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역장벽 높아져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앞선 2017년 4월20일 특정 수입제품이 미국 안보를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되면 수입 규제를 가할 수 있다는 내용의 무역확장법 232조 명령 행정각서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현대제철은 미국에 수출하는 유정용 강관 등 판매에 타격을 입게 됐다. 미국 정부가 한국산 강관류 제품 쿼터(수입 할당량)를 2017년의 절반 수준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제철이 미국에 파는 유정용 강관 판매도 크게 줄어들게 됐다.
다만 포스코가 미국 수출용 철강제품의 쿼터를 스스로 반납한 점은 현대제철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코는 2018년 6월에 한해 동안 부과받은 열연과 냉연의 미국 수출용 쿼터를 반납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국내에서 열연과 냉연을 모두 생산하고 있는 회사는 현대제철뿐이므로 현대제철이 미국에 수출할 수 있는 열연과 냉연 쿼터가 훨씬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재광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열연 가격이 훨씬 높다”며 “현대제철이 포스코로부터 쿼터를 넘겨받으면 최대 1500억 원의 이익을 더 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숲 완성을 위한 성수동 삼표레미콘 공장 이전
현대제철과 삼표산업, 서울시는 2017년 10월 2022년 6월30일까지 성수동에 있는 삼표레미콘 공장을 이전 철거하기로 합의했다.
삼표레미콘 공장이 있는 땅은 현대제철이 삼표산업에 임대해주고 있는 땅이었다. 삼표레미콘 공장은 수변공원과 서울숲이 근처에 있는 데다 소음, 교통체증, 미세먼지 등으로 민원이 많아지면서 수차례 부지 이전 논의가 있었지만 무산되다가 마침내 타결된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5년 10월 레미콘 공장 이전 문제를 임기 안에 결판짓겠다고 약속한 뒤 곧바로 실무회의가 이뤄져 약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2017년 7월 열리기로 되어 있었던 삼표레미콘 공장부지 이전 발표가 기자간담회 30분 전 돌연 취소되는 등 여러 가지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채 관리
강학서는 2013년 9월 당진 일관제철소의 3고로를 완공한 이후부터 차입금 상황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강학서는 2013년 7월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2013년에는 4천억~5천억 원을, 2015년에는 1조 원 이상 차입금을 갚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현대제철의 부채총계는 2013년 말 기준으로 15조7847억 원으로 부채비율은 120.1%였다.
현대제철의 부채총계는 2014년 말 14조7680억 원, 부채비율은 108.8%로 줄어들면서 성과를 냈다. 현대제철은 차입금을 1조 원 이상 갚겠다던 목표와는 달리 2015년 부채총계는 16조4160억 원으로 불어났지만 부채비율은 105.8%로 개선됐다.
2018년 1분기 말 기준으로 현대제철의 부채총계는 16조2437억 원, 부채비율은 95.3%다.
△자동차강판 가격 협상 지지부진
현대제철은 현대자동차에 주로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공급한다는 점에 발목을 잡혔다.
현대제철이 현대차에 안정적으로 자동차강판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계열사인 현대차와 대등하게 가격 협상을 벌일 수 없다는 점이 현대제철의 수익성을 나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현대제철은 연간 500만t의 자동차강판 생산량 중 현대차에 약 400만t 이상을 공급한다.
현대제철은 2016년 말부터 2017년 자동차강판 값을 놓고 현대차와 협상했지만 그해 5월 말에야 간신히 자동차강판 값을 톤당 6만 원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현대제철이 당초 요구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자동차강판 값 인상폭을 결정한 것이다.
강학서가 현대차 고위 관계자와 만나 직접 자동차강판 값 협상을 주도했다.
현대기아차가 자동차 판매에서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료탄과 철광석 등 원재료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자동차강판 값을 올리지 못하면서 현대제철은 고스란히 수익성에 부담을 떠안았다.
현대제철은 현대차와 기아차에 공급하는 자동차강판 값을 2015년 12월 톤당 8만 원 깎아 준 이후 2016년까지 가격을 동결했다.
△대표이사 선임
강학서는 2014년 10월 진행된 인사에서 현대제철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박승하 당시 현대제철 부회장이 사의를 표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우유철 사장이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하고 강학서와 함께 경영을 이끄는 각자대표이사체제로 바뀐 것이다.
