로즈데일은 스노우크래시에 등장하는 가상세계를 실제로 구현해보고 싶었다. 그는 린든랩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가상세계의 개발을 시작했다. 결국 2003년 린든랩에서는 세계 최초의 메타버스 플랫폼, ‘세컨드라이프’를 세상에 내놨다.
세컨드라이프는 초기에 미국 정치권이 주목할 정도로 엄청난 열풍을 일으켰지만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인기가 시들해져갔다. 스노우크래시의 메타버스를 현실세계에 구현하려는 시도는 이렇게 실패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컨드라이프의 실패 이후 무려 10년 동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메타버스라는 단어는 2021년 초 다시 한번 세계를 뒤흔들었다. 오픈월드 샌드박스형 게임 ‘로블록스’의 개발사 로블록스가 미국 증시에 상장하자마자 54% 급등하며 세계 증권시장이 다시 메타버스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 세컨드라이프 로고.
이후 로블록스와 비슷한 장르의 게임 ‘마인크래프트’가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에픽게임즈의 총싸움(슈팅)게임 ‘포트나이트’ 역시 게임 내에서 건축이 가능하다는 점을 활용해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생명력을 잃어가던 메타버스가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라는 ‘게임’을 통해 다시 태어나게 된 셈이다. 국내에서도 펄어비스가 ‘도깨비’라는 신작 게임을 통해 메타버스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메타버스는 그 어원에서도 드러나듯이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 가상 세계를 뜻한다. 반드시 그 가상세계의 형태가 게임일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최초의 메타버스 플랫폼인 세컨드라이프는 게임보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런데 왜 메타버스는 다른 분야가 아닌 게임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된 것일까? 왜 게임을 기반으로 하는 메타버스 위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일까? 마이크로소프트가 메타버스를 외치면서 ‘게임’회사인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단초는 오웬 마호니 넥슨(구 넥슨재팬) 대표이사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 “재미없는 메타버스에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것”, 메타버스 성공의 필수요소는 재미
오웬 대표는 2021년 11월 블로그 플랫폼 ‘미디엄’에 “가상세계는 무엇이며 앞으로 누가 그것을 만들 것인가?”라는 제목의 긴 포스팅을 올렸다.
오웬 대표는 이 포스팅에서 현재 불고 있는 메타버스 열풍을 ‘가상의 광기(Virtual Insanity)라고 표현하며 메타버스라는 트렌드는 사용자경험(UX)와 관련된 가장 기본적 설명조차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해결책으로 ‘재미’를 제시했다. 그는 포스팅에서 “수많은 소비자들이 특정 엔터테인먼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실제로 재미있어야 한다”며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없다면 우리는 그 누구도 우리의 가상세계에 놀러오도록 설득할 수 없으며, 방문자가 없다면 사업성 또한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오웬 마호니 넥슨 대표이사.
메타버스는 현실을 일부분 대체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당연히 현실과 메타버스를 동시에 즐길 수는 없다. 잠시 현실을 내려놓고 가상세계를 찾아오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실 세계에서는 제공할 수 없는 매력이 필요하다.
이 매력은 편리함이 될 수도, 새로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메타버스 플랫폼은 아직까지 편리함 측면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한 사화관계망서비스(SNS)를 넘어설 수 없으며 새로움은 금방 사라지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하지만 가상 세계는 현실 세계와는 확실히 다른 재미와 경험을 소비자들에게 선사해 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결국 이런 재미와 경험을 다채롭게 제공해줄 수 있는 가상세계가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게임은 그 어떤 콘텐츠보다 재미와 경험에 특화돼있는 콘텐츠다.
비교적 현실 세계에 가깝게 가상 세계를 구현해 낸 네이버의 ‘제페토’보다 게임을 기반으로 한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등의 메타버스가 세계적으로 훨씬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 메타버스는 플랫폼, 플랫폼의 성공여부는 콘텐츠가 결정한다
메타버스 내부에서 사용자가 체험할 수 있는 재미와 경험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달리 말하면 결국 메타버스는 일종의 플랫폼이고,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콘텐츠라는 이야기다.
오웬 대표는 메타버스를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에 비유했다. 인쇄기는 인류가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널리 펼칠 수 있게 만들어줬지만, 인쇄기는 단순히 수단이었을 뿐 이 수단을 통해 인류의 방향을 바꾼 것은 작가들, 소프트웨어 제작자들이었다.
대한정보처리학회가 지난해 3월 발간한 학회지에 실린 ‘메타버스의 개념과 발전 방향’이라는 기고문은 메타버스의 특징을 5가지의 C로 정리하고 있다. 세계관(Canon), 창작자(Creator), 디지털통화(Currency), 일상의 연장(Continuity), 연결(Connectivity)이다.
이 가운데 세계관, 일상의 연장, 연결은 메타버스가 아닌 가상세계 전반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창작자로 대표되는 메타버스 내부의 콘텐츠, 그리고 그 콘텐츠를 활성화시키고 현실세계와 연결하는 지점까지 확장할 수 있는 디지털 통화가 메타버스의 핵심인 셈이다.
‘엑스박스의 구원자’로 불리는 필 스펜서 마이크로소프트 게이밍 CEO의 발언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 직후 CNBC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메타버스 시대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제 훌륭한 지식재산(IP)를 갖게 됐고, 그 메타버스는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 것”라고 말했다. 결국 메타버스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지는 IP, 즉 콘텐츠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 국내 게임사들의 메타버스 이합집산 시작될까, 컴투스 위메이드 주목
그렇다면 국내 게임회사들은 다가오는 메타버스 시대에 어떤 움직임을 보이게 될까? 게임업계에서는 게임사들이 메타버스 플랫폼을 놓고 이합집산이 시작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타버스를 테마파크에 비유한다면 각각의 게임들은 그 테마파크에 있는 놀이기구(어트랙션)에 비유할 수 있다.
처음에는 소수의 놀이기구를 운영하고 있는 수많은 테마파크들이 난립하겠지만 결국 매우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보유한 게임회사들끼리 서로서로 동맹을 맺어가며 결국에는 커다란 몇 개의 테마파크 안에 여러 놀이기구가 배치되는 형태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 미르의전설 4 홍보이미지.
블록체인과 메타버스가 결합될 수 있는 지점이 많다는 것을 살피면 현재 앞장서서 블록체인 사업을 펼치고 있는 컴투스, 위메이드 등의 게임회사들에게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컴투스는 현재 블록체인 플랫폼 C2X(가칭) 구축의 막바지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져있다. C2X는 컴투스 블록체인 플랫폼의 이름이자 그 플랫폼에서 사용될 가상화폐의 이름이기도 하다.
위메이드는 이미 글로벌 인기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온라인게임(MMORPG)인 미르의전설4를 블록체인 플랫폼인 위믹스 위에 올려놨고 위믹스 플랫폼에 다른 여러 가지 게임들을 추가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미 ‘테마파크’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어느 정도 끝낸 셈이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국지에서 군웅할거 시대에서 결국은 삼국시대로 넘어가듯이 게임회사들의 메타버스 사업도 그렇게 진행될 것”이라며 “각각의 게임사들이 우후죽순 메타버스 플랫폼을 내놓다가 결국 강세를 보이는 플랫폼을 위주로 블록을 형성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