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장관 임명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진선미는 2018년 9월21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여성가족부 장관 임명장을 받고 별도의 취임식 없이 업무를 시작했다.
폭력에서 안전한 여성의 삶, 성차별 없는 일터,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 조성 등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서 중점적으로 추진할 목표로 제시했다.
진선미는 2018년 9월27일 배포한 취임 인사에서 민간부문에서 여성 고위 관리직을 늘리기 위해 고위 관리직 여성 비율 목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한일 위안부 합의의 산물인 '화해와 치유재단' 처리 문제를 철저히 피해자 관점에서 하루 빨리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도 나타냈다.
전임 정현백 장관은 같은 날 이임식에서 “성평등을 통한 민주주의 완성이라는 미래 사회를 향해 뚜벅뚜벅 앞으로 전진해달라”고 당부했다.
인사청문회에서 동성애 옹호 이력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직무 관련성 있는 주식을 보유했다는 의혹 등으로 야당의 공세를 받았지만 2018년 9월20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됐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2018년 9월20일 진선미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하면서 “진선미 후보자가 인권 변호사로 호주제 폐지, 소라넷 사이트 폐쇄, 불법 촬영 범죄 근절방안 제시 등 성폭력 범죄 근절에 앞장서 활동해온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여성가족부 소관 업무 및 현안 등에 관해 전반적으로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적격의견을 밝혔다.
진선미는 인사청문회에서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여성의 삶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할 것”이라며 “여성가족부의 기능을 여성 폭력에 대응하는 범정부 컨트롤타워로 강화하고 미투와 관련된 법률의 제·개정이 빨리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8월30일 진선미를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지명하면서 “특히 오랫동안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가꾼 공감능력과 온화한 성품, 탁월한 소통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책현안도 차질 없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진 후보자가 성폭력과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사회적 변화를 이끌면서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을 높여 실질적 양성 평등사회를 실현할 적임자”라며 “법조인 시절부터 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런 노력이 국회 의정활동으로도 이어져 제19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을 지내며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등 여성가족 문제 전반을 놓고 식견과 실천할 힘을 갖췄다”고 말했다.
| ▲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오른쪽에서 첫 번째)이 9월21일 문재인 대통령(왼쪽에서 세 번째)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부터), 정경두 국방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함께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
△20대 국회 의정활동
20대 국회 전반기까지 모두 6년 동안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으로 일하며 국민 안전과 여성, 장애인 인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진선미는 19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 특별법'을 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다시 발의했다.
여성 문제에 관해서는 2016년 9월 성폭력 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법안은 헤어진 애인을 상대로 한 보복성 불법 동영상(리벤지 포르노)을 성폭력으로 처벌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2018년 5월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여당 원내 수석부대표에 임명돼 야당 협상에 앞장섰다.
2018년 6월 여성들의 혜화역 집회와 관련해 “정부가 여성들의 외침을 조금 더 귀담아듣고 성범죄를 근절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회 운영위원회 간사로 활동했고 헌법재판관 추천을 위한 태스크포스 위원장도 맡았다.
△서울 강동구갑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
서울 강동구갑 지역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강동구갑에서 20년 만의 야당 승리와 첫 여성 국회의원 탄생을 이뤄냈다.
진선미는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강동구갑 지역구에 출마해 43.8%의 표를 얻어 신동우 새누리당 후보에 2.5%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진선미는 강동구갑 지역에서 3선을 지낸 이부영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지지를 받아 강동구갑 후보로 나섰다.
국회 상임위원회 활동 등 의정활동에서 보여준 성실성과 친근한 이미지를 내세워 골목 곳곳을 찾아 지역 발전 공약을 담은 메시지를 1분 안팎으로 짧게 전하는 ‘1분 유세’와 자전거 동호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하는 ‘자전거 유세단’ 등 색다른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펼쳤다.
공약으로는 지하철 5·8·9호선 연장사업 조기 착공과 완공, 고덕 상업업무 복합단지 조성, 도시정비사업을 통한 아동과 여성 대상 폭력 근절 등을 내세웠다.
진선미는 당선 소감에서 “대한민국의 변화를 원하는 여러분 모두의 승리”라며 “강남보다 강동, 진짜 선진적 미래 도시 강동을 만들기 위해 제 모든 것을 바칠 것이고 희망을 지닐 수 있는 대한민국, 열심히만 일하면 누구나 맘 편히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진짜 제대로 하겠다”고 밝혔다.
당선 뒤 한 인터뷰에서 “강동구갑 역사상 여성이 처음이고, 이 지역에서 20년 만에 야당이 이기는 것이라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만큼 굵직한 인물이 돼 정권 교체에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 ▲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이 2017년 2월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19대 대선 아동·청소년 정책을 직접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참여
테러방지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민주당 18번째 주자로 참여했다.
진선미는 2016년 2월27일 오후 4시20분부터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 방지법(국민 보호와 공공 안전을 위한 테러 방지법)에 관한 필리버스터 토론자로 나서 다음 날 오전 1시37분까지 모두 9시간16분 동안 발언했다.
그는 “2012년 대선 때 국정원장이 종북 여부도 판단하고 좌파 여부도 판단했다”며 “테러 방지법이 통과되면 테러 위험인물인지 여부도 국정원장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게 돼 국정원장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의견이 여론으로 형성되거나 형성될 가능성이 있을 때 테러 방지라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선미는 필리버스터에 들어가기 전 공식 블로그를 통해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음을 천명하고 있다”며 “현재 진선미와 더불어민주당이 온 몸을 다해 막고 있는 테러 방지법은 ‘필요한 경우’에 한한 것이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며 본질적 내용까지 침해하는 위헌적 법안”이라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 특별법 대표발의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들에 보상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 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진선미는 2014년 7월15일 19대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 특별법을 발의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피해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실질적 보상을 통해 이들의 생활 안정과 인권 신장을 도모하기 위해 법을 제정했다”고 말했다.
