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공연 예술단·태권도 시범단 이끌고 방북
도종환은 120명에 이르는 예술단과 태권도 시범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해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
도종환이 이끄는 방북단 본진은 2018년 3월31일 서해 직항로로 평양을 향했다.
공연의 공식 이름은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으로 정해졌으며 남북 관계의 역사적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의미에서 '봄이 온다'는 부제가 달렸다.
도종환은 4월1일 김정은 국방위원장 부부와 함께 방북단 공연을 관람했다.
예술단 단장을 맡은 도종환은 "김 위원장이 남측 공연 중 노래와 가사에 대해 물어보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도종환은 4월3일 통일전선부 초대소인 미산각에서 열린 만찬 모두발언에서 "4월27일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그 평화의 첫 문을 남과 북의 문화예술인과 체육인이 열기 시작한 것"이라며 "이번에 13년 만에 와서 공연을 했다. 다시는 십여 년에 한 번씩 만나는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도종환은 "이 봄꽃이 4월 하순에는 정상회담을 통해 삼천리강산에 가득하게 하고 이 꽃나무들을 잘 가꾸고 결실을 맺게 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안한 대로 가을에는 '가을이 왔다'는 공연을 서울에서 할 수 있도록 하자"고 덧붙였다.
| ▲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18년 2월9일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다. |
△평창올림픽 성공적 개최
도종환은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힘을 보탰다.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은 흥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북한 공동 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입장권 판매 수익이 1500억 원을 넘겨 재정면에서도 흑자를 냈다. 평창올림픽으로 모두 107만9천 매의 입장권이 판매됐고 모두 141만 여명의 세계인이 평창 일원을 찾았다. 평창패럴림픽 또한 모두 34만6천 매의 입장권이 판매됐고 모두 74만 여명이 경기장을 방문했다.
도종환은 "평창올림픽과 평창패럴림픽은 선수, 대회 운영인력과 자원봉사자 등 모두의 열정과 헌신, 국민적 성원 덕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와 박근혜 게이트
도종환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만든 ‘블랙리스트’ 의혹을 폭로했다. 이 때문에 2017년 5월 서울환경영화제로부터 ‘블랙리스트 어워드’를 받았다.
2015년 9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블랙리스트 문제를 처음으로 공식 제기했다. 당시 도종환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연극 ‘개구리’의 연출가를 지원 대상에서 빼기 위해 심의위원들을 압박했다”고 폭로했다.
2016년 10월 들어 박근혜 게이트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파악되면서 문화체육관광부의 블랙리스트 의혹도 도마에 올랐다. 도종환은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적시된 문화예술위원회의 문건을 공개하는 등 블랙리스트 의혹 검증에 앞장섰다. 2017년 1월 열린 '국정농단 청문회'에서도 블랙리스트 문제를 집중 추궁한 끝에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구속을 이끌어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가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원했다는 의혹도 파헤쳐 성과를 냈다.
도종환은 2016년 9월 유럽 신문들을 뒤진 끝에 삼성전자가 정유라씨의 해외승마 연수를 지원한 사실을 찾아내 발표했다.
2016년 12월에는 삼성전자가 최씨 소유 독일 현지법인인 비덱스포츠의 전신 코레스포츠와 2015년 8월26일 200억 원대 지원을 약속하는 내용을 담은 컨설팅 계약서를 확보해 공개했다. 삼성전자가 밝혔던 승마활동 지원금 80억 원 외에 더 많은 지원을 약속했다는 의혹을 확인한 것이다.
△국정교과서 폐지 이끌어
도종환은 2012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때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자 당내의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반대에 앞장섰다.
당시 도종환은 국정 역사교과서를 두고 “평균 검정교과서는 375쪽 분량인데 국정 역사교과서는 286쪽 분량으로 현대사 부분이 이전보다 0.4% 줄었다”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교육부는 2017년 5월31일 마침내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발행체제를 국정과 검정 혼용에서 검정체제로 전환한다는 내용으로 고시를 개정했다”고 밝혔다.
| ▲ 도종환이 2017년 5월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
△노무현 지지, 정계 입문의 시작점 되다
도종환은 시인 시절부터 대표적 ‘친노무현’계 문인으로 꼽혔다. 이것이 정계 입문의 시발점이 됐고 이때 문재인 대통령과 친분을 쌓게 됐다.
도종환은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자 ‘노사모’에 이름을 올렸다. 2003년 1월에는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축하하는 의미로 ‘대한민국이여, 우리는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는 축시를 발표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제관을 맡아 노제와 추모행사의 사회를 진행했다. 이때 연단에 올라 “노무현을 사랑한다”고 외치기도 했다. 그 뒤 노무현재단 이사도 역임했다.
2011년 말 민주통합당 전당대회 당시 다른 친노계 문화인사들과 더불어 ‘한명숙 멘토단’으로 활동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의 외부위원을 맡으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6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때 사무실에 ‘근조’ 리본이 달린 화분이 들어왔는데 도종환은 한 인터뷰에서 이 화분을 키우면서 '시인 도종환은 죽었고 새로운 도종환이 되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의원이 된 뒤에도 친노무현계 인사로 분류됐다. 2017년 5월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8주년 추도식에서도 헌시 ‘운명’을 직접 낭송했다.
이 때의 인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부상하자 ‘친문재인’계로도 꼽혔다. 문 대통령은 2011년 내놓은 자서전 ‘운명’ 서문에 도종환의 시 ‘멀리 가는 물’을 인용했다.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경선캠프 이름인 ‘담쟁이’도 도종환의 작품 제목과 같다.
△교육운동가 도종환
도종환은 중학교 국어교사 출신으로 교육운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77년 청주에서 교편을 잡은 뒤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84년 동인모임 ‘분단시대’를 결성해 군부독재 탄압에 맞서는 동인지를 펴내는 일도 주도했다. 이 동인지 ‘분단시대’에 실린 시들이 도종환의 사실상 첫 작품으로 꼽힌다.
1989년 전교조 충북지부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으로 나섰다는 이유로 투옥되면서 교사에서 해직됐다. 그 뒤 전교조 청주지부장과 충북문화운동연합의장 등을 맡아 재야에서 활동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해인 1998년 9월 전교조가 합법화되자 덕산중학교에 복직해 2004년 3월까지 일하고 그만뒀다. 사임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로 알려졌다.
△시인 도종환
도종환은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시인이다. 접시꽃 당신은 암으로 투병하다가 별세한 첫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시로서 평범한 중학교 국어교사였던 도종환을 일약 국민 시인으로 만들었다.
1986년 펴낸 같은 이름의 시집에도 실렸다. 이 시집은 1996년 누적집계를 기준으로 100만 부 이상 팔렸고 그 뒤에도 매년 5천 부 이상 판매되고 있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 마을에서’를 비롯한 시 5편을 실었다. 1985년 문학잡지 ‘실천문학’에 ‘마늘밭에서’를 실으면서 등단했다.
그 뒤 ‘울타리 꽃’(1991년), ‘당신은 누구십니까’(1993년), ‘다시 피는 꽃’(2001년),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더 있으랴’(2014년) 등을 내놓았다. 그가 참여한 서적만 98종에 이른다.
도종환은 시인으로서 민족예술상, 거창평화인권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부문 등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