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회사가 미국 법원과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증거자료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배터리 관련 기술이 해외로 새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왼쪽)과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
22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과 관련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의 조사 개시 여부가 이르면 23일 이전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무역위원회가 사건을 접수해 조사를 시작하면 두 회사는 미국법이 정한 ‘증거 개시 절차’에 따라 상대방이 요구하는 증거자료를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소송 과정에서 국가 핵심기술인 배터리 생산 기술이 유출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250WH/Kg 용량 이상의 전기차용 배터리 기술은 2018년부터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됐다. 국가 핵심기술은 해외유출시 국내 관련 산업에 타격이 큰 기술로 이를 해외에 제공하기 위해서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이 미국 법원에 제출할 배터리 관련 기술이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된다면 공식적으로 산업자원부에 신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LG화학이 유출됐다고 주장하는 기술이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 유관기관이 대책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져 소송에서 쟁점이 될 배터리 기술이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됐을 가능성이 높다.
산업자원부와 특허청 등은 최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과 관련해 회의를 열고 국가 핵심기술의 유출 가능성 여부를 두고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도 이런 절차를 이미 주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LG화학이 미국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관련 기술내용을 일절 언급하지 않은 점도 이번 소송에서 다뤄질 기술이 국가 핵심기술일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담긴 내용은 배터리 관련 핵심기술이나 세부적 내용 보다는 LG화학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직원들이 주고 받은 메시지 등 기밀 유출 의심행위와 전기차 배터리 시장 상황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사내용 등이 주를 이룬다.
전기차 배터리 기밀 유출과 관련있는 세부적 기술자료는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양쪽의 요청에 따라 비공개로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과정에서 두 회사가 정부 차원의 제재를 받아 증거자료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면 재판이 지연될 가능성도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소송은 미국 법원과 국제무역위원회도 영향력 확대 차원에서 관심을 보일 수 있다”며 “국익 차원에서도 두 회사의 원만한 합의를 바라지만 양쪽 모두 갈등이 깊어 냉각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LG화학 관계자는 "증거개시절차과정에서 영업비밀 관련 자료의 경우 법원의 강력한 비밀보호 명령을 통해 상대 당사자나 제 3자에게 열람, 공개가 금지되며 비밀보호명령을 어길 경우 위반 내용에 따라 중범죄에 해당하는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며 "한국 기업을 포함한 세계 기업들이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영업기밀을 침해했다며 미국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소송을 냈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팩이나 셀 등의 제품을 수입금지 해달라고 요청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석현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