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포장재 생산라인의 대규모 증설
김재철은 동원그룹 매출 비중 3위를 차지하는 동원시스템즈의 베트남 공장에 대규모 설비 투자를 통해 아시아 전역에서 포장재 사업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2017년 9월 1천만 달러를 투자해 베트남 하노이 인근에 있는 박닌 공장 증설에 나서 6개월 동안의 공사 끝에 2018년 3월 완공했다. 박닌 공장에서는 다양한 포장재와 페트 제품이 생산돼 글로벌 기업 200여 곳에 공급된다.
동원시스템즈는 베트남 남부 호치민에 위치한 사업장에 이어 북부에도 대규모 공장을 운영함으로써 포장재사업 확대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호치민 동원시스템즈 사업장은 연매출 1천억 원을 내고 있다.
△ 종합식품회사로 변신 박차
김재철은 그동안 공격적으로 인수한 기업들과 기존 사업의 시너지를 내기 위한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동원그룹은 참치 중심의 수산전문기업에서 종합식품회사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동원그룹은 2017년 5월 식품 계열사 동원홈푸드의 가정간편식(HMR)부문 브랜드인 ‘더반찬’의 제품을 생산하는 대규모 조리공장을 서울에 세웠다.
공장 설립을 통해 동원홈푸드의 가정간편식부문 매출을 연간 1천억 원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2021년까지 더반찬의 오프라인 매장 300곳도 열기로 했다.
김재철은 2016년 7월 동원홈푸드를 통해 더반찬을 인수합병하는 작업을 이끌었다. 더반찬은 온라인으로 주문받은 반찬 등을 배달하는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동원그룹이 더반찬을 인수해 건강식 위주인 기존의 가정간편식 브랜드몰 ‘차림’과 합병한 결과 더반찬부문은 1분기에 흑자를 냈다. 차림부문의 매출도 이전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동원그룹은 2017년 3월 축산농업회사 두산생물자원도 인수했는데 가축사료 생산 계열사인 동원팜스와 시너지 창출을 추진해 사료사업의 규모를 2배 이상 키운다는 계획도 세웠다.
동원팜스의 모기업인 동원F&B는 매출의 3~4%만 가축사료사업에서 내 왔는데 두산생물자원의 인수를 기점으로 참치가공사업에 쏠린 수익원을 다각화하겠다는 것이다.
△공격적 인수합병으로 외형 성장 이끌어
김재철은 활발한 인수합병으로 동원그룹의 외형 성장을 이끌고 있다.
동원그룹은 2016년 동부익스프레스를 인수하면서 그룹의 사업군을 수산과 식품, 포장재, 물류 등 ‘4대 사업군’체제로 만들었다. 동부익스프레스는 국내 3위 종합물류기업이다.
동원그룹은 이전까지는 식품과 수산 유통, 포장재 등 3대 사업을 해왔다.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를 중심으로 식품사업은 동원F&B가, 수산과 유통사업은 동원산업이, 포장재사업은 동원시스템즈가 각각 책임지는 구조다.
동원그룹은 2014년에는 국내 최대 포장업체 테크팩솔루션을 2500억 원에 인수했다. 테크팩솔루션은 국내 최초로 유리병사업에 진출했던 기업으로 유리병, 캔, 페트병 등 식음료 제품에 필요한 포장용기를 생산한다. 동원그룹은 기존 사업부문과 시너지를 통해 포장사업 강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해 인수를 진행했다.
2011년에는 세네갈 다카르에 위치한 아프리카 최대 수산캔업체인 SNCDS를 2100만 달러에 인수했다. 동원그룹은 SNCDS를 통해 아프리카와 유럽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인수합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에는 미국 최대 참치캔 회사인 스타키스트를 3억63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스타키스트는 2007년 당시 매출 5억5700만 달러, 미국 참치시장 점유율 37%의 미국 최고의 참치 브랜드로서 미국 델몬트의 수산사업부문을 담당하고 있었다.
동원그룹은 참치 이외에도 미국과 중남미시장에 연어, 참치회 등 다른 해산물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갈 계획으로 인수를 진행했다. 스타키스트 인수를 통해 동원그룹은 참치 어획량과 참치 가공부문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섰다.
| ▲ 동원그룹은 2011년 11월18일 아프리카 세네갈의 수산업체 SNCDS와 투자체결식을 가졌다. |
△계열 분리를 통한 전문성 강화
김재철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업영역별 전문화를 목표로 계열 분리를 단행했다.
동원산업은 해양사업부를 통해 수산업을 전담하게 됐고 창원 공장과 광주 공장 등을 포함함 식품 관련 사업부는 동원F&B로 분리됐다. 동원F&B는 동원산업과 동원식품에서 다루던 수산물, 농산물, 축산물가공제품의 전반적 생산과 생수, 음료 등 식품과 관련한 모든 부분을 전담하게 됐다. 이로써 전문성을 강화해 변화하는 식품사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했다.
