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하고 있는 드릴십(심해용 원유시추선) 2척을 재고로 떠안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에 드릴십을 발주한 시추회사가 기업회생절차를 앞두고 있어 드릴십 건조계약이 취소될 수도 있다.
드릴십의 재매각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서 건조계약이 취소되면 대우조선해양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3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미국 시추회사 발라리스(Valaris)가 최근 텍사스 파산법원에 ‘챕터11(Chapter11)’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챕터11 파산보호는 한국으로 따지면 기업회생절차다. 이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발라리스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 가운데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상당수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
대우조선해양은 발라리스의 파산보호절차를 주시하고 있다.
이 회사는 영국 엔스코(Ensco)와 미국 로완(Rowan)의 합병으로 설립됐는데 대우조선해양이 과거 엔스코에서 수주한 드릴십 2기를 건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발라리스의 드릴십 2기는 이미 건조금액의 75%를 받은 상태”라며 “계약이 취소된다고 해도 대우조선해양에 귀책사유가 없는 만큼 선수금을 몰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며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업계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이 선수금을 몰취하는 것은 당연하고 빠르게 재매각할 곳까지 찾아야 피해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현재 시추시장의 업황을 고려하면 드릴십의 재매각은 매우 어렵다”고 바라봤다.
드릴십의 시추비용은 대체로 국제유가가 60달러 이상일 때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현재 국제유가는 40달러선의 저유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 전에도 국제유가가 50달러 초중반을 오가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심해 시추시장이 활성화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드릴십 가동률의 추이도 긍정적이지 않다.
드릴십 가동률이 최소한 80%는 넘어야 재고 드릴십을 인수하려는 회사가 나타날 수 있다고 조선업계는 바라본다. 그러나 시추시장 분석기관 인필드(Infield)에 따르면 3일 기준으로 글로벌 드릴십 가동률은 68%다.
심지어 드릴십 가동률이 80%를 넘었던 것은 2017년이 마지막일 정도로 먼 과거다. 발라리스의 발주계약이 취소된다면 대우조선해양은 재고 드릴십 2기를 장기간 떠안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드릴십 '소난골 리봉고스'. <대우조선해양> |
한국 조선사들에게 재고 드릴십은 악몽이나 다름없다.
대우조선해양은 2015년 앙골라 석유회사 소난골이 드릴십 2기를 인도받기를 거부해 건조계약의 잔금을 받지 못한 과거가 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2016년 상환만기가 닥친 단기차입금 4천억 원을 갚을 현금이 없어 채권단에 손을 벌려야 했다. 소난골의 재고 드릴십은 2019년 6월에야 모두 인도됐다.
재고 드릴십의 장부가치 변화에 따른 실적 악화도 문제다.
삼성중공업은 재고 드릴십 5기를 떠안고 있는데 앞서 2분기 초저유가 국면에 글로벌 시추시장이 침체하자 재고 드릴십의 장부가액을 20% 낮추고 이를 실적에 반영했다.
삼성중공업은 2분기 영업손실 7077억 원을 봤는데 이 가운데 드릴십 관련 손실만 4540억 원이었다.
대우조선해양에 같은 사태가 닥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드릴십이 재고자산으로 전환된다면 재매각이 쉽지 않을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다”며 “발라리스가 파산보호절차를 밟더라도 드릴십 건조계약을 유지하는 것을 최선의 길로 설정하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