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사장 취임
2018년 4월13일 제20대 한국전력공사 사장에 올랐다.
한국전력은 2017년 12월 조환익 전 사장이 사임한 뒤 송인회 전 한국전력기술 사장, 오영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올랐으나 결국 김종갑이 낙점됐다.
김종갑은 오랜 세월 공직생활을 하고 국내 기업과 외국인 투자기업을 이끄는 등 공직과 민간기업 경험을 두루 갖춘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종갑은 취임사에서 한국전력의 제일 과제로 수익성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 한국전력의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무엇보다 수익성 개선에 힘쓰겠다”며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개선되는 시점까지 비상경영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력의 영업실적은 연결 재무제표로 평가받는다며 “한국전력과 발전자회사, 그룹사들 사이에 불필요한 경쟁을 줄이고 협력을 강화해 한국전력그룹 전체의 경영개선을 이끌겠다”고 덧붙였다.
수익성 개선과 함께 △에너지 전환정책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 △연구개발(R&D) 투자에 기반한 좋은 일자리 창출 △원전 수출과 기타 에너지사업 수출을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 △에너지밸리 구축을 통한 지역경제 기여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2018년 5월11일 서울 송파구 전기회관에서 열린 대한전기협회 정기총회에서 제29대 대한전기협회장에 추대됐다.
△한국지멘스 대표이사 시절
2011년 6월1일 한국인 최초로 한국지멘스 회장에 올랐다.
지멘스는 발전 송배전 포트폴리오 등 에너지산업은 물론 공장 자동화, 의료장비 등 자본재, 산업재와 관련한 사업을 하는 독일 기업으로 1847년 창업했다.
김종갑이 한국지멘스 회장 공모에 지원한 데는 한국지멘스가 2011년 6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 CEO를 뽑는다고 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지멘스는 김종갑 전까지는 독일 본사가 임명한 외국인 CEO가 이끌었다.
김종갑은 2016년 안동MBC와 인터뷰에서 “하이닉스반도체 경영을 정상화하고 내부적으로 SK에 매각하기로 결정된 만큼 내 역할을 다했다고 보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한국지멘스 회장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국적 다문화 환경에서 기업경영을 하는 것은 한국에서 한국사람끼리 기업을 하는 것과 또 다르다”며 “재미도 있고 어려움도 있고, 배우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지멘스는 2016년 기준 세계 197개 나라에서 35만 명이 일하고 있는 글로벌기업이다.
한국지멘스는 김종갑이 이끌며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멘스그룹 직원은 2011년 40만 명에서 2016년 35만 명으로 줄었지만 한국지멘스 직원 수는 같은 기간 1700명에서 2200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2013년 지멘스 에너지솔루션사업의 아시아본부를 한국에 유치하기도 했다. 에너지솔루션사업의 아시아 지역본부는 가스발전, 복합화력발전, 석탄화력발전 공급을 위한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며 아시아태평양, 중동 지역을 총괄한다.
김종갑은 취임과 동시에 직원들에게 회사배지를 착용하게 하고 당시 서울 역삼동 본사 건물 외벽에 간판을 달게 하는 지멘스를 알리는 데도 힘썼다.
2014년 기업의 윤리적 경영을 확산하기 위해 출범한 윤경SM포럼 공동대표를 맡는 등 한국지멘스의 윤리경영을 강화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국지멘스를 이끌던 2016년 5월부터 2018년 4월까지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도 맡았다.
△하이닉스반도체 대표이사 시절
2007년 2월 공직에서 물러난 뒤 그해 3월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에 취임했다.
산업자원부 출신의 고위공직자가 퇴임 직후 민간기업 CEO로 간 최초의 사례로 김종갑은 당시 주요 공기업의 사장 자리를 제안 받았으나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에 지원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비롯해 내부 유력인사들이 사장 후보로 거명됐으나 결국 김종갑이 사장에 선임됐다. 당시 경쟁률은 13대 1에 이르렀다.
김종갑이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에 오를 때는 반도체시장의 글로벌 경쟁심화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할 때다.