2001년에는 식품 관련 계열사 주식을 현물로 출자해 자본금 470억 원 규모인 지주회사 동원엔터프라이즈를 설립했다. 동원엔터프라이즈는 동원F&B, 동원정밀과 동원식품의 주식을 보유해 식품 관련 사업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이 무렵 동원그룹은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를 양대 축으로 재편성됐다.
김재철은 2003년에 접어들면서 식품과 금융부분을 분리하는 그룹 재편 작업을 본격화했다. 동원엔터프라이즈는 그룹의 수산부문 계열사인 동원산업을 자회사로 편입해 금융과 식품의 분리를 시도했다.
동원엔터프라이즈는 동원산업, 동원F&B, 동원EnC, 동원식품, 동원홈푸드, 동원콜드프라자 등의 7개의 식품 계열사를 거느리게 됐다. 그리고 사실상 금융부분의 지주회사 역할을 했던 동원산업이 동원엔터프라이즈에 편입됨에 따라 금융부문 지주회사인 동원금융지주(현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설립하게 됐다.
김재철은 보유한 동원금융지주 지분을 장남 김남구 부회장에게 증여하는 형태로 대부분의 지분을 몰아줬다. 김 부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동원금융지주에 지배력을 확대했고,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확보한 동원엔터프라이즈, 동원산업 지분 등을 모두 처분하면서 동원그룹에서 계열 분리를 마쳤다.
당시 계열 분리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동원그룹 지주사 전환을 위한 금산분리 문제를 해소했고 동시에 2세 경영 승계도 마무리했다. 장남인 김남구 부회장이 금융 계열사를, 차남인 김남정 부회장이 동원그룹을 지배하면서 잡음을 최소화했다.
△해양산업 경쟁력 강화와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
1996년 들어 한국의 경제는 불황을 겪게 된다. 수출 부진과 경기침체로 인해 한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제조업의 경쟁 기반이 약화됐고 엔고의 영향으로 호황을 누렸던 주력 수출 품목(반도체 등)의 국제 가격이 급락했다. 전반적으로 수출이 부진해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재철은 이런 변화에 대응해 해양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종합식품기업으로의 도약을 준비했다.
김재철이 해양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주력한 전략은 ‘어장 확보를 위한 노력’과 ‘해외 합작회사 설립’, ‘해양 지원 업무의 고도화’ 등이었다.
동원그룹은 아르헨티나, 러시아, 미국 등의 나라들과 합작해 현지 법인을 세우거나, 일부 지분을 매입하는 등의 전략으로 해양산업에서 중요한 어장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오징어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던 시기에도 안정적으로 오징어를 공급할 수 있었다.
해외 합작회사 설립 이후에는 해양 지원 업무 고도화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해양사업본부는 1996년 회사의 업무구조를 재조정하는 사업 프로세스 재설계(BPR)를 추진했다. 그 결과 해양 지원 업무는 선박용품 공급, 선박 수리, 선원 관리, 선박 결산 프로세스 등 4가지 사항을 중심으로 고도화됐다.
동원그룹은 종합식품회사로서의 성장을 계속하기 위해 1995년 농산물 가공공장인 광주 공장을 준공했다. 광주 공장은 대단위 농산물 가공공장으로 연간 1만 톤의 생산능력을 갖췄다. 초기에는 참치캔에 이용되는 소스류를 비롯해 양념장, 레토르트 식품, 케첩을 생산하다가 이후 전통음료, 딸기잼, 마요네즈, 죽 등 다양한 식품을 생산하게 됐다.
동원그룹은 1996년 햄류와 김치류 생산이 가능한 진천 공장을 준공했다. 동원그룹은 진천공장의 준공을 통해 기존의 창원 공장을 수산물 가공기지로, 광주 공장은 농산물 가공기지로, 진천 공장은 축산물 가공기지로 운영했다. 각 공장의 특성을 갖추며 종합식품회사로 변모하게 됐다.
△한신증권 인수를 통한 금융산업 진출
김재철은 1980년대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금융업에 진출한다.
국내 원양 업계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진 동원그룹은 3차산업에 진출할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 무렵 김재철은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최고경영자과정(AMP)를 이수하면서 미국의 투자은행과 증권회사에 우수한 인력들이 모이는 것을 보고 한국도 금융업의 미래가 밝다고 판단했다.
김재철은 귀국하고 한신증권 인수에 나서 성공적으로 금융업에 진출하게 된다.
