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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정부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기재부) 장관이 언급했던 규제완화 정책 ‘그레이존 해소 제도’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 정책이 정식 시행되면 기업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전 규제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아베노믹스’의 일부로 시행돼 재계의 호평을 들은 정책을 벤치마킹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목적이다.
‘그레이존’은 기업이 추진하는 신규 사업과 관련된 규정이 기존 제도에 없어 규제를 알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시도할 때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7일 “현 부총리의 지시에 따라 일본에서 시행중인 그레이존 해소 제도의 장단점을 연구해 우리 실정에 맞게 재설계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 투자단계에서 규제 적용이 불투명한 부분 때문에 기업들이 애로를 겪고 있다”며 “정부가 이를 사전에 확인해 불확실성을 없앨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 부총리는 이와 관련해 “기업이 (신규사업을 추진하다가) 나중에 규제로 인해 투자가 막히거나 세제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며 “투자 전에 이를 명확히 해주면 기업이 투자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때부터 그레이존 해소 제도 시행을 검토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레이존 해소 제도를 먼저 시행한 사람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다. 아베 총리는 올해 1월 ‘아베노믹스’ 중 하나로 그레이존 해소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 기업은 신규사업을 추진하기 전 어떤 규제가 적용되는지 1개월 안에 확인할 수 있다. 시행 일주일 만에 6건이 신청되는 등 일본 재계의 호평을 받고 있다.
첫 시행 대상은 자동차 생산 업체인 닛산자동차에서 나왔다. 닛산자동차는 운전자가 심장마비 등으로 긴급사태에 빠졌을 때 컴퓨터 제어로 자동차를 멈추는 자동정지장치 개발 연구를 계획했다. 그러나 이 장치가 일본의 차량검사를 통과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때 닛산자동차가 그레이존 해소 제도를 신청하자 일본정부는 논의 끝에 상품개발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차량검사 기준에 부합하며 검사대상이므로 상품으로 내놓아도 된다는 이유였다. 결국 이 일은 그레이존 해소 제도의 첫 번째 합법사례로 남았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그레이존 해소 제도와 유사한 ‘질의회신’을 통해 기업의 신규사업 관련 규제 문의를 처리했다. 정부 각 부처와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민원을 통해 기업이 신규사업에 투자할 때 관련 규제와 혜택을 사전에 점검하는 제도다. 현재 권익위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민원은 단순 질의나 상담, 기타 고충 관련은 7일, 법령 질의는 14일 안에 답변을 주도록 규정되어 있다.
재계는 그동안 질의회신 제도가 지나치게 느리다는 이유로 불만을 표출했다. 정부가 법령을 지나치게 획일적 기준으로 적용하는 데다 개별 공무원도 소극적으로 재량권만 행사해 규제 때문에 생긴 개별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지 못한다는 이유다.
현 부총리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레이존 해소 제도 도입을 지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에 관해 “(질의회신 제도를) 더욱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나아가 규제 자체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재단법인 한일산업기술재단은 “한국정부도 (일본의 그레이존 해소 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나아가 “창업을 촉진하고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동시장이나 의료제도 분야에서 대폭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