이 법안은 피해자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를 두고 1년 안에 피해자와 가족 등으로부터 진상 규명에 참여하는 신청을 받도록 했으며 피해자와 유족에게 보상금과 의료 지원금, 생활 지원금, 주거 복지시설 등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따라 조사를 진행해도 되는데 형제복지원 사건만 따로 특별법을 만들면 다른 사건도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19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가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됐다.
진선미는 20대 국회가 시작되지마자 1호 법안으로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 특별법을 다시 내놓았다. 19대 국회 54명보다 19명 늘어난 73명의 국회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진선미는 2017년 6월 국회뉴스ON과 인터뷰에서 “당시 언론에서 크게 다뤄주고 해서 이제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5년이 훌쩍 지났다”며 “그동안 너무 희망 고문을 했는데 하루빨리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국가가 부랑인을 관리한다는 목적으로 민간인 약 3천여 명을 강제로 수용해 감금하고 노역을 시킨 사건이다.
구타와 성폭행 등 인권유린도 심각했으며 당시 수용된 3천여 명 가운데 513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정부는 내무부 훈령 410호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 처리지침을 마련하고 사회 부적응자와 부랑인 등을 대상으로 대대적 사회 정화작업을 실시했다.
부산시와 형제복지원은 이 때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맺고 부랑인과 시민들을 수용해 국고 보조금 등의 지원을 받았다.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 폭로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의혹 문건을 국회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등 국정원 개혁 문제에도 앞장섰다.
진선미는 2013년 3월1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적으로 국내정치에 개입하고 여론조작에 나섰다며 관련 내부 자료를 공개했다.
진선미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정원은 확대부서장 회의 때 원세훈 당시 국가정보원장의 ‘핵심적 지시 강조’ 사항을 국정원 내부 전자게시판에 올리는 방법으로 최소 25차례 불법적 지시를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원 국정원장의 지시사항에는 여론조작, 주요 국내 정치 현안에 적극 개입, 정권 전위부대·MB정부 국정 운영 홍보, 4대강사업 실질적 지휘 등이 포함돼 있다.
진선미는 “이번 폭로 자료에서 4대강사업 관련 지시가 무려 아홉 차례나 등장했다”며 “국정원이 이명박 정권의 전위부대 역할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업무 특수성을 위해 비밀을 보장했는데 국정원은 그 비밀을 악용했다”며 “이것은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닌 민주주의 전체가 흔들리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 ▲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강동구갑 후보(오른쪽)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2016년 4월3일 서울 강동구 암사종합시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18·19대 대선 문재인 캠프 대변인
2012년 6월 18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선거대책본부 대변인으로 활약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진선미는 문 후보의 수행대변인으로 7개월 동안 함께 했다. 문 후보를 수행하면서 불가피한 술자리에서 문 후보의 술잔을 대신 비우기도 했다고 한다.
2017년 19대 대선 때 다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 캠프 유세본부에서 공동 수석부본부장을 맡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당 적폐청산위원회 간사를 맡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댓글 사건, 방송 장악 등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적극 참여하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남긴 ‘적폐청산’에 앞장서기도 했다.
진선미는 대표적 친문재인계 인사로 알려져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 만든 '더미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더미래'는 2014년 2월 진보, 재선 의원 22명이 모여 만든 모임이다.
△19대 국회 의정 활동
2012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정치에 발을 들인 뒤 행정안전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여성 안전 관련 법안을 여럿 발의했다.
진선미는 혈연이나 혼인 관계가 아닌 동거가족 구성원이 기존 가족관계와 동등한 법적 보호를 받게 하는 생활 동반자 등록법, 국가정보원 수사권 폐지와 국회 통제 강화를 위한 개혁 법안,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 특별법, 경찰의 물대포, 차벽 사용 제한 법안 등을 대표발의했다.
2015년 음란물 유통 사이트인 ‘소라넷’ 서버 폐쇄에도 힘썼다. 몰래카메라 근절을 위한 '몰카 판매 규제법(위장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을 대표발의하며 불법 촬영 근절에도 앞장섰다.
19대 국회 민주통합당 법률담당 원내부대표로 일하기도 했다.
△인권변호사 시절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이석태 변호사(현 헌법재판관), 김형태 변호사 등과 함께 법무법인 ‘덕수’에서 변호사로 첫 발을 뗐다. 이후 법률사무소 '이안'의 공동대표로 일했다.
진선미는 변호사 시절 호주제 폐지 위헌 소송, 구리·남양주 철거민 소송, 트렌스젠더 하리수씨의 성명권 분쟁, 탤런트 고 최진실씨의 친권 소송 등 주로 인권분야에 집중했다.
특히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 큰 역할을 했다.
진선미는 변호사 활동을 막 시작한 1999년부터 2008년 호주제의 근거법률이던 호적법이 폐지되기까지 10년 동안 호주제 위헌소송인단에 참여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등과 함께 호주제 폐지 운동을 주도했다.
2000년 호주제 위헌 소송을 냈고 2005년 3월2일 호주제 폐지를 뼈대로 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 기여했다.
호주제 폐지는 1950년대부터 여성 운동의 큰 과제였으며 우리나라 여성 운동의 가장 큰 사건으로 꼽힌다.
호주제는 개인의 의사와 자율적 선택권을 무시한 채 혼인과 자녀에 관한 신분 관계를 일방적으로 형성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엄에 반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해 헌법상의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에서 폐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