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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
‘구십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텐데 또 왔냐고 전해라, 백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극락왕생할 좋은 날 좋은 시를 찾고 있다 전해라.’
‘백세시대’ 노랫가사의 일부다.
무명가수나 다름없던 가수 이애란씨는 국민가요가 된 이 노래 하나로 인생역전을 이뤘다. 100세 혹은 그 이상까지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보편적 소망이 공감대를 얻은 덕분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9일 롯데호텔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신 총괄회장의 올해 나이 94세, 롯데호텔을 창립한지 43년 만이다. 신 총괄회장은 25일 롯데제과 등기이사에서도 물러났다.
정확히 표현하면 스스로 맨주먹으로 세운 ‘롯데왕국’에서 ‘쫓겨났다.' 신격호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신 총괄회장의 퇴진은 굴지의 재벌그룹 창업자로서 뿐 아니라 ‘아버지’ 세대의 말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해서 씁쓸한 기분도 든다.
신 총괄회장은 재계에서 90세 이상 최고 주식부호다. 그의 주식평가액은 3천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뿐인가. 부동산투자의 귀재로 유명했던 신 총괄회장은 부동산 자산도 4천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총괄회장은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나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갔고 맨주먹으로 창업에 나서 한국과 일본에 ‘롯데왕국’을 건설했다.
부와 명예, 권력을 모두 손에 쥐었고 장수의 축복도 받은 듯 했다. 적어도 지난해 여름 전까지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지금도 축복인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너무 많이 소유해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내외를 막론하고 내로라하는 자산가들 가운데도 이런 불운한 말년을 겪은 이들은 숱하게 많다.
마카오 카지노 왕으로 불리는 스탠로 호 회장은 올해 94세다. 2011년 31억 달러나 되는 재산 대부분을 가족에게 넘겨주고도 지분 배분과정에서 진흙탕 싸움이 일었다. 부인을 4명이나 두고 그 사이에서 자식을 17명이나 뒀던 탓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신년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새해 불꽃놀이가 지속하는 것은 잠시뿐, 인생이 유한함을 성찰하라.”
신 총괄회장은 조만간 서울대병원에 2주 정도 입원해 정신건강 문제를 점검받는다고 한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차남 신동빈 회장의 ‘원톱’ 체제에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 총괄회장은 인생의 유한함을 성찰하는 데 실패한 듯하다. 그리고 그 실패에 대한 대가로 정신감정까지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백세시대를 꿈꾸는 이 시대에 자수성가로 성공한 아버지의 표상치고는 참 안타까운 모습이다.
'백세시대' 노랫말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메멘토모리(Memento Mori,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를 가슴 한켠에 새겨야 할 때인 듯 싶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