하이닉스반도체는 2006년 2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으나 2007년 5천억 원대로 줄어들었고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쳐 영업손실 1조9천억 원, 순손실 4조7천억 원을 냈다.
김종갑은 2008년 말 임원을 30% 줄이고 희망퇴직과 무급휴가 등을 뼈대로 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그 스스로 임금을 35% 깎고 그밖의 임원들도 10~20%가량 임금을 줄였다. 휴일 근무수당과 시간외 근무수당을 없애고 명절 선물 등을 없애는 자구노력도 진행했다.
이와 함께 2009년 신입사원 채용 대신 연구개발(R&D) 인력만 100여 명을 채용하는 등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하이닉스반도체는 2009년 3분기에 8분기 만에 영업이익을 내며 적자를 탈출했다. 이후 2009년 영업이익 1900억 원, 2010년 영업이익 3조 원을 올리는 등 건실한 회사로 변신했다.
김종갑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직원들의 신뢰가 있었다.
2007년 임기 초반 ‘대사면 프로젝트’를 통해 업무과실 등으로 징계를 받은 임직원 100여명과 납품 비리 등으로 거래관계가 끊긴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대사면을 진행해 직원들의 신뢰를 얻었다.
신입사원에게 책을, 신입사원 부모에게 감사편지와 와인을 선물하는 등 이색적 스킨십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고 자사주를 매입을 통해 경영 정상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김종갑은 2016년 안동MBC와 인터뷰에서 “공직에 있을 때 기업 방문횟수가 1천 회가 넘을 정도로 현장을 자주 찾았다”며 “개인적으로 이런 관심이 계기가 돼 민간기업 CEO를 맡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하이닉스의 위기를 극복한 원동력으로 노사가 공동목표를 지니고 함께 나아간 ‘노사 협력’을 꼽았다.
| ▲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2018년 4월13일 전남 나주 본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 |
△관료 시절
197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1978년 상공부에서 대미 통상업무를 맡으며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는 한국의 칼라TV 수출과 관련해 미국의 통상압박이 심하던 때다.
대미 통상업무는 업무강도가 높고 고참이 많은 탓에 승진에서 불이익을 겪어 ‘사무관의 무덤’이라고 불렸는데 김종갑은 공직생활 초반 사무관 3년8개월, 과장 2년6개월 등 미국 통상관련 부서에서 내리 6년을 일했다.
김종갑은 결국 행정고시 동기 가운데 과장 승진이 가장 늦었으나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공부 안에서 대미 통상업무 전문가로 자리잡았다.
1980년대 후반 상공부 통상협력담당관으로 일하며 미국과 벌였던 슈퍼301조 관련 협상에서 한국의 입장을 끝까지 관철해 미국 통상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 뒤 통상산업부 통상협력국장, 산업자원부 국제산업협력국장 등 미국 통상 관련 업무를 4차례나 다시 맡는 등 15년 동안 미국 통상업무를 담당하며 ‘미국 통상분야 해결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행정고시 동기 가운데 과장 승진이 가장 늦었으나 국장 승진은 가장 빨랐다.
김종갑이 미국 통상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낸 데에는 그의 영어실력도 한몫했다.
김종갑은 외국인들로부터도 품위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고급 영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독일에서 열린 국제행사를 영어로 진행하는 김종갑의 모습을 본 이기주 당시 독일대사가 “대한민국 공무원 중 저렇게 고급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극찬한 일화도 전해진다.
2003년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파견된 뒤 노무현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차관보, 특허청장, 산업자원부 차관 등을 지냈다.
특허청장 시절 특허청에 중앙부처 처음으로 ‘직무성과 계약제도’ ‘재택근무제도’ 등을 도입하는 등 개혁을 추진했고 직원들과 혁신 등을 주제로 격의 없는 토론을 진행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5년 동안 국회에 계류돼 있던 직무발명과 관련한 보상기준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특허청장을 지내며 부처별 성과평가에서 최고 점수를 받고 개인별 업무평가 점수도 높아 2006년 산업자원부 차관으로 승진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미국의 하이닉스반도체 상계관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국가 균형발전정책과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정책, 산업집적화(클러스터) 개념도입 등 굵직한 산업정책을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