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SK이노베이션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에 설립한 합작법인이 이달 초 현지에 연간 생산능력 22GWh 규모의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22GWh는 연간 전기차 73만 대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왼쪽)과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
이 관계자는 합작 대상회사와 법인명, 구체적 장소는 계약상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달 착공한 공장은 SK이노베이션이 중국에 짓는 두 번째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공장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18년부터 중국 장쑤성 창저우시에 배터리 셀공장을 짓고 있다.
이 공장의 운영주체도 SK이노베이션이 중국베이징자동차, 베이징전공과 함께 만든 합작법인 ‘BESK 테크놀로지’다.
LG화학은 중국 난징에 배터리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중국 완성차업체인 지리자동차와 합작법인을 설립했다고 13일 밝혔다. LG화학은 2022년 생산을 목표로 10GWh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을 건설한다.
LG화학이 폴크스바겐, 볼보, 포드 등에 배터리를 납품해왔지만 완성차업체와 합작법인 형태로 배터리 생산공장을 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LG화학은 최근 SK이노베이션과 전기차용 배터리 핵심기술 유출을 둘러싸고 소송을 제기할 정도로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기술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이에 비춰 중국 현지 완성차업체와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 합작법인 설립은 큰 변화로 볼 수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보호하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전략은 절대 추진하지 않는다”며 “지리사와의 합작법인 설립도 핵심기술 보호를 위한 제반 조치들을 충분히 마련해 진행했다”고 자신했다.
핵심기술 유출의 위험이 있음에도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이 합작법인을 세운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전기차시장인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는 중국 전기차 판매량은 2020년 150만 대에서 2023년 350만 대, 2025년 580만 대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보조금 정책을 통해 외국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은 채 중국 배터리회사를 키워왔다. 두 회사가 합작법인을 세운 것은 중국 정부가 쳐 놓은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기 위해서인 것으로 풀이된다.
LG화학 관계자는 “이번 합작법인 설립으로 세계 전기차시장의 50%를 차지하는 중국시장을 공략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2020년 보조금 지급정책의 폐지가 예고되어 있음에도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이 합작법인을 추진에 속도를 내는 것은 중국 정부의 정책이 언제든 바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중국 기업 보호에 나서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 관련해서도 정책 폐지를 재고하거나 다른 형태로 중국 기업 보호정책을 펼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중국시장에 투자해왔던 한국 기업들이 사드보복 이후 불확실성의 리스크를 짊어진 만큼 중국 전기차 배터리시장도 비슷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적게는 5천억 원에서 많게는 1조 원 이상을 투자하는 국내 업체들에게는 부담일 수 밖에 없다.
또 이미 중국시장을 선점한 중국 배터리업체들이 많아 후발주자로 고객사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두 회사가 합작법인 설립을 선택한 이유로 꼽힌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그런 위험이 있기에 (중국시장에서) 리스크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로 합작법인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중국 현지법인이 생산한 배터리로 출시되면 중국 정부의 차별정책을 피할 수 있다는 뜻이다.
LG화학이 중국 완성차업체와 처음 합작법인을 설립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LG화학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정책 관련해서는 기업이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을 아꼈다.
중국 정부가 2017년부터 한국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보조금에서 제외하면서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은 중국 전기차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심지어 현대자동차도 중국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 주어지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 중국 기업인 CATL의 배터리를 탑재하기로 결정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석현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