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화당 대표 올라
2017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바른정당과 통합을 추진하자 통합 반대쪽에 서서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를 출범하고 대표를 맡았다. 조배숙은 “바른정당과 통합논의는 국민의당의 정체성을 허무는 일”이라고 통합을 비판했다.
2018년 1월21일 기자회견을 열고 개혁신당 창당을 선언했으며 28일 민주평화당 창당준비위원회를 출범했다. 조배숙은 만장일치로 창당준비위원장에 선출됐다.
2월6일 민주평화당이 공식 창당하고 조배숙은 초대 대표에 추대됐다. 조배숙은 “가장 뛰어난 개혁 선도정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은 교섭단체 구성을 추진했으나 바른미래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들이 합류하지 못하는 등 20명의 의원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자 정의당과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했다. 이들은 양당제에 유리한 선거제도 개혁과 대북 포용정책 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조배숙은 “이념이 아닌 성과를 위해 협치의 모범을 보이겠다”면서도 “정체성이 다른 정당이 꼭 한 목소리를 낼 필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성매매특별법 입안
조배숙의 의정활동 가운데 가장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초선 시절에 만든 성매매특별법이다. 성매매특별법 제정으로 성매매가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
조배숙은 2002년 1월 전북 군산 개복동에서 발생한 화재로 감금된 채 성매매를 하던 여성 14명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기존 윤락행위 등 방지법보다 강화된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 및 방지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성매매 알선업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성매매 행위자는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다만 강제로 성매매를 하게 된 자는 피해자로 보고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법안은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2002년 9월 철회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 및 방지에 관한 법률안으로 나뉘어 다시 발의됐다. 조배숙 등 86명의 의원이 법안 발의에 참여했다.
조배숙은 “여성이라 남자를 너무 모른다”는 항의를 받기도 하고 성매매업소 밀집지역이 지역구에 포함된 의원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2004년 2월 국회 본회의에서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안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됐다.
성매매특별법 제정 후 성매매업자나 성매수 남성 등으로부터 7차례 헌법소원이 제기됐으나 모두 각하되거나 합헌으로 판단됐다.
조배숙은 성매매특별법 공포 후 2년이 지나 인터뷰에서 “법 제정을 통해 많은 여성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 고통에서 해방된 모습을 보니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가 2018년 2월6일 민주평화당 창당대회에서 대표로 추대된 후 인사하고 있다. |
△의원 활동
초선 시절 새천년민주당 수석부대변인, 원내부총무를 역임했고 2003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중앙위원을 맡았다.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제6정책조정위원장, 전국여성위원장, 비상집행위원, 최고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후반기 문화관광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중도개혁통합신당에 합류해 최고위원을 지냈고 중도통합민주당 창당 실무협상단장으로 일했다.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과 새천년민주당이 합당한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3선 의원이 됐다.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2012년에 민주통합당 공천에서 탈락한 뒤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했고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추진위원회에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2014년 지방선거 때는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합당한 새정치민주연합 전라북도당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2016년 다시 탈당해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에 참여했다. 국민회의와 국민의당이 통합하면서 국민의당 소속으로 국회에 재입성했다. 20대 국회에서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공직자윤리위원회 부위원장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1월까지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6년 1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국민의당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일했다.
△선거 결과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비례 23번 후보로 출마했으나 민주당이 비례의석을 19석 확보하면서 낙선했다. 그러나 의원들의 연쇄 입각으로 전국구 의원 승계가 이어졌고 조배숙은 2001년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된 유삼남 의원의 비례대표를 이어받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전북 익산을에 출마해 66.82%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서 54.91%의 득표율로 3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2012년 19대 총선 때는 민주통합당 공천에서 탈락했다. 정치신인 가산점을 받은 전정희 후보에게 밀려났는데 이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했으나 28.35%의 득표율로 전 후보에 이어 2위에 그쳤다.
2014년 1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전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했으나 4월 후보에서 사퇴했다.
2016년 20대 총선 때 국민의당 후보로 익산을에 출마했다. 전정희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국민의당에 합류해 경선을 치렀는데 이번에는 조배숙이 공천을 받았다. 46.10%의 지지를 받아 36.8%를 득표한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4선 의원이 됐다.
△변호사 시절
1995년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초기에는 여성 변호사를 향한 신뢰가 높지 않아 일이 많지 않았으나 승소율이 높아지면서 의뢰인도 점차 많아졌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많은 유명인 사건을 맡으면서 명성을 쌓았다.
1990년대 많은 인기를 받았으나 마약사건으로 구속됐던 현진영씨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다. 2013년 케이블방송에 출연한 현씨는 게스트로 나타난 조배숙을 만나 “너무 감사했는데 한번도 찾아뵙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EG 회장의 마약사건에서 변호를 맡아 집행유예를 이끌어냈다. 조배숙은 박 회장이 의외로 예의바르고 겸손했다며 예술성 감수성이 예민하고 음악에 관심이 남달랐다고 회고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성공적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굵직한 여성 사건에도 참여했다. 앵커 백지연씨의 친자확인 소송을 맡아 승소했고 임창열 경기도지사의 부인으로 알선수재 혐의를 받은 주혜란씨 소송대리인을 담당했다. 조배숙은 수임한 소송과 관련해 “언론이 여성에게 공정하지 않다”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