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기자 ksj01@businesspost.co.kr2014-12-16 10: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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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생애
▲ 양승태 대법원장
양승태는 1948년 1월26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1970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5년 11월 법관으로 임용되어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대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제주지방법원, 사법연수원, 법원행정처, 부산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근무했다.
부산지방법원장 등을 거쳐 특허법원장으로 재직하다가 2005년 2월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2009년 2월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으로 임명됐다. 퇴임 뒤 2011년 9월 26일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1998년 IMF 구제금융사건 당시 서울지방법원 파산부 수석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파산 관련 제반 법률문제를 연구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법조계에서 그는 “대가 곧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는 평을 듣고 있다.
법원에서 그와 함께 일을 함께 해본 법조인들은 그가 이념적으로 확고한 보수 성향을 갖고 있지만 대체로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평한다.
풍부한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 덕분에 후배 법관들 사이에서 ‘사법행정의 달인'으로 통한다.
2009~2011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냈다. 온건하고 안정지향적 판결로 보수성향이 뚜렷해 이명박 정부의 코드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IMF 외환위기 당시 서울지법 파산부 수석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도산기업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법정관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북부지원장 재직 때 지원 홈페이지를 처음 개설했다. 부산지법원장 시절 효율적 청사관리와 민원인 위주의 행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허법원장취임 이후 백두대간 종주행사를 주도해 법관과 직원들의 인화에 힘쓰기도 했다.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업무처리가 합리적이어서 주위의 신망이 두텁다고 알려졌다.
그가 대법원장으로 임명되고 3년이 지난 현재 그로 인해 대법원 판결 보수화가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학자들은 그가 취임 이후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인사들을 대법관으로 임명했다고 지적한다.
이용훈 대법원장 재임 시절 진보적 의견을 자주 제시했던 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 대법관이 퇴임한 자리에 보수적이거나 튀지 않는 판결을 하는 후임들로 채워졌다는 게 중론이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관 14명 가운데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가치관을 가진 법조인이 절반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안 되고 있다”면서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변호사 등 재야 법조인의 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0년 8월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5년 11월 판사로 임용되어 서울민사지방법원(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1979년 9월 서울지방법원 영등포지원, 이듬해 대구지방법원에서 일했다.
1982년 9월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1983년 9월 서울고등법원, 1986년 제주지방법원 판사가 됐다.
1989년 9월 사법연수원 교수가 됐다.
1991년 2월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1993년 10월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1994년 7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 실장을 거쳤다.
1995년 2월부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4년 간 근무했다. 1999년 3월 서울지방법원 파산수석부장판사, 다음해 7월 서울지방법원 민사수석부장판사가 됐다.
2001년 2월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장, 다음해 부산지방법원장을 역임했다. 2003년 2월 법원행정처 차장이 됐고 그 해 9월 특허법원장이 되었다.
2005년 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대법원 대법관으로 일했다.
2009년 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제16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1년 8월 후보자로 지명돼 9월부터 제15대 대법원 대법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 학력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해 1970년 학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 김선경씨와 2녀를 두고 있다.
◆ 상훈
2011년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 상훈
2011년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어록
“나는 보수주의자도 진보주의자도 아니다.”, “재판결과가 자신들이 속한 편에 불리하게 나왔다고 해서 성향이 일반적으로 어떻다고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2011/09/06,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그의 보수적 성향이 판결에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발언에 대해서)
“내가 이 판결에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 “결과적으로 다수와 같은 결론을 내린 것으로 봐야 한다.”(2011/09/06,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삼성 에버랜드 사건에 대해)
“점점 더 격화하는 분쟁과 갈등의 와중에서 재판에 대한 합리적 비판의 수준을 넘는 원색적 공격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오늘날, 여러분은 한층 더 의연하고 결연한 기개로써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것”, “재판의 독립이라 하여 법관에게 무제한적 방임을 허용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재판을 함에 있어 법관이 따라야 할 양심은 건전한 상식과 보편적 정의감에 기초한 법관의 직업적 양심을 뜻한다.”, “자기 혼자만의 독특한 가치관이나 고집스럽고 편향된 시각은 결코 재판 규범이 될 수 없고, 이를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재판의 독립을 내세우는 것은 재판 독립의 원칙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방패삼아 그 뒤에 몸을 숨기는 것에 다름없다.”(2014/12/01, 신임 법관 28명의 임명식에서 법관의 독립, 자세에 대해)
“재판은 으레 3심을 거치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데 온갖 지혜를 쏟아야 한다.”, “사건 처리만을 위주로 메마르고 기계적으로 재판을 하는 것은 불신만 가중시키는 가치 없는 일일 뿐”(2014/12/05,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상고법원 설치를 추진에 대해)
◆ 평가
법조계에서 그는 “대가 곧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는 평을 듣고 있다.
법원에서 그와 함께 일을 함께 해본 법조인들은 그가 이념적으로 확고한 보수 성향을 갖고 있지만 대체로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평한다.
풍부한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 덕분에 후배 법관들 사이에서 ‘사법행정의 달인'으로 통한다.
2009~2011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냈다. 온건하고 안정지향적 판결로 보수성향이 뚜렷해 이명박 정부의 코드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IMF 외환위기 당시 서울지법 파산부 수석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도산기업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법정관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북부지원장 재직 때 지원 홈페이지를 처음 개설했다. 부산지법원장 시절 효율적 청사관리와 민원인 위주의 행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허법원장취임 이후 백두대간 종주행사를 주도해 법관과 직원들의 인화에 힘쓰기도 했다.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업무처리가 합리적이어서 주위의 신망이 두텁다고 알려졌다.
그가 대법원장으로 임명되고 3년이 지난 현재 그로 인해 대법원 판결 보수화가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학자들은 그가 취임 이후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인사들을 대법관으로 임명했다고 지적한다.
이용훈 대법원장 재임 시절 진보적 의견을 자주 제시했던 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 대법관이 퇴임한 자리에 보수적이거나 튀지 않는 판결을 하는 후임들로 채워졌다는 게 중론이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관 14명 가운데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가치관을 가진 법조인이 절반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안 되고 있다”면서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변호사 등 재야 법조인의 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