김재철이 사업 다각화의 영역으로 금융업을 선택한 것은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1982년에 시작된 금융업으로 진출은 전체그룹 측면에서 볼 때 영업이익과 순이익부문에서 각각 69%, 81%를 달성했다. 또한 수산업 및 참치캔 제조업 지원을 위한 자본을 마련함으로써 사업 다각화의 본래 목적도 달성하게 됐다.
| ▲ 김재철(오른쪽)은 2013년 남태평양에 있는 미국령 사모아공화국에서 '스타키스트 공장 건립 5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
△식품가공회사로 탈바꿈해 참치로 내수시장 장악
동원그룹은 그 동안 원어 형태로 해외에 수출해 오던 경영방식에서 벗어나 참치를 통조림으로 가공해 국내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동원그룹이 2차 산업에 진출했다는 의미도 있을 뿐만 아니라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1981년 서울, 경기 지역의 요지라는 지리적 환경에 기인해 성남에 식품사업소를 개설했다. 이로써 소비자들에게 생산한 식품을 직접 판매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700톤 규모의 냉장창고를 갖춰 냉동 어획물을 국내에 판매할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선내 공장시설을 갖춘 대형 어선 동산호를 도입한 뒤에는 북양 조업이 활발해짐에 따라 명태, 가자미, 대구 등의 어획량이 증가했다. 김재철은 이 중 일부를 원어로 판매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규모가 커진 식품사업소를 농수산물 도매, 소매업과 냉동, 냉장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동원식품으로 재설립했다.
1982년 김재철은 그동안 원어 형태로만 수출해 오던 참치를 통조림으로 가공해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동원이 참치통조림 제조업에 진출한 동기는 당시 미국 스타키스트와 관계에서 거래량이나 가격 결정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였다.
당시 미국에서 활성화를 이루던 참치캔은 국내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김재철은 이러한 상황을 기회로 잡아 선진국 형태로 변모해가는 국민들의 식생활 패턴을 감지해 참치캔의 개발과 출시를 결정했다. 국내 판매 개시 후 소비자의 요구에 맞는 가격, 판촉 전략을 세우며 1984년에는 1200만 캔을 판매해 75%의 시장 점유율을 달성했다.
1985년 참치캔이 안정적 시장을 구축하고 있을 때, 동원그룹은 소비자들을 위한 새로운 마케팅 전략 제품으로 조미 오징어구이를 개발하고 참치캔의 뒤를 잇는 꽁치 통조림을 시장에 선보였다.
김재철은 1986년 창원 지역에 동양 최대 규모의 수산식품 종합 가공공장을 준공했다. 임가공 위탁, 공장 임대 등의 기존의 방식을 탈피한 적극적 경영전략이었다. 1988년에는 고도의 정밀성을 요구하는 수산물, 육가공 통조림의 뚜껑을 생산해내는 삼양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해, 수입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동원그룹 창업
동원산업이 설립된 1960년대 말 한국의 경제는 제1,2차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공업화가 추진되고 자립경제의 기반을 다지던 시기였다. 이 기간 한국 경제는 눈부신 경제 성장률을 보였고 수산업부문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면서 수산업의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수산업의 성장은 선박의 수급과 수출여건도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일본이 새 선박을 건조하면서 항구에 묶여 있었던 중고 어선이 증가해 저렴한 가격에 중고 어선을 들여올 수 있었고 횟감용 고급 참치회 수요가 급증하면서 많이 잡기만 하면 수출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만들어졌다.
이런 여건 속에서 김재철은 1969년 원양어선에 승선하며 모은 돈 1천만 원을 자본금으로 해 동원산업을 창립했다.
일본 ‘도쇼쿠’의 미국 현지법인 ‘올림피아 트레이딩’으로부터 37만 달러에 달하는 500톤 급 어선 제31동원호와 제33동원호를 도입했다. 김재철은 외국회사도 인정한 신용만으로 외국에서 배를 먼저 도입하고 어로작업을 통해 벌어서 이를 상환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제31동원호는 대한민국 최초의 ‘탑재모선식’ 어선으로 500톤 급 모선(母船)에 20톤의 작은 자선(子船)을 싣고 다니며 함께 조업하는 선박이었다. 김재철은 항해술과 어로 기술이 뛰어난 이중기 선장을 고용해 인도양에 출어한 지 25개월 만에 120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달성했다. 원양어선 한 척이 이 정도의 외화를 획득한 것은 당시로서는 의미 있는 업적이었다.
이후 제31동원호에 이어 다른 동원호들도 인도양 어장 개척에 나섰고, 제35동원호는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과 사할린 해역의 북해도에서 오징어채낚기 조업을 실시해 좋은 실적을 거뒀다. 이는 국내 어선으로서 최초의 오징어채낚기 어업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원산업은 인도양과 사할린 해역에 이어 1971년 북태평양에까지 진출해 명태조업을 시작했다. 또한 1973년에는 제801동원호가 아프리카 가나 어장으로 출어함으로써 대서양에까지 진출하게 됐다.
당시 원양어업은 전량이 수출된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었다. 원양어업을 통해 잡은 생선은 이를 가공해 판매할 수 있는 국내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외국 상사를 통해 판매됐다. 초기 수출 실적으로 동원산업은 창업 1년 만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창업 3년에 이르렀을 때는 600%에 이르는 놀라운 성장률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