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공백에 CJ그룹 이끌어
2013년 4월 CJ대한통운 대표이사로 영입되면서 바로 부회장을 맡았다. 당시 CJ그룹에서 총수일가를 제외한 전문경영인 가운데 유일한 부회장이었다.
2013년 10월 CJ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CJ그룹에 합류한지 6개월 만에 그룹의 실질적 의사결정권자 가운데 한명으로 떠올랐다.
2013년 10월부터 CJ 대표이사에 올라 이재현 회장의 부재에 따른 경영 공백을 매우기 위해 대한통운에서 손을 떼고 지주사 경영에 전념했다.
이재현 회장이 횡령, 배임, 조세포탈 등 혐의로 구속된 뒤 만들어진 CJ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5인 경영위원회’의 일원으로 들어가 그룹 경영을 챙겼다.
이재현 회장의 사면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 것으로 박근혜 게이트 검찰 조사에서 나타났다.
2014년 11월28일 손경식 CJ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났고 이채욱은 그 뒤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관련해 몇 차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2014년 12월16일 안종범 전 수석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수석님, 부족하지만 미생 마지막회 요청 사항 한 장면 삽입했습니다. VIP께서 극장에서도 창조경제 관련 홍보를 부탁하셨다는데, 어떤 내용인지 아세요’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채욱이 당시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미생'의 장면 중 청와대 홍보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삽입해 달라는 청와대 측 부탁에 응했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이채욱이 문자메시지 내에서 언급한 ‘창조경제 관련 홍보’는 당시 CGV에서 영화 상영 직전 내보낸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관련된 홍보영상을 의미했다.
2014년 12월18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청년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면서 “최근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사회적으로 많은 화제가 되고 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면서도 어려움을 겪는 청년세대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5년 12월15일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이재현 회장은 기대와 달리 징역 2년 6개월, 벌금 252억원을 받았다.
이날 이채욱은 안종범 전 수석에게 늦은 시간 문자메시지를 보내 ‘수석님, 재판결과가 예상을 깨고 실형이 선고돼 실질적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어 모두들 허탈해 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람을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건 사법살인이라고들 합니다. 좀 도와주실 방법이 없을런지요. 고민하다 밤 늦게 문자드립니다’라고 호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안종범 전 수석은 ‘너무 힘드시겠습니다. 사법부의 일이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 송구스럽네요. 연락하겠습니다’고 답변했다.
안종범 전 수석은 2015년 12월27일자 업무수첩에 ‘CJ정서 나빠짐’, ‘이재현 회장 도울 길 생길 수 있음’ 등의 내용을 기재했다.
이재현 회장은 결국 2016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고 건강을 어느정도 추스린 후 2017년 5월 경영에 복귀했다. 이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경영위원회 역할을 사실상 끝났다.
2017년 CJ그룹의 정기 인사를 앞두고 건강문제로 경영에서 물러나기를 원했다는 말이 나돌았지만 CJ대표이사에 유임됐다.
그러나 2018년 3월 CJ등기이사에서 빠지며 경영일선에서 한걸음 물러났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유는 건강 문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채욱은 건강 문제로 일본에 머물고 있다.
△인천공항공사 사장 취임과 성과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인천공항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인천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됐을 때 삼성물산을 거쳐 GE코리아 회장을 지닌 이력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와 맞는 코드인사라는 말도 나왔다.
또한 매쿼리에 인천공항을 매각하기 위한 민영화 수순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이채욱의 사위 진동희씨는 2006년 2년 전까지 매쿼리 은행에 근무했다.
이채욱도 인천공항 지분매각, 상장 가능성 등을 밝히며 민영화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야당과 시민들의 반대로 결국 인천공항 민영화는 무산됐다.
인천공항공사 사장을 가장 오랫동안 지낸 인천공항의 간판 CEO였다. 4년4개월 동안 역임하면서 화려한 업적들을 남겼다.
인천공항은 국제공항협의회(ACI)가 주관하는 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7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국내 공기업 사장 최초로 하버드 아시아 비즈니스 컨퍼런스에 초청을 받아 리더십 특강을 하기도 했다. 전체 임금근로자의 87%에 이르는 비정규직을 양산했다는 비판도 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임기가 8개월 이상 남았음에도 자진사퇴했다.
△삼성GE의료기기 첫 전문경영, GE코리아 회장까지
삼성GE의료기기 대표이사로 CEO의 첫걸음을 뗐다. 2년반 만에 자본 잠식 상태에 있던 회사의 재무구조를 정상화했다. 이때 처음 맺은 GE와 인연으로 1996년 GE의 메디컬사업부문 동남아 태평양지역 사장을 맡게 됐다.
당시 GE의 파울로 프레스크 부회장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양해를 구한 뒤 그를 영입했다고 한다.
그는 오랜 해외생활 탓에 떨어져 지냈던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GE에 사의를 밝혔다. 그러나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이를 만류하고 GE코리아 사장으로 올렸고 이후 GE코리아 회장에 취임했다.
미국 GE 본사 연수원인 웰치 센터(옛 크로톤빌 연수원)에서 리더십과 GE의 우수경영기법 등을 가르치는 연수를 국내 경영자들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삼성그룹에서 초고속 승진
1972년 삼성그룹에 입사한 뒤 30대 초반에 과장이 되는 등 초고속승진했다.
그는 고선박 수입과정에서 태풍으로 회사 자본금 3분의 1을 잃는 사고를 당했다. 1년 뒤 사고를 수습하고 사표를 제출했지만 전화위복이 돼 삼성물산의 57개 지점을 맡는 해외사업 본부장으로 발돋움했다.