당시 이뤄진 인사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인사와 무관하지 않다. 현대차그룹은 강학서뿐 아니라 이원희 현대차 재경본부장, 박한우 기아차 재경본부장 부사장 등 재무전문가를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이를 놓고 현대차그룹이 안정적 재무관리를 통해 내실경영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업계는 바라봤다.
강학서는 2017년 3월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다시 한 번 사내이사에 선임되면서 대표이사를 연임하게 됐다. 임기는 2020년까지다.
강학서는 2017년부터는 기존에 맡고 있었던 재무와 인사총무, 기획총괄 등 관리 업무 외에 우유철 부회장이 맡고 있었던 생산부문까지 총괄하고 있다.
| ▲ 강학서 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가운데)은 2018년 1월31일 서울 논현동 르메르디앙 호텔에서 우유철 부회장을 비롯한 구매본부 임직원들과 220개 구매협력사 대표 등과 함께 '2018년 구매협력사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 |
△현대하이스코 냉연강판부문 합병과 사장 승진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는 2013년 10월 이사회를 열고 현대하이스코의 알짜사업인 냉연강판부문을 현대제철로 넘기는 안건을 의결했다. 냉연강판은 자동차용 등으로 쓰이는 고부가가치 철강제품인데 현대하이스코는 2012년 기준으로 매출 70%, 영업이익 80% 가량을 냉연강판 가운데 자동차용강판 판매에서 거뒀다.
현대제철이 현대하이스코로부터 냉연강판부문을 인수한 까닭은 쇳물에서부터 자동차강판까지 모두 생산할 수 있는 일관제철소로 거듭나기 위한 것이자 현금 창출원을 인수해 투자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대제철은 당시 일관제철소의 고로를 짓는 것뿐 아니라 특수강, 철분말사업 등에 2016년까지 약 1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강학서는 현대하이스코 냉연강판부문을 인수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점을 인정받아 2014년 6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박승하 전 현대제철 대표이사 부회장이 총 지휘를 맡고 우유철 당시 현대제철 사장이 당진에서 생산업무를, 강학서가 기획 및 관리 업무를 맡는 체제가 된 것이다.
강학서의 사장 승진은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이례적 일이었다. 강학서는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사장에 오른 최초의 최고재무책임자이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당시 인사를 놓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획 기능과 수익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학서는 2014년 사내이사로 다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강학서는 2012년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면서 밀려났는데 2014년에는 다시 사내이사가 된 것이다.
그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현대제철 등기임원에서 임기가 끝나는 데 따라 물러나면서 현대제철 사내이사진은 정의선 부회장, 박승하 당시 부회장, 우유철 당시 사장, 강학서 등 4명으로 꾸려지게 됐다.
△일관제철소 자금 조달 책임
강학서는 현대제철의 숙원사업인 당진 일관제철소사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책임을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진 일관제철소 건설사업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으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애착을 보일 정도로 그룹 내에서 중요한 핵심사업으로 꼽혔다. 일관제철소는 제선(액체상태의 쇳물을 만드는 작업)과 제강(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 압연(커다란 쇠판으로 형태를 뽑은 뒤 높은 압력을 가하는 작업)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제철소를 말한다.
현대제철은 충청남도 당진에 서울 여의도 면적의 2.5배가 넘는 부지를 확보하고 2006년 10월 1기 고로 기공식을 시장으로 2013년 9월까지 약 11조 원을 들여 고로 3개를 갖춘 일관제철소를 세웠다.
강학서는 2009년부터 재경본부 본부장, 원료구매본부 본부장, 경영관리본부 본부장 등을 맡아 당진 일관제철소의 자금 조달 관리 등을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한 점을 인정받았다.
특히 2011년에는 철강업황 악화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 겹치면서 포스코 등 경쟁회사들은 물론 현대제철도 원가 줄이기에 안간힘을 썼지만 강학서는 현대제철이 1·2·3 고로를 건설할 때 9조4850억 원의 필요한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했다.
강학서는 일관제철소가 차질 없이 건설될 수 있도록 공사기간에는 일주일에 3~4일을 당진 공사 현장에 내려가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